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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전하다│또 다른 시선

“국경도 이념도 없는 '아리랑'처럼, 사람과 사람을 통한 소통 꿈꿔요”‘아리랑 인스티튜트’ 한국지부장 마이클 람브라우

정확히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우리네 긴 역사와 함께했다. 오랜 타향살이로 한국말은 잊어도 신기할 만큼 그 노랫가락만은 기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종 외국인들은 애국가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휴전선을 뛰어넘어 남북한 어느 지역에서든 불린다는 우리의 소리, 아리랑의 이야기다.
푸른 눈의 이방인 마이클 람브라우(30)는 ‘인권’과 ‘평화’를 이야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매개체로 이 ‘아리랑’을 떠올렸다. ‘아리랑 인스티튜트’의 한국지부장 마이클 람브라우를 만나 한국과 한국사람 그리고 남북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한국행 선택

마이클 람브라우 ‘아리랑 인스티튜트’는 ‘사람과 사람을 통한 외교’를 목표로 지난 2월, 한국과 미국에서 출범된 비영리단체다. 한국지부장을 맡고 있는 독일계 미국인 마이클은 현재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빅데이터 연구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학생신분으로 한국땅을 밟은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까지 대대로 군인인 집안에서 자란 마이클은 그 역시 군인이 되고자 했고 대학졸업 후 국방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를 2년간 공부한 뒤 지난 2008년 주한미군 통역병으로 한국에 처음 왔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 덕분에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고, 큰 전쟁이 있었다는 이야기 등은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 대학 마지막 학년을 쿠웨이트에서 보내면서 한국 친구들을 사귀게 됐는데, 신기하더라고요. 멀리 중동까지 한국 사람들이 왜 왔을까? 그런 호기심을 시작으로 한국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던 거죠.”

그러나 2년 간 우수한 성적으로 한국어와 문화를 공부한 마이클에게도 언어의 장벽은 높기만 했다. 특히 초기에는 통역관으로 복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 한국어를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고.
“공부하는 것과 말하는 건 다르잖아요. 나름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한 마디도 못알아 듣겠더라고요. 대충 눈치껏 통역을 하면서 한국어를 어떻게 하면 빨리 배울까 생각했는데, 다른 답이 없더라고요. 부대 안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서 떠들고, 놀고, 노래방도 가고요. 하하 그렇게 어울려 지내다 보니 한국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머니의 반대, 그럼에도 꿈을 찾아 다시 돌아온 한국

사실 생소한 것은 비단 한국어만은 아니었다. 한국에 오기전까지만 해도 마이클 가족들은 한국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단다. 특히 어머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할아버지로부터 전쟁 중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한국이 매우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했고, 더욱이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잖아요. 입대를 할 때도 걱정이 많으셨는데 다시 한국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많이 반대하셨어요.”
마이클 람브라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행을 강행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외교적 통로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처음 미국에 돌아간 후에는 잠시 국방부에서 일했어요. 나쁘지 않은 직장이었어요. 그런데 제 인생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거예요. 몇 살에 차를 사고, 결혼하고 집을 하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무엇보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미 외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마이클 람브라우

함께 할 때 더 커지는 힘, 인적네트워크

그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에 삶을 충실히 살아가자’란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 ‘아리랑 인스티튜트’에 합류하게 된 것 역시 그런 영향이 컸다고. 미래를 위해서가 아닌 현재 이 사회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어울리고,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평화적 외교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이클 람브라우 “‘People to People’이란 말이 있잖아요. 사람 대 사람, 개인 대 개인이요. 우린 사람을 믿어요. 사람이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와 가능성이요. 포옹하고 악수하고 시선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죠. 특별히 정치적 이념을 논하지 않아요. 결국 그 평화의 키워드도 사람이란 거죠.”

사실 단체의 정식 명칭에 ‘아리랑’을 넣은 이유 역시, 남한과 북한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소통했으면 좋겠다란 마이클의 생각이 작용했다.
“아리랑은 할아버지한테 처음 들었어요. 가사는 없었고, 그냥 흥얼거리는 멜로디였어요. 할아버지가 복무하던 사단의 행진곡이었대요. 그러다 한국에 와서 ‘아리랑’이란 곡이 ‘또 다른 애국가’처럼 남북한 사람 모두가 듣고 좋아하는 노래란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아리랑’이란 명칭을 넣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좋아하는 곡이니까요.”

내 친구가 말해주는 메시지가 더 설득력 있지 않겠어요?

단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와 소통을 중요시 하다 보니 모여서 주로 하는 일이 ‘노는 일’이란다. 물론 한반도 상황을 주제로 한 크고 작은 세미나도 개최하지만 더 집중 하는 것은 문화와 스포츠를 통한 인간적 교류다. 지난 5월에는 회원들과 북한이탈주민이 함께 단일 축구팀을 만들어 울산에서 열린 외국인 축구대회에도 참가했고, 자전거를 타고 각각 부산과 울산에서 출발한 팀들이 경북 문경에 모인 후 ‘아리랑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단체 “문화나 스포츠를 통한 교류는 언어가 잘 안통해도 문제없어요. 축구 하는 데는 ‘패스’와 ‘슛’, ‘골’만 알면 되잖아요? 그래서 편하고, 더 빨리 친해져요. 쉽게 말하면 인적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거죠. 이 네트워크는 어떤 메시지를 전할 때 더 강한 힘을 발휘해요. 남이 이야기하는 것과 내 친구가 이야기하는 건 받아들이기 다르잖아요?”

축구 한국에 사는 제 3자의 시선으로 봐도 남북한의 분단 현실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라고 말하는 마이클은 우리들에게 인적네트워크 통한 통일이나 평화에 대한 메시지 공유를 제안한다.

“작은 세상 네트워크란 이론이 있어요. 여섯 명의 사람을 거치면 저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도 아는 사이란 말이에요. 저는 인간관계와 그로 형성된 네트워크를 이용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설득하고 공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 ‘아리랑 인스티튜트’의 인적네트워크도 한 몫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글·사진. 권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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