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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만나다 |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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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우표
국가 표상에서 외화벌이까지
박계리(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북한은 1946년 이래 지속적으로 우표를 발행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발행할 뿐만 아니라 우표에 담기는 그림이나 사진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표를 통해 북한 사회와 문화의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국가주도로 생산되고 있는 북한의 우표가, 국내에서만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국외로 편지나 물품을 보낼 때에도 공개적인 위치에서 붙여져 보여지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표는 북한의 물건이 보내질 수 있는 외국인들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매체이다. 이점을 북한 당국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표는 한 국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이용된다. 따라서 자신들만의 국가상징이 만들어지기 전인 1946년에 처음으로 발행된 우표는 ‘무궁화’였지만, 곧 김일성초상을 토대로 만든 우표가 제작되었으며, 자신들만의 국가표상이 만들어진 이후, 1949년에는 국기, 1950년에는 국기훈장을 우표로 제작해 발행했다.

외국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우표의 특성은 북한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이미지와 더불어 세계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미지 또한 선별되어 우표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관점들을 토대로 북한은 1946년부터 2002년까지 4,200여 종의 우표들을 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제작된 이미지들의 주제는, 우선 북한의 특수성을 드러내고 있는 김일성수령 및 김정일위원장의 우상화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 및 초상화, 국제적 의의를 갖는 행사 및 인물 초상화, 북한의 특수성이 잘 반영된 건축물 및 문화예술적 성과들, 인민들을 교양하기 위한 표어들, 북쪽 땅에서 벌어진 유구한 역사와 문화, 자연, 지리, 동식물들이 우표로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시대 인물들이나 한반도에 생식하는 동식물 등 북한 땅에 살진 않지만 분단이전에 남북한이 함께 공유하고 있었던 전통들, 전통미술작품들이 우표로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해외 인물 및 해외 작가들이 그린 명화도 이용되고 있다. 1940~1950년대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좋았을 때는 소련의 인물뿐만 아니라 소련의 우주로케트 발사를 기념하는 우표 등을 발행함으로써 성장하는 소련의 이미지를 통해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고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소련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소련관련 우표 수가 격감했다가 1980년대 이후 소련 관련 우표가 다시 증가함에서 볼수 있듯, 이러한 해외 우표의 이미지 선택은 외교관계의 기상도와도 밀접히 관련됨을 알 수 있다.

1970년대에는 1972년 북한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이후 1976년 캐나다 올림픽에서 처음 매달을 따는 일련의 사건이 발행하면서 올림픽 관련 스포츠 우표가 급증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우리도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종목이 메달을 따면 국내에서 배드민턴 제품의 사용량이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나곤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스포츠 우표의 급증은 올림픽 메달이라는 사건을 통해 발생한 국내의 스포츠 붐과도 결합되는 현상일뿐만 아니라 스포츠 마케팅을 국가이미지 관리에도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1980년대에 눈에 띄는 변화는 해외 관련 우표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해외 명화 중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루벤스 우표이다. 루벤스 탄생 400돌을 맞아 북한에서 발행한 루벤스 기념 우표는 루벤스가 그린 풍경화를 배경으로 초상화가 놓여져 있다. 배경이 되고 있는 루벤스의 풍경화는 매우 격한 감정이 느껴지는 역동적인 화면이다.

이 화면은 루벤스가 시골풍경에서 실제로 불어오는 폭풍을 관찰하고 스케치하면서 제작된 것으로, 현장에서 자연을 통해 전달받은 감정의 변화가 화면위에서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루벤스의 풍경화는 북한미술계가 지향하는 풍경화와 맞닿아 있다. 우선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작업 과정이 일맥상통한다.

북한 미술계가 현장에서의 스케치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국내에서 북한미술 제작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인민들을 교양하는 것이다. 선전 선동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림을 보는 감상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감상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야 한다. 감동은 어떻게 줄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감상자들과 정서적 교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 김정일 미술론에서는 풍경화를 그릴 때 ‘정서가 차 넘치게 그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감정이 쉽게 감동받을 수 있는 시공간적 계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노을이 지는 풍경에 처하면 자신도 모르게 로맨틱해지는 감정의 변화를 느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폭풍우 치는 바다 한 가운데 서면 엄습해오는 불안의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시공간의 계기를 잘 포착한 루벤스의 화면을 북한에서 주목한다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피카소 우표도 제작되었다. 피카소는 우리나라의 6.25전쟁을 자신의 그림으로 그렸던 작가라는 점에서 한반도와도 관련이 있는 작가이다. 그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그렸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장르는 입체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려고 하는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한 화면에 구축해내는 입체주의라는 화풍은, 피카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북한에서 발행한 피카소 우표에 등장하는 피카소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다.

맨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성을 갖고 있는 대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추상회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리려고 하는 대상을 앞에서 보고, 옆에서 보고, 위에서 보고 아래서 보는 등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고 이때 보여진 부분을 한 화면에 동시에 그려넣게 되는 입체주의 작품은, 얼핏보면 추상화같은 화면을 연출하기 때문인지 북한에서는 입체주의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다.

형식의 새로움이 갖고 오는 전위적 발상을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카소 우표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국내보다는 해외판매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1990년대 이후 해외판매용 우표의 제작은 점점 더 많아 지고 있으며, 이는 우표가 외화벌이 수단으로서 안정적으로 판매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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