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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부는 ‘한류’는 어떻게 왔으며, 어디쯤 있을까? 김 효 진(남북경제연구소 연구기획실장)‘한류(韓流)’란 한마디로 한국에서 유행하고 인기를 끈 각종 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한국의 물결’(Korean wave)로 부르면서 정착된 단어이다. 1990년대 말부터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된 ‘한류(韓流)’가 폐쇄체제 북한에도 물밀듯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에는 흥미로운 시사점이 있다.

한류,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까지 전파돼

북한 내에서도 평양, 평성, 청진, 함흥, 원산, 신의주 등 중국과의 접경지역과 대도시는 한류의 온상과 같은 지역이다. 영화, 드라마, 가요, 가전, 생활용품, 패션, 음식 등 그야말로 생활과 문화의 전 분야에 걸쳐 한국의 각종 아이템이 인기상품으로 부상한 것이다. 한류 현상이 대도시와 접경지역을 넘어 지방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으로 전파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돼버렸다.

과거 당 간부나 부유층 등 상류계층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불었던 자본주의 ‘황색 바람’이 이제는 40대 이상 중·장년층과 일반 서민계층에게까지 일반화된 추세다. 한류 열풍이 북한 전역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된 계기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1990년대 북한에 닥친 기근과 극심한 경제위기 등 ‘고난의 행군’을 견뎌낸 북한주민들의 생존본능이 한류현상을 불러왔다. 심각한 삶의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배급마저 망가진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장마당이라 불리는 자생적 시장을 형성, ‘거래’란 것을 개시하면서 철옹성 같던 북한사회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식량만 구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의 물품이든 시장에 들어오고, 순식간에 소비되어 사라지는 자본주의적 시장 메커니즘의 경험을 통해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학습효과를 갖게 된 것이다. 돈이면 ‘주체사상’도 사고 팔 수 있다는 걸 배운 것이다.

척박한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남한영화와 드라마, 대중가요는 북한 주민들의 척박한 현실, 지친 몸과 마음이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안식처로 자리잡은 셈이다. 북한당국이 철저하게 단속했지만 좋은 것을 보고 누리며 안식을 찾는 본능마저 억누르기란 불가능하다. 한국 드라마와 대중가요에 열광하는 반응은 자연스런 일이 된 것이다.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말, 헤어스타일, 패션, 가전제품, 음식까지 온갖 붐이 일어난 것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할 정도이다.

별에서 온 그대 김수현 전지현 북한에서는 CD-ROM과 DVD를 통칭하여 ‘씨디알’(또는 ‘알판’)이라 부르는데, 노트북 컴퓨터와 ‘씨디알’, 혹은 컬러 TV와 재생기 또는 ‘씨디알’만 있으면 얼마든지 남한 드라마 시청이 가능하다. 가격이 가장 싼 것은 중국산 중고 TV나 재생기, 중국산 중고 미니 노트북 컴퓨터로, 값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웬만한 가정의 경우 이 정도는 갖추고 있다.

이처럼 북한에 부는 한류 열풍은 이미 경계선을 넘어섰다. 당·군·정의 간부층 상당수가 한류 애호가들로부터 압수한 영상 콘텐츠를 소각하지 않고 직접 시청하거나 되팔기까지 한다는 소문은 공공연하다. 중국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도 성룡의 액션영화와 007시리즈를 좋아한다고 한다.

식초와 고추장 소주까지 한국산 제품 인기 독차지

고추장 최근엔 남한 분유를 테이프로 감아서 밀반입하고 학기 초가 될 때마다 한국산 학용품을 찾는 손길이 부쩍 늘었다고 알려졌다. 초코파이, 신라면, 커피믹스 등이 북한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역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요즘에는 식초와 고추장에 이어 한국소주까지 북한주민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장마당에서 한국산 화장품 등은 요주의 단속 대상이지만 고추장은 식료품으로 취급돼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판매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진짜 한국산 물품은 단속되면 곤란하지만 한국산 가짜 상표를 붙이고 팔다 적발되는 경우에는 가벼운 질책만 받을 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30~40대 젊은 엄마들 중에는 한국의 과외열풍을 보고 자녀들에게 개인교사를 붙여 공부시키거나 집안이 비슷한 부모들끼리 모여 실력 있는 대학교수들을 초빙, 학원형태의 방과 후 학습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한류, 남북한 문화적 통합 위한 촉매 역할 기대

고전학파 경제학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세이’의 법칙)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수령제 공산주의 폐쇄체제 북한에서는 시장(장마당)을 통해 높아진 수요는 어떻게든 반드시 공급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그 중심에 한국의 온갖 물품과 문화가 깔려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인간관은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인 사고에 입각해 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봉인 수령옹호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북한식 인간관과 본질적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AOA따라서 북한 사회에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더욱 그 영향력이 확산돼 가고 있는 한류는 폐쇄된 북한 사회와 체제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잠재된 힘으로 자리 잡았다. 한류를 통해 남한의 다양한 문화와 콘텐츠를 향유한 북한주민들 마음에서 남한문화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정이 누그러뜨려질 것은 자명하다. 또한 북한 주민들 사이에 확산된 남한의 대중문화와 생활 콘텐츠가 북한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란 예측도 어렵지 않다.

한류로부터 형성된 자본주의적 감성과 새로운 미적 감각이 북한 주민들의 의식에 집단적인 변화를 촉진하고, 그 결과 발생하는 주민들의 의식 전환과 가치관의 변화는 북한사회의 저변으로부터 변화를 견인할 사회적 동력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높다. 나아가 이러한 일련의 북한 내 한류 현상은 남북한 간 문화적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사진제공 : SBS,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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