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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부는 외국어 열풍, 세계와 소통 가능성 넓혀 지성림(연합뉴스 기자,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 4월 준공한 김일성종합대학의 전자도서관에 보낸 이른바 ‘친필명제’이다. ‘폐쇄적’이라고 생각하는 북한 당국도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경제 발전이 중요하고, ‘자력갱생’만으로는 경제 발전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찾은 해답이 ‘눈을 세계로 돌려라’ 즉 외국과의 경제 교류 및 협력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영어 러시아어 반반씩 교육

필자가 기억하기로 1999년경 김정일이 다가올 21세기를 주제로 간부들과 나눴다는 얘기가 대학생들에게 ‘방침’으로 전달된 적이 있다. 당시 김정일은 ‘21세기 인간형은 영어와, 컴퓨터, 자동차에 능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식량이 없어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던 북한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 같았지만, 어찌 됐든 김정일은 당시 세계화에 대해 고민했고, 이를 위해서는 영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대사 평양외국어대학 참관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시장이 붕괴되고, 이 여파로 북한 경제가 몰락하기 전까지 북한 영어 교육의 목적은 세계화와 연관이 없었다. 당시 북한은 학생들에게 ‘적과 싸워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 한다’는 논리로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런 황당한 ‘중요성’ 때문에 당시 북한 학생들은 인민학교(지금의 소학교) 졸업반 때 알파벳이나 간단한 영어 단어를 배우면서 영어의 ‘맛’을 봤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인민학교 4학년 학급을 절반으로 나눠 영어와 노어(러시아어)의 기초를 가르쳤다. 물론 초등과정에서 러시아어 교육은 사회주의 소련이 망한 지 10년이 지난 2000년 이후 사라졌다.

북한 중등교육에서 영어는 중요한 '필수과목'

북한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인 외국어 교육을 받는다. 아직도 북한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는 중학교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영어의 경우 매주 수업이 진행되는 등 중요한 필수 과목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지 한편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교육에서 핵심적인 중등교육 시스템은 바로 각 도에 하나씩 있는 외국어학원(우리의 외고에 해당)이다. 평양외국어학원, 신의주외국어학원, 청진외국어학원 등 외국어 특목고에서는 영어와 함께 중국어, 일본어도 가르쳤다. 영어 교재의 수준과 내용은 일반 중학교와 차이가 많이 났다. 외국어학원 졸업생들은 김일성대 외국어문학부나 평양외국어대학, 사범대학 등에 진학을 할 수 있다.

외국어학원뿐 아니라 평양과 각 도에 하나씩 있는 과학영재학교인 제1중학교에서도 외국어교육을 강화한다. 역시 외국어 교재는 일반 중학교보다 수준이 훨씬 높다. 교사들은 이들 과학영재들에게 “외국 원서를 읽기 위해서는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며 ‘스파르타식’으로 주입식 교육을 실시했다. 매일 아침 등교시간이 되면 영어교사와 담임교사들이 학교 정문 앞에 지키고 서서 학생들에게 전날 배운 영어 지문을 외우게 하고 통과한 학생만 들어가게 하는 모습은 평양제1중학교의 진풍경이었다. 1중학교 학생들은 졸업반인 6학년 때 2외국어로 중국어와 일본어를 선택해 배우기도 한다.

지방 대도시까지 영어 사교육 확대 추세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교관이나 해외무역일꾼의 자녀, 또는 그런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주로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했지, 일반 중학생은 물론이고 영재학교 학생들도 대학 진학과 성적을 위해 ‘억지로’ 외국어를 배웠을 뿐이었다. ‘해외에 나가지 못할 바에는 세계와 단절되다시피 한 북한에서 영어를 배워 어디에 쓰겠느냐’는 것이 당시 일반적인 북한 학생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영어 교육을 세계화와 연관시키면서 세계 공용어인 영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김정일 정권 말기 경제 회복을 위해 시장을 활성화하고 중국을 비롯한 외국과의 경제 교류를 확대하면서 영어와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학교에서만 배우고 마는, 성적을 받기 위해서만 필요한 ‘죽은 외국어’가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살아있는 외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미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특히 대학 진학 등을 위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급기야 ‘영어 과외’까지 등장했다. 평양에서 수학과 영어 과외를 한 경험이 있는 대학생 출신 탈북자에 따르면 평양의 평균 사교육비는 수학의 경우 20달러(1개월), 영어는 20~30달러(1개월) 정도라고 한다. 또한 평양뿐 아니라 지방 대도시들에서도 영어 사교육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한다. 북한 당국도 정책적으로 외국인을 활용한 영어 교육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특히 북한은 영어 교육을 위해 영국의 지원을 많이 받고 있다. 영국문화원은 지난해 북한 영어교사 400여 명을 대상으로 영어 교수법 교육을 했으며, 200여 명의 북한 대학생에게 스피킹(말하기)과 리스닝(듣기) 중심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했다. 영국문화원은 2000년부터 원어민 강사를 북한 교육기관에 파견해 영어 교수법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북한은 영어권 외국인들이 북한의 중학교와 대학을 방문해 1일 영어강사로 나서는 관광 상품까지 개발하며 원어민을 통한 영어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외부세계와 소통하려는 주민들의 열망 키울 듯

북한에서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평양외국어대학과 김일성대 외국어문학부다. 이곳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다양한 외국어 전공자들이 있다. 이외 일반 대학과 일반 학과에서는 1외국어로 영어를, 2외국어로 주로 중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친다. 외국어 강의는 보통 대학 1~2학년 과정에서 끝나며 그 이후부터는 전공 원서를 읽는 등 외국어를 활용해 전공 공부에 집중하는 식이다.

전자도서관 최근 북한에서 다른 외국어보다 특별히 영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컴퓨터 붐이 부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평양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도 좀 산다는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컴퓨터를 사주는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컴퓨터 용어가 영어로 되어있는 만큼 컴퓨터를 잘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영어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더 높아지게 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근 불고 있는 외국어 열풍은 북한이 경제개발구 설치를 비롯해 외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산업 발전에 힘을 쏟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최근 북한에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열풍이 부는 것은 아주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만큼 외부세계와 소통하려는 북한 주민의 열망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열망을 북한 당국이 언제까지나 통제하고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이 빗장을 열고 국제사회로 나올 그날을 기대해본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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