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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말하다│Today남북

시간의 기록, 북한의 달력을 마주하다 이지순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

인류에게 가장 놀라운 발명 중 하나는 달력이다. 달력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일’, ‘주’, ‘월’, ‘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달력은 세월의 흐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셈이다. 우리의 속담에 ‘단오선물은 부채요, 동지선물은 책력이다’란 말이 있듯이, 연말에 주고받는 가장 보편적인 선물이 달력일 것이다.

분단 70년, 달력을 통해 엿보는 북한의 요즘 생활상

분단 70년이 되어가는 오늘날, 북한의 달력은 어떤 모습일까? 경직된 북한 사회를 떠올리면 딱딱한 구호를 곁들인 선전문구나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를 위한 그림들로 가득 찬 것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우선 들 수 있다. 이 생각은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풍경, 정물, 예술문화인, 어린이 등으로 가득한 북한 달력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타일처럼 굳어진 북한 고유의 모습이 새겨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북한 고유의 모습을 담은 달력 우선 새해가 되기 전에 북한 주민들은 한 장에 12달이 모두 들어가 있는 ‘포스터 달력’ 형태의 연력을 인민반에서 배급받는다. 여타의 달력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였던 문구는 김정일 사망 이후에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로 바뀐 채 연력의 상단을 채운다. 어떤 연력은 이 문장의 영어 표현이 부기되기도 한다. 연력 화보는 북한의 주요 이슈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2013년 연력에 미사일과 인공위성, 김정은 사인을 배치한 디자인은 유다르게 주목할 수 있다.

출판사에 따라 달력도 천차만별, 태교에 좋은 아기 달력이 인기!

연력 외의 벽걸이 달력은 소속 기관이나 기업소에서 얻을 수 있다. 벽걸이 달력은 달력 발행 출판사에 따라 다채로운 화보를 보여준다. 출판사 성격과 목적에 따라 화보의 내용도 다른 편이다.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의 현실과 대조되는 산해진미가 들어간 달력 공업출판사는 강선의 노동자들, 삼일포특산물공장의 일꾼들, 2.8직동 청년 탄광현장, 수력발전설비 생산현장 등으로 구성했던 2010년 달력처럼 대개 산업현장이나 노동자들을 화보로 내보낸다. 인민보건사는 갈비찜, 약밥, 달래김치, 메기탕, 감자떡, 토끼고기보양찜, 송편 등 온갖 산해진미가 들어간 달력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이런 달력은 보기만 해도 절로 침이 고일 정도로 다채로운 음식의 향연을 보여준다. 만성 식량부족에 시달린다고 알려진 북한의 현실과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 금성청년출판사는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출판사답게 북한 청소년 및 어린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달력화보를 편집하고 있으며, 체육출판사는 북한의 스포츠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대상으로 한 달력을 발행하기도 한다. 또한 2.16예술교육출판사는 미술 작품들을 화보로 구성하여 달력으로 발행하기도 한다.

평양출판사는 일반적으로 정물 화보로 달력을 채운다. 도자기, 과일, 꽃, 풍경 등 해마다 정물 대상이 달라지는 편이다. 문학예술출판사나 조선영화수출입사, 조선출판물수출입사 등은 ‘텔레비죤련속극’이나 ‘예술영화’의 중요 장면, 배우들을 편집하여 달력 화보로 채운다. 배우나 가수, 체육인들이 나오는 달력은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북한 여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이 들어가 있거나 정물 화보가 들어간 달력으로 책 표지를 장식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밖에 주목할 만한 달력으로는 외국문출판사에서 발행한 2006년 달력이다. 이 달력은 1980년대 초까지 개최되었던 남한의 ‘우량아 선발대회’처럼 포동하고 귀여운 아기들을 담고 있다. 이 시기 북한 어린들의 영양실조가 심각한 상태였던 현실과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

달력 속 같은 듯 다른 남북한의 공휴일

조선출판물수출입사와 평양출판사가 발행한 최근의 달력 표지를 보면 “새해를 축하합니다” 아래에 “Happy New Year!”가 부기되어 있다. 달, 요일, 기념일 등 모든 것에도 영문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대외교류용으로 해외에 배포되는 달력 대개가 영문 표기를 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김일성 생일(태양절)은 일반 공휴일과 다르게 강조되어 있다. 새해의 달력을 받으면 가장 먼저 헤아리는 것이 공휴일일 것이다. 일요일이 아닌 공휴일의 수에 따라 사람들은 일희일비하곤 한다. 새해의 달력을 보며 명절연휴와 법정 공휴일과 대체휴일이 섞인 ‘황금연휴’가 언제인지 보는 것은 즐거운 기쁨이 된다. 각국의 공휴일은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달력은 국가명절, 민속명절, 기념일 등을 표시한다. 공휴일이 아닐지라도 김일성 일가와 관련된 중요 기념일의 경우 그 달의 상단에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명시해 둔다. 붉은 글씨로 표기되는 공휴일 가운데 김일성 생일(태양절 4.15)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 2.16)은 붉은 색 숫자에 다시 붉은 테두리가 둘러져 있어 북한이 그 날을 국가적 차원의 기념일이자 명절로 강조함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한민족, 구정·추석 등 민속 명절은 같아

우리와 북한이 한 민족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역시 민속 명절이다. 양력 1월 1일을 설날로 쇠던 북한은 1989년부터 음력설을 부활시키고 공휴일로도 지정하였다. 북한은 추석과 함께 정월대보름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수리날이라고 부르는 단오 또한 공휴일로 지정된 민속명절이었지만 2005년부터는 제외되었다.

이 외에 북한의 법정공휴일은 국제부녀절(3.8), 청명(4.5), 조선인민군창건일(4.25), 국제노동절(5.1), 조선소년단창립절(6.6), 조국해방전쟁기념일(7.27), 해방절(8.15), 선군절(8.25), 공화국수립기념일(9.9), 당창건기념일(10.10), 헌법절(12.27) 등이다. 이 중에서 조선소년단창립절은 2013년부터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며, 선군절은 2013년엔 일요일이어서 공휴일 여부를 알 수 없지만 2014년 달력에선 공휴일로 지정되었음을 ‘빨간 날짜’로 확인할 수 있다.

명절 2014년 말의 관심사는 2015년에 김정은 생일인 1월 8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명절로 격상할지의 여부였다. 2015년 북한 달력을 보면 김정은 생일은 공휴일이 아니지만, 정월대보름과 김정일의 당사업개시일(6.19), 어머니날(11.16)이 새로운 공휴일로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공식적으로 양력을 사용하는 북한이 정월대보름날(2015년에는 3월 5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 새롭다.

새털같이 많은 나날이라고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2014년의 끝도 며칠 남지 않았다. 한 해의 마지막 달력을 바라보는 심경은 ‘시간이 참 빠르다’이다. 한 해의 달력을 책장 넘기듯 넘기다 보면, 과거, 현재, 미래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난다. 새해의 달력을 보며 느꼈던 미래는 어느새 과거가 되었다. 지금 여기, 바로 현재는 또다시 과거로 흘러가고,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화되는 미래 속에 서 있는 셈이다.
북한의 달력처럼 “새해를 축하합니다. Happy New Year!”라는 인사를 곁들여 남북한이 함께 2015년 미래를 꿈꾸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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