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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메뉴 기사검색 Vol. 51 / 2017.04

즐거운 통일 | 여행이 문화를 만나다

지금 나에게 건네는 안부‘전남 순천’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때론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 때가 있다. 견딜 만 하다고 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슬프지 않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할 만하니까 버티는 일보다 해야 하니까 이 악물고 버티는 일이 더 많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수많은 명제 대부분은 양팔저울에 올려 판단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나쁘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한다. 어쩌면 긴 오수(午睡) 한 번에 사라질 짧은 계절이니, 고백해 본다. 지금 나는 썩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진짜 ‘괜찮아’지면 될 터이니. 봄이 녹아 꽃으로 피어난, 순천으로 향한 것은 진짜 ‘괜찮아’지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전남 순천

세상의 모든 꽃들에게, ‘선암사’

언젠가 남도 여행길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으면 곧장 ‘선암사’로 향하리라 다짐했었다.
정호승 시인의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는 시구 탓이리라. 사찰에서는 ‘근심을 푸는 곳’이란 의미를 담아, ‘화장실’을 ‘해우소’라 칭한다. 하다못해 ‘화장실’마저 기차타고 가볼 만한 곳이라니 우는 일에 박해진지 오래라 눈물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무작정 선암사로 걸음을 옮겨본다.

근엄한 얼굴의 천년사찰이라 해도 봄이 반갑기는 매한가지. 사찰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숲길 곳곳에는 성실한 봄의 흔적이 여지없이 남겨져있다. 그리고 제법 수다스럽게 재잘대는 물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우리나라 돌다리 중 아름답기로 첫 손에 꼽힌다는 승선교를 만날 수 있다. 이음새 하나 없이 커다란 돌들을 맞물려, 쌓아올린 돌다리는 조계산 맑은 선암천과 어울려 감탄사를 자아낸다.

선암사 정문

선암사의 유명한 돌다리

선암사의 아름다운 건축양식

그리고도 다시 한참을 걷다보면 선암사의 자랑 중 하나인 800년 된 야생차밭으로 지나 일주문에 당도할 수 있다. 겹겹이 쌓인 단청의 모양새부터 예사롭지 않은 일주문을 지나자 비로소 천오백 년 세월을 품고 있다는 경내에 들어선다. 조계산 자락을 타고 흘러내린 봄 햇살이 고여, 꽃으로 피어난다는 사찰은 긴 세월로 인해 빛바랜 단청에도 불구하고 화사한 얼굴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얼굴 중에는 매화란 이름의 고운 꽃망울도 끼어있다.

원통전과 종정원 돌담을 따라 피어난 50여 그루의 매화나무는 특별히 ‘선암매’라 불린다. 수령이 350~650년 정도 된다는 ‘선암매’는 사실 일반적인 매화에 비해 꽃송이는 잘은 편이지만, 고아한 향만은 지친 여행객도 오래 머물기를 주저 하지 않게 한다. 특히, 고려시대 대각국사가 처음 심었다고 전해지는 무우전 인근의 600년 수령의 매화나무 ‘무우전매(無優殿梅)’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암사의 자랑이다.

선암사 사찰 내부

매화꽃

자연이 선사하는 서정 ‘순천만습지’

단아한 자태의 매화 향에 취했었다면 이번에는 바람을 맞으러 떠날 차례. 순천의 바람은 순천만에서 만날 수 있다. 늦가을 은빛으로 반짝이는 갈대도 유명하지만, 봄부터 여름까지 초록빛으로 일렁이는 풍광 역시 장관이다.

‘순천만습지’는 세계에서도 드문 온전한 연안습지로 다양한 동식물의 쉼터가 돼주고 있다. 박제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자연은 계절의 변화 속 매번 색다른 풍경으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특히, 해질 무렵 풍광은 전국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니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용산전망대에 올라 온통 붉게 번져가는 일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길 권한다. 혹시 오래 전 일몰을 보았다 해도 다시 오르길 권한다. 어제의 일몰은 오늘의 그것과는 같지 않기에.

봄의 순천만 풍경

스스로에게 묻는 안부, ‘낙안읍성’

봄의 낙안읍성 풍경 사실 남도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순천은 유독 해질 무렵 찾아가면 운치 있는 관광지가 많다. 정겨운 초가지붕 위로 쉼 없이 바람이 지나가는 낙안읍성 역시 그 중 한 곳이다. 1.4km 석성 안에는 280여 동의 초가집과 객사, 관아, 물레방앗간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야트막한 돌담 너머 매화며, 개나리, 벚꽃 등 봄꽃이 한가득 피어오르고 저녁 무렵이면 아궁이에 익어가는 쌀밥의 구수한 냄새가 마을 안을 감돈다. 성곽에 올라, 낮 동안 잘 말려진 오후의 긴 햇살이 찬찬히 마을을 감싸는 풍경을 바라보자 낙안읍성의 속 깊은 해우소와 높은 전망대에서 끝내 흘리지 못했던 물기어린 짠맛이 느껴진다.

‘다 그렇게 살아’라는 주위의 핀잔과 위로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스스로에게 묻지 못했던 안부를 이제야 묻는다. 그리고 혹여 지금 썩 괜찮지 않다면, 다짐해 본다.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해 괜찮아지기 위해 노력을 하겠다고.

정겨운 손맛으로 차려낸 푸짐한 한 끼, ‘남도 한정식’‘꼬막정식’

남도 손맛이야 말하면 입 아플 정도. 특히 순천은 풍요로운 해산물과 농산물로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남도의 푸근한 정을 만날 수 있는 남도한정식 한 상에서는 간장게장과 짭짤한 젓갈에 제철 육지와 바다에서 나는 온갖 싱싱한 먹거리들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져 나온다. 혹여 일행이 적어 한정식 한 상이 부담이라면, 꼬막정식을 추천한다. 꼬막 원산지로 유명한 벌교와 인접해 있어 순천만 인근에서는 한상 가득 싱싱한 꼬막정식도 맛 볼 수 있다.

꼬막정식

남도 한정식

<글: 권혜리 / 사진: 기자희·김규성 / 사진제공: 순천시청>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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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행 : 2017-04-11 / 제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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