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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위한 평화의 카운트다운 만들고 왔어요” DMZ 해마루촌 봉사활동 참가한 동서대 디자인과 학생들
                    
                    일반 사람들은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민통선 내 작은 마을 해마루촌. 6년 전부터 이곳에 하나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평화를 상징하는 고라니가 몇 마리 씩 늘어나더니 마을 아이들이 뛰노는 일상을 담은 벽화와 예쁜 벤치가 생겼다. 그리고 올해는 그 ‘완결판’으로 통일을 위한 평화의 카운트다운 조형물이 세워졌다. 2015 ‘DMZ 해마루촌 디자인예술마을 만들기’를 위한 동서대학교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의 봉사활동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어보자.

9월 통일토크 참가자

그렇게 힘들진 몰랐죠, 해놓고 보니 뿌듯해요

정균 ▶ 저학년 때는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가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친구들과 함께 갔어요. 힘든 작업이라는 걸 알고 가긴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정말 쉽진 않더라고요. 저는 54321이라는 숫자의 철판조형물을 땅에 그냥 올리는 줄 알았는데 밑 작업부터 하시더라고요. 땅을 파서 시멘트를 붓고 굳히는 작업이 가장 힘들긴 했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조형예술 마을이라는 느낌이 나서 좋았어요.

진욱 ▶ 작년에 갔을 때는 평화의 상징 고라니로 공원을 꾸몄었는데 올해는 54321 카운트다운 숫자조형물 설치했어요. 공원이 통일의 출발점 같아 뿌듯했고, 1년 만에 가봤는데 정겨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6년간의 봉사활동에 대미를 장식하는 카운트다운을 넣었으니 앞으로는 DMZ 내 다른 마을에서도 이런 활동을 펼치면 좋을 것 같아요.
DMZ 해마루촌 봉사활동 참가한 동서대 디자인과 학생들

유라 ▶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전 DMZ 문화상품을 기획하는 강의를 들으면서 해마루촌의 이야기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했었어요. 수업이 끝난 뒤 제가 만든 상품도 전해드릴 겸 따라갔는데 사실 그렇게 힘들 거라곤 상상도 못 했죠. 한낮에 페인트칠 하고 전시상품 테이블을 만드느라 직접 망치질도 했었어요.

DMZ 해마루촌 봉사활동 참가한 동서대 디자인과 학생들 정호 ▶ 민통선 안에 조형물을 설치하는 디자인봉사활동이 흔한 경험은 아니잖아요? 사실 54321 카운트다운에 대한 기획을 들었을 때 ‘많은 디자인을 두고 왜?’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남북한 주민들이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이었던 것 같아요.

성범 ▶ ‘봉사활동에 꼭 참가해야지’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DMZ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고 있더라고요. 이번 작업을 통해 디자인과 조형물이 만나면 강한 에너지가 생긴다는 걸 느꼈어요.

호진 ▶ 광복과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에 이런 활동을 하게 돼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DMZ는 한 번도 안 가봤기 때문에 호기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군화를 뚫는 모기, 작열하는 태양도 막지 못한 봉사 열기

진욱 ▶ 작년에 비해 그래도 올핸 남자 인원이 많아서 다행이었죠. 54321 카운트다운 조형물을 설치했더니 마을 주민들이 매우 만족스러워하셨어요. 가로등이 없어 해가 지면 금세 어두워지는 곳인데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고 싶은 공원이 됐다고 하셨죠. 올해 다시 와 보니 풀이 많이 자라있어서 손으로 직접 뜯고 조형물을 세웠는데 앞으론 풀이 미처 자랄 수 없게 많은 분들이 조형물을 보러 공원을 방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성범 ▶전 이장님께서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앞으로 고생하게 될 것 같다’며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셨어요. 특히 파주지역에선 말라리아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모기를 40방이나 물렸어요. 심지어 군화를 뚫고 무는 바람에 힘들었지만 완성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전 이장님과 현재 이장님 모두 지원도 많이 해주시고 다 끝난 뒤 잔치도 열어주시니까 이 마을을 떠나기 싫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조형물 설치 호진 ▶ 사실 작업하는데 너무 날씨가 덥긴 했어요. 막노동에 버금갈 정도로 삽질을 해댔는데 그래도 동생들이 열심히 하면 형들은 또 그 모습을 보고 힘내면서 곡괭이질, 삽질을 한 번씩 더 했던 것 같아요. 여학우들도 열심히 해줬는데 참 신기한 건 힘든 와중에도 다음 날 아침에 보면 다들 화장을 하고 나오더라고요(웃음).

유라 ▶ 6년째 공들여서 통일을 위한 예쁜 조형물들을 만들어놨는데 외부인이 쉽게 와서 구경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좀 안타까운 것 같아요. 보다 많은 국민들, 그리고 외국인에게 이런 의미 있는 공간을 알릴 수 있도록 홍보해주셨으면 해요. 그렇게 해야 평화통일을 위한 메시지가 더욱 널리 전파되지 않을까요?

완성된 고라니평화공원

6년 봉사활동의 결실, 통일의 에너지로 결집되길

DMZ 해마루촌 봉사활동 참가한 동서대 디자인과 학생들 성범 ▶ 저는 해군출신이라 DMZ는 처음 가봤거든요. 대성동 마을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고요. 마을 들어간 지 5일 만에 장보러 밖에 나왔는데 마치 휴가 나온 군인이 된 기분이었어요. 짧은 외출이었지만 너무 행복했어요(웃음).

정균 ▶ 민통선 안에 들어왔을 땐 여느 시골농촌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물들이 사람구경을 별로 안 했는지 피하질 않아요. 마을 안에서도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 사는 친근한 동네 같은데 갑자기 미군들이 카멜백을 메고 행군하는 걸 보니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다는 게 어색하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전쟁참전21개국수도이정표 진욱 ▶ 작년에도 왔었기 때문에 위병소를 통과할 때도 특별한 생각은 없었는데, 이번에 목함 지뢰로 다리를 잃은 것을 보면서 이 지역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매년 사고 없이 진행된 것도 다행이고 이런 일을 해냈다는 것에 자부심도 있어요.

성범 ▶전 거꾸로 마을에 들어갈 때는 군인들이 통제해서 삼엄하게 느껴졌는데 막상 마을에 들어와 보니 통일을 위한 프로젝트를 왜 이곳에서 하게 됐는지 알게 됐어요. 마을 주민들의 염원과 더불어 선배들이 설치해둔 조형물에서 평화통일을 향한 마음이 강하게 느껴졌어요. 선배들의 작품을 보며 후배들이 영감을 얻고 봉사활동을 지속하다 보면 통일을 향한 에너지가 점점 더 쌓이고 커질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유라 ▶ 지난 봄 DMZ 문화상품 기획 수업 때 해마루촌 어르신들을 만나보니 70~80대로 연세들이 많으셨어요. 이번 봉사활동 때 다시 찾아뵙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캔버스 액자나 엽서 같은 물건을 만들어 전달했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헤어질 때는 마음이 좀 찡했어요.

디자인으로 '행복한 통일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성범 ▶ 과거 조형물에는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평화의 카운트다운이나 고라니에도 통일이 이뤄지길 바라는 강한 염원을 담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엔 그런 힘이 있거든요. 통일 이후에도 디자인은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남북한간 문화적, 경제적 격차가 크다고 들었는데 북한 내에서 공공디자인을 활발하게 펼쳐서 남북한 주민들이 좀 더 쉽고 빠르게 화합할 수 있게 되길 바래요. DMZ 해마루촌 봉사활동 참가한 동서대 디자인과 학생들

진욱 ▶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 통일을 이뤄야 할 사람들도 저희 세대고, 설령 부정적인 결과가 오더라도 저희 힘으로 바꿔나가야 한단 생각이 들었어요. 디자인은 아이디어 하나로도 세상을 흔들 수 있는 힘이 있어요. 통일 이후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디자인을 통해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아요.

DMZ 해마루촌 봉사활동 참가한 동서대 디자인과 학생들 정균 ▶ 우리나라 국민들을 보면 통일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잖아요. 특히 우리 청년들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할 것 같아요. 통일이 되면 북한지역에서 산업 발전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고 청년들의 일자리도 늘어나겠죠. 북한에도 디자인 회사가 많아질 테니 그만큼 기회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정호 ▶ 통일이 된다면 현재 분단관리비용을 문화 분야에 투자할 수 있었으면 해요. 예전엔 군사력이 국가의 힘이었다면 지금은 문화가 힘이잖아요. 문화컨텐츠, 디자인 분야에 보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면 통일비용 마련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요?

DMZ 통일발걸음 통해 더 가까워진 우리들

미니인터뷰 / 안병진 교수 해마루촌 봉사활동 6년, 문화 통해 통일에 접근할 것

평화의 상징 고라니로 마을 공공디자인

DMZ 해마루촌 봉사활동 참가한 동서대 디자인과 학생들 동서대 시각디자인과 안병진 교수는 부모님의 고향 장단 근처인 해마루촌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어르신들의 제안을 받고 이곳에서 디자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벽화 봉사를 하다 DMZ로 옮겨온 것이 6년 전 여름.
첫 해에는 회색빛 창고에 고라니를 그려 넣고 탁구대엔 마을 아이들을 채색해 갤러리처럼 꾸몄는데, 안 교수의 아내이자 사진작가인 장화영 씨가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촬영해 벽화 스케치를 도왔기 때문에 그림만 봐도 누구 아이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다고.

학생들 고생 많았지만 전공과 인생에 도움 될 것

평회의 카운트다운 조형물 제막식 올해 만든 평화의 카운트다운 54321은 3m 높이의 거대한 철판 조형물로 비용 면에서는 학교의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제작비용등이 만만치 않아 안 교수가 스폰 업체들의 디자인설계 업무를 도와주며 ‘몸으로 때웠다.’ 이 작업 후원에 참여한 업체만도 5곳.
주어진 일주일간 조형물이 공장에서 도착할 때까지 학생들은 땅을 파고 콘크리트 작업을 했는데, 개막식이 가까워 오자 나중에는 밥도 굶고 일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 학기 내내 수업 듣는 것보다 이곳에서 보낸 일주일간 더 많은 것을 배웠다는 학생들의 말을 들으면 흐뭇해진다. 이번 작업엔 특히 할아버지가 중공군으로 6.25전쟁 때 참전했다는 중국 유학생 2명도 함께해 마을 주민들과 상징적인 ‘화해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DMZ봉사활동 선후배간 전통으로 자리잡아

“사실 통일이 쉬운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땅굴 견학을 다녀오거나 군대로 면회 오는 사람들이 통일조형물을 보며 ‘이런 마을에 평화가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었어요.”
안병진 교수와 장화영 씨는 앞으로 좀 더 일을 확장해 볼 생각이다. 해마루촌에는 이미 공원과 거리가 조성됐기 때문에 인근 마을로 넓혀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 중이다. 20여 명 가량의 학생들이 6년째 참여했으니 해마루촌 봉사활동 참가 학생만 백여 명이 넘는다. 이미 동서대학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DMZ디자인봉사활동올 통해 앞으로도 많은 디자인학도들이 통일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사진. 기자희, 사진제공. 포토그래퍼 장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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