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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

vol 114 | 2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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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교역의 중심 단둥을 가다

썰렁한 북한 식당,
텅빈 호시(互市)무역구

북한과의 교역을 통제할 수 있는 단둥의 해관(세관).<사진> 북한과의 교역을 통제할 수 있는 단둥의 해관(세관).

중국의 경기 하락과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안 발동으로 서늘해진 북·중 교역. 그러나 음지에서도 꽃이 피듯 생계형 북·중 거래는 이어질 수 있다.


| 김명성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강행에 대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통과 이후 국제사회의 시선이 북·중 무역의 요충지인 랴오닝성 단둥에 쏠리고 있다. 단둥은 2006년 1차 핵실험부터 2016년 4차 핵실험까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가 나올 때마다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 역할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 무역의 90%를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는 중국의 이행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한 듯 중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통과 이후 강력한 대북 제재 이행 의지를 밝히고 고강도 대북 제재에 나섰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월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의 내부 법률과 법규에 따라 각 주체와 중국 기업에 관련 내용을 조속히 통보함으로써 수출입 관리규정 등에 근거해 기업들을 엄격하게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도 3월 16일 고려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새 대북 제재 결의를 엄격하고 진지하게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 채택 이후 중국 동북 3성 등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을 오가는 화물에 대한 검색을 대폭 강화했다. 북·중관계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는 3월 16일 기자들과 만나 “중국 해관(세관) 인력이 증원 배치되는 등 전수조사에 못지않은 강력한 검색을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북한발 화물 검색 대폭 강화… 석탄 ·광물 수출 대폭 줄어

“쌍안경으로 바라본 북한 신의주 세관 공관원들이나 단둥에 들어온 북한 무역상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고 어깨가 축 처져 보였습니다.”

3월 11~13일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을 다녀온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 발표로 단둥의 분위기는 전에 없이 썰렁해 보였다”며 “활기차던 단둥 세관은 2월에 갔을 때보다 차량과 인력의 이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통관을 마치고 나오는 트럭 가운데 광물이나 석탄을 실은 차량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면서 “유엔 안보리가 강도 높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중국도 대북 제재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라고 그곳 분위기를 설명했다.

단둥의 대북 소식통은 “중국이 지난 2월 말부터 단둥 세관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트럭 적재중량이나 품목 등을 까다롭게 심사하고 있다”며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전용 가능한 특수 금속 제품에 대한 수출 통제도 강화됐다”고 전했다.

북한의 주력 수출 상품인 석탄과 광물의 대중 수출도 대폭 줄었다. 중국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석탄의 경우 이미 3월 1일부터 북한으로부터 수입을 중단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번 대북 제재안에서 가장 강력한 항목으로 평가받는 북한으로부터의 석탄과 광물 수입 제한조치를 엄격하게 이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원양해운관리회사(OMM) 소속 선박 31척을 동결 대상으로 지정한 안보리 결의 2270호의 이행 여부에 대해서도 정부 당국자는 “(중국 중앙정부의) 지시 공문이 하달돼 이행되고 있는 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단둥의 국제 화물 및 여객 운송을 담당하는 항구는 이미 안보리 제재조치 이전인 지난해 8월부터 북한 선박의 입항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둥항을 보유한 항만 개발기업 르린 그룹 CEO는 유엔 산하기구와 교류하는 등 국제 정세에 밝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북한 화물선이 중국 산둥성의 르자오 항구에 입항하려다 중국 당국의 입항 거부로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이후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 입항이 거부된 북한 선박은 4척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이 2만여 명에 달하는 자국 내 북한 근로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조짐도 엿보인다. 이 경우 교역 활동은 가능하지만 취업은 할 수 없는 ‘도강증’을 소지한 채 불법 취업한 상당수 북한 노동자들이 표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 정부는 3월 16일 폐막한 양회(전국인민대표회의·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계기로 올해와 향후 5년간 시행할 중점 사업 가운데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배제하기로 했다. 이처럼 중국 당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배경과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돌발 행동과 여러 사건에 대한 중국 주민들의 불만과 피로감이 누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단둥의 각 일선 은행에서 달러는 물론이고 위안화 등 모든 화폐를 통한 대북 거래를 중단하는 등 금융 제재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단둥에서 은밀히 영업하던 북한 조선광선은행이 최근 문을 닫은 것으로 3월 16일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2월 말까지 단둥 시내 모처에서 영업하던 조선광선은행 사무실이 최근 폐쇄됐다”며 “(이전처럼) 다른 지역으로 옮겨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안 들린다”고 말했다.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에서 공식적으로는 북한 은행의 영업이 중단됐지만, 일부 은행은 중국의 묵인 아래 단둥 등지에서 암암리에 불법 영업을 해왔다. 이들은 북한 무역업자가 위안화 수출 대금 등을 맡기면 그 액수만큼 평양 계좌에 꽂아주는 ‘환치기’ 업무나 수입 대금을 잠시 빌려주는 영업 등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은행들도 대북 금융 제재에 동참하고 나섰다. 단둥의 자오퉁은행과 쿵상은행 등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대형 은행들은 은행의 국제적 신인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오래전부터 북한으로의 송금을 제한해왔다. 그러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은행들은 그동안의 대북 제재에도 암묵적으로 대북 송금을 해왔다.

대북 금융 제재도 강화

단둥의 대북 소식통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이후 북한에 현금이 넘어가지 못하게 막으라는 중국 당국의 지시가 내려졌다”면서 “소형 은행들은 물론 개별적인 금융 브로커들도 대북 제재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덤 주빈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 대행이 3월 15일부터 베이징과 홍콩을 방문해 대북 금융 제재 문제를 논의함으로써 향후 중국의 대북 돈줄 옥죄기는 더욱 구체화될 전망이다.

대북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단둥의 북한 식당들은 손님이 끊겨 영업에 애로를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북3성에서 불경기로 문을 닫는 북한 식당들이 늘고 일부는 자발적으로 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단둥의 북한 식당을 찾았다는 단둥 주민 A씨는 “북한 식당에 가봤는데 20여 개 테이블 가운데 3개의 테이블에만 겨우 손님이 앉아 있었다”면서 “북한 식당 여성 종업원들은 손님이 줄어 언제 문을 닫게 될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더라”고 전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교민과 여행객 등을 대상으로 북한 식당 이용 자제령을 내리면서 한국인 손님이 급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 식당에서 북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종업원<사진> 북한 식당에서 북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종업원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반감과 중국 경기 하강이 겹친 탓”이라고 했다. 대북 제재로 교역량이 줄면서 단둥의 무역상들도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둥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 무역상에게 물품을 공급하는 단둥의 가게들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며 “단둥 해관(세관) 부근에 조성된 고려촌(한국·북한 민속거리) 일대의 음식점과 가전제품점 등은 평일 한낮이었지만 상당수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의 여파로 단둥에 개설된 ‘조·중변민호시무역구(朝中邊民互市貿易區)’는 5개월이 넘었는데도 파행 운영을 거듭하는 등 북·중 간 경제협력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단둥 해관 근처 대북 무역상 밀집지역 가오리제(高麗街)의 중국 무역상들도 이번 제재조치에 바짝 긴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의류 등 민생 관련 물품은 대북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단둥시 북쪽 전안구 러우팡진 싱광촌의 석유저장소. 중국이 북한에 대한 석유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면 이곳 송유관 밸브를 잠가야 한다.<사진> 단둥시 북쪽 전안구 러우팡진 싱광촌의 석유저장소. 중국이 북한에 대한 석유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면 이곳 송유관 밸브를 잠가야 한다.

북한행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중국 여행사들도 상품 판매를 일시 중단하는 등 제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둥의 압록강변 공원 유람선 매표소에는 이용객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대북 제재로 단둥은 물론이고 북한 신의주, 선천, 정주, 안주, 개천, 평성, 평양으로 이어지는 서해안 벨트의 경제권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석탄 수출 중단으로 안주·개천·덕천지구의 탄광 노동자 수만 명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핵 폭발장치 추정 물체와 탄두의 대기권 진입 모의실험을 공개하며 반발하고 있다. 북한이 배짱을 부리는 배경에는 중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 동참 목적이 북한 정권 붕괴가 아닌 대화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단둥시가 북·중 경제협력을 위해 만든 ‘조·중변민호시무역구(朝中邊民互市貿易區)’의 개점 직후 모습. 그때도 썰렁했는데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지금도 텅 비어 있다.<사진> 단둥시가 북·중 경제협력을 위해 만든 ‘조·중변민호시무역구(朝中邊民互市貿易區)’의 개점 직후 모습. 그때도 썰렁했는데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지금도 텅 비어 있다.

중국의 대북 제재 목적은 북한을 회담장에 끌어내기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2월 23일 “북핵 등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선 단순히 제재와 압력을 맹신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추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3월 8일 양회 기자회견에서는 “제재는 필요한 수단, 안정은 시급한 과제, 담판은 근본적인 길”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대북 제재로 단둥이나 동북3성의 경제적 피해가 커질 경우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벌써부터 중국 관영언론은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 경제에 위기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며 단둥시가 ‘질식사’ 위기에 처했다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나가면 보트를 탄 북한인이 다가와 승객에게 북한 술과 담배 등을 고가에 판매한다. 관광객 감소로 이러한 북· 중 거래도 줄어들었다.<사진>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나가면 보트를 탄 북한인이 다가와 승객에게 북한 술과 담배 등을 고가에 판매한다. 관광객 감소로 이러한 북· 중 거래도 줄어들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추시보 영문판은 3월 17일 ‘얼어버린 변경’이라는 제목의 장문의 르포를 통해 단둥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입주자가 없어 유령도시로 전락한 ‘단둥신도시’의 모습과 대북 제재 피해를 우려하는 현지 무역업자의 심경을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새로운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한 데 대해 “유관 국가와의 접촉에서 그 어떤 독자적인 제재 행동으로 중국의 정상적인 이익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훼손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점을 수차례에 걸쳐 명확하게 표명했다”고 밝혔다.

최경희 한양대 현대한국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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