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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행복한 통일

Webzine Vol.42 | 2016.07

e 행복한 통일

vol 42 | 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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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통일 | 느낌 있는 여행

이제 조금 더 행복해져야겠다 경상북도 경주

하릴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올려 본 하늘이 온통 푸릇하다. 도무지 언제부터 제 자리를 지켰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단단한 나뭇가지 사이로 말간 여름 하늘이 흘러간다. 분명 익숙하거나 혹은 친숙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깔깔거리며 웃기만 해도 하루해가 훌쩍 저물 던 철부지 시절, 설렘 가득히 떠났었던 여행지는 옛 추억과는 조금 다른 얼굴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다행이라면 그 시절 찬란했던 기억만큼 도심은 여전히 푸르렀으며, 조곤조곤 불어오는 바람은 상냥했다. 그래서일까. 경주의 긴 낮과 짧은 밤을 떠돌며 아득히 먼 과거로부터 시작된 옛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자면 문득 지금 더 행복해지리라 다짐하게 된다.

능이라 이름 붙여진 송림, 대릉원

하루 종일 긴 목을 가누지 못해 삐거덕거리는 선풍기 앞을 서성이다 게으른 엉덩이를 털어내고 출발했던 여행. 딱히 큰 기대를 갖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너무 무덥거나 소란하지만 않았으면 싶었다. 이 계절에 지쳤고, 바쁜 일상과 사람에 지쳤으며, 삶이 조금 무료해졌던 날 차창 밖으로 싱그럽게 펼쳐지는 신록을 따라 처음 발길이 멈춘 곳은 경주의 대릉원이었다.

역사상 가장 긴 왕조를 유지하며 이 땅을 지배했던 황금의 왕국은 화려했던 역사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왕국의 수도였던 경주에서는 어렵지 않게 그 시대의 발자취와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대릉원은 무려 23기의 아담한 무덤이 봉긋봉긋 자리한 그 자체로 역사의 현장이다. 또한 두 겹의 능선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황남대총과 미추왕릉, 천마도가 출토돼 이름 붙여진 천마총 등이 모여 있는 경주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릉원

분명 능이라면 오래전 죽은 이들의 넋이 남아 있는 곳일 터. 하지만 백골이 진토가 되고, 생전의 간절한 염원조차 희미해진 능은 무덤이라기 보다 울창한 송림을 연상케 한다. 보드라운 잔디에 뒤덮인 봉분이 시선을 두는 곳곳 불쑥불쑥 등장하지만, 그 모습마저 자연스러워 종래엔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다. 무엇보다 그리 크지 않은 새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릴 만큼 한적해, 쉬고 싶은 날 머무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옛 왕국의 별 흐르던 밤, 첨성대

첨성대길시간은 그 먼 과거나 오늘이나 공평하게 흘러간다. 대릉원 너머 낮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단정한 남청빛 기와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또 다른 역사의 흔적과 마주한다. 별을 관찰해 왕국의 길흉과 농사절기 등을 점치기 위해 쌓아 올린 단은 아담하고 고고한 자태를 자랑한다.

얼핏 지나친다면 이게 그 유명한 신라의 ‘첨성대’임을 놓치기 쉬운 모습. 하지만 너른 들판 위 반듯이 하늘을 머리에 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그 시대에도 반짝였을 별무리를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또 한 번, 성큼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우아한 밤의 정취, 동궁과 월지

사실 경주는 생생한 낮의 풍경만큼이나 밤의 정취가 우아한 여행지다.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도심 곳곳, 숨겨진 천 년의 보물들이 조명 아래 반짝일 때면 옛 왕국을 거니는 듯 착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여름날 태어난 바람에는 날 풀의 내음이 가득 묻어난다. 귀한 손님을 맞을 때면 연회를 베풀었다는 별궁의 옛 성터와 그 성터를 둘러싼 바다와 닮은 연못 위로도 여름의 바람이 스치운다.

월성의 북동쪽, 인공정원의 호수인 월지는 그 낭만적인 명칭처럼 달빛 아래 더 고운 자태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신라의 인공호수다. 흔히 조선시대에 붙여진 안압지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연못 위로 달이 차오른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궁과 월지

오늘 우리가 행복해야 할 이유, 불국사

누구나 하나쯤 가슴에 믿음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은 특정한 명칭의 종교일 때도 있으며, 스스로를 믿는 강한 신념이나 혹은 지금 가장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를 향한 신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형태가 다를 뿐 그 믿음들이 오늘의 삶에 순응하고 내일을 희망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은 같을 것이다. 옛 경주를 터전 삼아 살았던 사라진 왕국의 사람들이 품었던 믿음은 무엇일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귀한 보물, 불국사는 경주를 찾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걸음 했음 직한 유명한 관광지다. 그리고 옛사람들의 믿음이 오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불국사

불국사경주를 여행하다 보면 으레 그렇듯 불국사와 마주한 순간 학창시절 달달 외워두었던 온갖 역사상식이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두서없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기록한다 해도 글은 글일 뿐. 범영루 처마 밑으로 쏟아지는 햇살조차 귀하고 곱게 보이는 불국사의 매력은 당연하게도 실제 눈으로 마주했을 때 가장 선명하게 와 닿는다. 가장 이상적이며 세련된 조형미를 자랑한다는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6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임진왜란 등의 전쟁으로 인해 부서지고 불태워져 본래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대웅전 앞의 석가탑과 다보탑, 빛바랜 수학여행 사진에 곧잘 등장하던 청운교와 백운교란 이름의 돌계단 등 불국사의 보물들은 여전히 고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담장 위 돌멩이 하나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도심. 그럼에도 경주는 신기할 만큼 선명한 생명력이 펄떡인다. 어제의 화려했던 영광 위로 오늘의 태양이 떠오른다. 이제는 희미해진 과거의 흔적들. 하지만, 더없이 찬란했기에 미련 없이 등을 보일 수 있는 옛 터전 위로 유독 오래 바람이 머문다. 그러니 이 바람이 다 지나기 전 어제에 대한 아쉬움보다 새로 시작될 오늘의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글.권혜리 / 사진.김규성>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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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전체 기사 보기 기사발행 : 2016-07-15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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