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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감 좌충우돌 남한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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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민과 경상도민은 이웃사촌?

함경북도와 경상도 사투리는 억양이 매우 비슷하다. 한 탈북대학생이 경상도 친구들이랑 어울리다보니 고향 말(함경북도)과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경상도 억양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13호>, 고향이 거제도냐고 물어보기에 함경북도에서만 40년 살았다고 대답했던 이야기<15호>를 듣고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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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함경북도에서 온 A학생은 남한 친구 중 한 명이 ‘경상도에 왔냐며, 자신의 할머니랑 사투리가 비슷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두 지역의 말투는 악센트가 강하고 성조가 남아있어 매우 유사한 느낌을 준다. A학생은 “우리(함경북도) 말은 톤이 높다”며 “같은 고향 사람들끼리 모이면 반가워서 막 이야기하는 건데, 다른 지방 사람들은 싸우는 줄 안다”고 말했는데, 경상도 사투리도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경상도와 함경북도는 분명 최남단과 최북단으로 극과 극의 지리적 차이를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걸까? 정답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세종 6진 개척 당시 여진의 땅이었던 함경북도에 김종서 장군이 새로운 영토를 확장했는데, 이때 경상도 사람들을 함경북도 지역으로 대거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또 만주나 간도, 연해주 등으로 이주하려던 이 지역 조상들이 함경도 지방에 눌러앉은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그러나 비슷한 건 억양일 뿐 남북한 말은 실제 쓰임에서 매우 달라진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투리 쓰면 애들이 모(못) 알아들어요. 예를 들어 ‘야~ 과제가 수태 많은데 늦어서 매사하다. 내가 인차 갈 테니 같이 하자’ 이러면 모 알아듣지요. ‘과제가 엄청 많은데 늦어서 부끄럽다. 내가 금방 갈 테니 같이 하자’라는 뜻이거든요.”
식당 주방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탈북여성 B씨도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경험을 했다.
“제가 사발 까실거라고 했더니 못알아듣는 거에요. ‘사발 까신다고요!’ 하니깐 ‘뭘 부신다고?’ 이러더라고요. 여기는 설거지라고 하는데 북한에선 사발 까신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이미지 남북한은 말 뿐 아니라 노래하는 발성법도 조금 다르다. 북한에서는 ‘주체발성법’이라 불리는 가성을 주로 쓰기 때문. 친구들에게 북한에서 왔다는 걸 알리지 않았던 여중생 A양은 노래를 하다가 갑자기 친구들의 주목을 받았다.
“중3때 졸업여행을 1박 2일로 다녀왔는데, 펜션에 노래방 기계가 있었어요. 친구들이 노래 불러보라고 해서 불렀는데, 제가 일반 가요도 트로트처럼 부른다며 애 늙은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위에서 예로든 것은 극단적인 경우다. 실제 북한이탈주민과 대화를 해보면 99%이상 완벽한 소통이 가능하다. 다만, 남북한 주민간 사용하는 말이 더이상 달라져서는 안된다는 바람에서 이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이제 막 남한에 온 언닌, 중국 스타일~

북한이탈주민은 다른 탈북민을 봤을 때, 남한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를 대략 감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하나원에서 갓 나온 친구랑 한 달된 친구, 세 달된 친구, 반 년된 친구가 딱 보여요. 딱 뭐 때문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운데, 억양이나 패션 같은 것에서 느껴지는 것 같아요.”

특히 패션의 경우 ‘중국스타일’과 ‘남한스타일’로 구분한다. 처음에 오면 중국스타일의 옷을 입는다는 것. 물론 중국스타일이 촌스럽고 남한스타일이 세련됐다는 게 아니라, 대부분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은 ‘이전 것’으로, 남한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은 ‘최신 것’으로 여기고, 남한스타일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미지 “청년들의 경우 적응교육을 마치고 사회로 나오면 정착금이 있으니까 옷을 사도 더 좋은 옷을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비싼 돈 주고 꼭 중국스타일의 옷을 사가지고 와요. 본인들은 멋을 낸다고 한껏 차려입었는데 남들이 보기엔 ‘아이구야’ 해요. 여기 스타일이 아닌 거죠.”

B학생은 그래서 탈북 후배들이 오면 적어도 3개 월 동안은 탈북 선배들이 물려주는 옷을 입을 것을 권장한단다.
“패딩이나 파카라는 말도 모르고 동복이라고 해야 알아들을 정도로 아직 이쪽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후배들에겐 돈 함부로 쓰지 말라고 말해요. 정 모르겠으면 꼭 우리가 주는 거 입으라고 말해요. 남이 입던 옷을 내가 왜 입어? 이런 애들은 꼭 사놓고 후회해요.”

탈북여성 B씨도 중국체류기간이 길었는데, 한국으로 오기 전 큰 맘 먹고 구입한 옷을 결국 2년만에 버리게 됐다.
“중국사람들은 화려한 걸 좋아하거든요. 반짝반짝한 거, 레이스 달린 거, 빨간 색깔의 옷들요. 중국에선 이름(브랜드) 있는 옷이었고, 나름 위아래 예쁘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오니까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요. 한국 사람들은 수수하게(심플하게) 입잖아요. 저는 빨간색 옷이 좋은데 한국에서는 60~70대 분들이 빨간색 옷을 좋아하세요. 젊은 사람들이 잘 안 입는 스타일이라 중국 사람으로 오해 많이 받았어요”

대중 교통 적응기 '그땐 그랬'

탈북여성 C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주민등록증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나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그의 발을 묶는 게 있으니, 바로 ‘낯설기만 한 대중교통’이다.
“하나센터에서 다 배웠는데도 버스를 탈 땐 한동안 많이 긴장했던 것 같아요. 목적지가 맞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말투를 이상히 여길까봐 물어보지도 못하고 망설이다 한 정거장 더 가기도 했고요. 사실 신기하기도 했어요. 교통카드를 대기만 했는데 돈이 빠져나간다는 것도, 단말기에서 사람 말소리가 나오는 것도요.”

이미지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는 것도 어렵다. 또 설령 지하철을 잘 타고 내렸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엄마랑 같이 집 근처 역에 내렸는데 그날따라 집에 가는 길이 너무 먼 거에요. 한참 헤매다 돌아오니까 엄마는 ‘집이 지하철과 가깝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먼 거니?’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우리가 정 반대방향 출구로 나갔던 거지요.”

이렇게 집이라도 잘 찾아오면 다행인데 탈북청년 D씨는 하마터면 ‘남한 미아’가 될 뻔 했다.
“아빠가 남한 맥주랑 막걸리가 맛있다며 마트에서 사오랬는데 핸드폰을 안가지고 나간 거에요. 그땐 연락할만한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핸드폰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거든요. 필요한 물건을 산 것까진 좋았는데 길을 잃어버렸어요. 주소 체계도 다르고 그 집이 그 집 같고... 20~30분 돌다가 겨우 찾아 들어갔지요.”

처음에는 익숙해지기 어렵지만 ‘빨리빨리’ 시민들을 실어다주는 지하철이 고마울 때도 있었다. 탈북여성 B씨는 7살 아들을 놀이동산에 데리고 갔는데 갑자기 아이가 아파 빨리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들쳐 업고 지하철 역사로 들어왔을 때 전동차가 도착하는 소리를 들었다. 전속력으로 뛰어 승강장에 왔는데, 눈앞에서 막 출발해버리는 전동차. B씨는 울상이 되고 말았다.
“남한에선 기차(전동차)가 자주 다니지만 이북(북한)에서는 차가 한 번 가면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땐 남한에 온 지 얼마 안되다보니 무조건 저 열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뛰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젠 금방금방 오는 걸 아니까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지요.”

<글.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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