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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감 좌충우돌 남한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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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친구들과 제기까기 하던 때가 생각나요

2013년 북한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남한으로 온 열일곱 살 윤희(가명, 함경도, 당시 열다섯 살)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 생각만큼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 영어 과목을 보충하느라 분주하다. 아직 영화관에도 안 가봤고 놀이공원도 한 번 안 가봤다는 윤희는 현재 남한에서의 학교생활이 맘에 들지만, 놀이만큼은 북한 친구들과 했던 게 훨씬 재미있단다.

반납할 교과서에 왜 이름을 쓸까?

윤희는 남한학교에 입학한 뒤 새 교과서를 받고 좋아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북한에서는 언니 오빠들이 쓰던 교과서를 물려받기 때문에 낡거나 아예 몇 페이지가 찢어지고 없는 교과서를 사용하기도 했다.
“수업내용을 메모할 때 저는 따로 공책을 만들어 그 위에 적었어요. 그런데 남한 애들을 보니 교과서에 자기 이름을 적고 책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는 거예요. ‘어? 쟤네 왜 그러지? 교과서 바치려면(반납하려면) 나중에 다 지워야 할 텐데?’라며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교과서는 자기가 갖는 거래요. 게다가 북한에선 책 한 개로 2~3명이서 같이 공부하다 보니 시험 때마다 먼저 교과서를 차지하려고 신경전도 벌이는데 여기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편하더라고요.”

또 한 가지 놀랐던 건 체육과목에 교과서가 있다는 거였다. 북한에선 체육선생님이 ‘하고 싶은 거’ 하시는데 한국 교과서에는 다양한 체육관련 지식이 나와 있어서 흥미로웠단다. 특히 북한 체육시간엔 ‘고조평행봉’이란 게 있어서 의무적으로 다들 배워야 했는데, 높은 데 올라가는 것도 무서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예술체육’을 배우는 것도 싫었다고.

이미지 남한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바라보는 윤희의 시선 또한 매우 긍정적이고 어른스러웠다.
“한국 쌤(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모르는 거 물어보면 따라다니면서 알려주시잖아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어요. 북한은 애들이 공부할 마음도 없고, 선생님도 뭘 물어보면 노골적으로 귀찮아하세요. 근데 남한 선생님들은 무섭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져요. 오히려 애들이 쌤들에게 욕을 할 때가 있는데, 북한에서는 그런 거 상상도 못해요. 그런 말 하면 걔는 하루 종일 맞을 걸요(웃음).”

윤희는 ‘남한 아이들이 예의를 잘 지킨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 말뜻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우리들끼리 ‘고맙다’, ‘미안하다’ 이런 말을 안 하거든요. 예를 들어 실수로 남학생이 여학생의 신발을 밟았다고 하면 여기서는 ‘미안해’라며 사과를 하잖아요. 그런데 거기서는 쓱 지나가요. 또 남학생과 여학생이 싸우면 여기서는 여자가 약하니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서는 서로 봐주는 거 없이 싸웠어요.”

남한 학교는 일을 안시켜서 좋아요

하지만 TV의 교양오락 프로그램은 아직 재미있는 줄 모르겠고, 개그는 확실히 북한 것들이 재미있단다. 북한은 TV 채널이 1개밖에 없어 ‘석개울의 새봄’과 같은 오래된 영화를 반복해서 틀어주곤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TV프로를 보는 대신 녹화기를 사서 CD를 넣어 보곤 한다. 윤희는 엄격한 단속 대상인 한국드라마 대신 중국이나 싱가포르 드라마를 가끔 봤다고 했다. 그리고 역시나 아직 어린 소녀답게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며 열을 올린다.

이미지 “소년장수 쇠매, 다람이와 고슴도치 이런 만화는 북한정권을 대놓고 찬양하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내용이 재미있어요. 물론 은연중에 사상적으로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겠죠. 하지만 쇠매는 고구려 장수이고, 백성들을 잘 단합해서 나쁜 놈들을 쳐부순다는 내용이에요.”

남한과 북한의 장점이 반반인 것도 있다. 북한 학교에서는 농장에 일을 하러 보내는데 남한 학교에서는 일을 안 시켜서 ‘되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남한에선 그만큼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해서 ‘아주 좋은 지는 잘 모르겠다’며 웃는다. 초등학교 고학년까지야 나무 같은 거나 하러 다니지만 중학생이 되면 새벽 4시부터 산에 들어가 일을 시작해서 밤 11시에나 집에 들어오는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고.

“게다가 남한 학교는 따로 청소해주시는 도우미가 있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선 석개칠, 벽 청소, 화장실 청소 같은 걸 학생들이 다 해요. 특히 교장선생님 사택을 지었을 땐 새벽에 하천에 가서 자갈을 꽤 많이 주워다 날랐던 기억도 나요.”

함께 있어도 ‘핸드폰 문자로 대화하는’ 남한 아이들

통일토크(바로가기)에 참가했던 한 학생은 통일이 되면 염소를 많이 사서 북한에 가져다주고 싶다고 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를 몰고 북한에 온 적이 있지만 소는 주로 경작용으로만 쓰는 반면, 염소는 우유도 먹고 고기도 먹는 ‘버릴 것 없는’ 가축이기 때문이라고. 윤희도 북한 학교에서 염소젖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다른 학교엔 없었지만 우리 학교엔 염소가 많아서 아이들은 염소젖을 먹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노린내가 나고 물을 너무 많이 타는 데다, 소금간이 그때그때 달라 어쩔 땐 짜고 또 어쩔 땐 너무 싱거워 맛이 없었어요.” 그렇다면 남한에서 먹는 우유급식은 어떤지 물었더니 처음 먹었을 땐 노린내도 없고 좋았는데 먹고 나니까 속이 거북해져서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털어놓는다. 아마 우유를 꾸준히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유당불내증’을 경험한 것 같았다.

윤희가 제일 좋아하는 남한 음식은 떡갈비와 치킨이라고 했다.
“북한에선 닭을 삶아서 먹는데 여긴 튀겨서 먹잖아요. 북한 친구들도 치킨이나 피자를 간식으로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친구들은 간식이 아니라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좋을 거예요. 밥도 이밥이 아니잖아요.”
윤희는 북한 친구들과 놀던 때가 많이 그립다고 했다. 놀이의 이름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공기놀이도 하고 제기까기(오자미 같은 걸로 맞추며 하는 놀이)도 하고, 땅에 그림을 그려놓고 하는 망차기(사방치기)도 재미있어서 해지는 줄 모르고 놀았다는 윤희.
“그런데 남한 애들은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서로 핸드폰을 갖고 놀잖아요. 심지어는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카톡으로 대화를 하니 재미 없는 것 같아요.”

이미지 남한 사회에 나오자마자 첫날에 핸드폰부터 샀던 윤희였다. 처음 자기만의 핸드폰을 갖게 됐을 땐 설레고 좋았는데, 핸드폰을 잘못 만지면 폭탄요금이 나온단 말에 한동안은 시계 대용으로만 썼다. 핸드폰은 누군가에게 연락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엄마 외엔 통화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 고향 마을에도 폴더폰을 가진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보고 싶고 목소리도 듣고 싶은데 북한에 계신 아빠도, 친구들도 전화기가 없어 연락할 수가 없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윤희는 빨리 남북한 왕래가 자유로워져서 핸드폰으로 즐겁게 수다를 떨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 기자희>

※위 사례에서 소개된 북한의 문화는, 북한이탈주민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으로 현재 북한의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역과 탈북 연도를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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