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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 특별좌담

특별좌담 / 급변하는 동북아 질서와 우리의 대응 과제

급변하는 동북아 질서와 우리의 대응 과제
유연하고 현실적인 외교가 남북관계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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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6월 18일 오전 8시
• 장소 : 민주평통 사무처 회의실
• 사회 : 최대석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참석 :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 서동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실장,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최근 동북아 질서는 각국이 기존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자국의 이익에 따라 평화와 협력, 갈등과 대결 구도를 선택하면서 혼돈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각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좌담은 동북아 안보 질서의 현황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우리의 대응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대석 지난 5월 북한과 일본이 스톡홀름에서 만나서 ‘국교 정상화’ 추진을 포함한 이른바 ‘5·29합의’라는 것을 채택했는데 이것이 동북아 질서에 미칠 파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지요.

이원덕 현재까지는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입각점이자 출발점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타부타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일본이 2002년 ‘평양선언’의 시점으로 복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002년 북일 간 ‘평양선언’으로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여하리라 예측했습니다만,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로 일본 내 여론이 악화돼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사실상 ‘납치 문제에 납치된’ 양상으로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손발이 묶인 상태였지요. 그런데 이번에 납치 문제가 제거되면 일본 변수가 빌미가 되어 한·미·일 공조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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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의 상실 또는 약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실장

이상현 한반도에서 북한을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밀고 당기는 경쟁 관계가 될 가능성이 있고,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태에서 일본이 앞서가는 양상이 된 거죠. 산케이신문 보도대로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에 곤혹과 동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쨌든 북일 합의에 대해 일본이 사전에 미국에 충분히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이라고 하니까 미국도 더는 말을 못 하고 투명한 추진을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렀죠. 문제는 일본의 독자적인 행동이 북한 핵문제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으로선 핵문제가 우선이지 일본인 납치 문제가 우선일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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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국은 ‘북일합의’를 계기로 한국과의 공조를 강화하려고 할 것입니다.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

김흥규 시진핑 체제에서 중국의 대북 시각도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이라든가 핵개발에 대해 더욱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중국 스스로 북한의 핵문제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국가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북한을 압박하는 전열에서 이탈하는 것은 중국으로선 상당히 불편한 상황일 겁니다. 중국은 이를 계기로 한국과의 공조를 강화하려고 할 것입니다.

최대석 러시아도 동북아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적극적인 경제 협력을 시도하고 있고, 북한도 그러한 러시아를 ‘전략적 이익 동반자’로 부르며 관계 진전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요.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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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간 주도로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동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서동주 푸틴 집권 3기가 출범하면서 크게 두 가지 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하나는 CIS권을 다시 묶는 유라시아연합(Eurasian Union)의 구축이고, 다른 하나는 신동방정책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동방정책의 추진을 위해 내각에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극동시베리아 개발과 남·북·러 삼각경협 등에 상당히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측면이 다 있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첫째 북러 경협이 확대되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고, 둘째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 해결에서도 러시아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나오면 남·북·러 삼각경협을 가시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하면 북한이 이것을 대북 압박과 외교적 고립에서 탈출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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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이원덕 전반적으로 동북아 지역이 전통적인 세력균형 게임의 논리에 빠진 것 같습니다. 북한은 한국이 주도해서 펼치고 있는 한·미·중 삼각공조의 탈출구를 러시아와 일본에서 찾으려 하고, 일본은 한·중·일 역사 문제에서 탈출하고자 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빚어진 제재 국면에서 탈출하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최대석 최근 북한 경제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데 러시아의 역할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의 2013년도 대외 무역량이 약 75억 달러로 그중 85%가 중국에 집중돼 있고, 2위가 러시아죠. 북한의 인력 송출까지 포함하면 순수 외화가득률에서 러시아의 비중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김흥규 그것은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북중 간의 민간 교역의 증대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광물과 같은 자연자원을 대량으로 파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북한의 인력 송출 덕분입니다. 북한의 송출 인력이 7만 명에 달하는데 중국에만 2만 명이 있고, 러시아 쪽도 계속 늘어날 것 같습니다. 당장은 북일 협력에 시선이 가 있지만 앞으로 북러 협력을 더 주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동주 과거와 달리 러시아 고위급 인사들의 방북 등 상호 교류를 증진시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실제로 신동방정책의 핵심 멤버인 트루트녜프 러시아 부총리와 갈루시카 극동개발부 장관의 방북이 있었고, 블라디미르 미클루셰프스키 연해주지사도 북한에 대한 투자와 무역 증진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아직까지 북러관계는 경협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최대석 한·미·일 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중국을 견제해온 미국은 이번 북일 합의로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타격을 입었는데 앞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이상현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2개의 큰 정치적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고 하나는 중국의 ‘신형대국관계’죠. 그런데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의 상실 또는 약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5월 28일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재균형 정책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요. 또 재미있는 비유를 했는데 ‘미국이 좋은 망치를 갖고 있지만 모든 문제를 못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만일 미국의 핵심 이익에 필요하면 군사력을 사용하겠지만 군사행동 개시의 문턱이 과거보다는 좀 높아졌고, 가급적 혼자 행동하기보다는 동맹과 우방국들을 동원해서 집단행동으로 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과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이원덕 일본은 중국과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준전시상황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과연 안보 공약을 지킬 수 있는가에 대해 늘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안보적인 위협에 처했을 때 미일동맹이 얼마나 기능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 추동력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아베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빠른 속도로 진행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일본 내 보수 세력의 북한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하고, 아베 자신도 북한에 대해 거부감이 강해 핵미사일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일관계가 진척되지는 않을 겁니다.

김흥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2005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왔습니다. 중국의 부상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가 없고, 봉쇄정책만 가지고 중국을 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 분명해집니다. 미국이 중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회피하면서 중국을 놓고 일본과 미국 사이에 미묘한 이해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죠. 그 때문에 일본은 미일동맹에 대해 회의가 생기고, 미국은 현실적으로 재정적 어려움이라든가 제국의 쇠퇴 현상에 직면하면서 개입할 여력이 점점 줄어들고, 또 중동 문제에 얽혀들면서 일본으로선 상대적으로 미국에 대한 레버리지가 늘어났습니다. 일본은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 국익을 증진하려 합니다. 현재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은 중국을 잘 관리하면서 일본의 과도한 독자 행동을 억제하되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으로 흡입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입니다.

최대석 남북대화와 6자회담이 중단된 상태이고, 한일관계도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타개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동주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3대 정책을 러시아에서는 ‘마트료시카(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라고 표현합니다. 인형 속에 인형이 있는 것인데, 제일 안쪽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있고, 그 위에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또 그 위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있죠. 이 세 정책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커지지만 또 밖에서 안으로 상호 작용하는 효과도 담고 있어요. 우리 정부는 이것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올해가 고려인 이주 150주년이고, 조러 수호통상조약 130주년입니다. 이를 기념해 고려인이 모스크바로부터 시베리아를 횡단해 북한을 통과해서 남한으로 오는 자동차 랠리 행사가 열립니다. 이런 것이 러시아의 중재로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거든요.

이원덕 박근혜정부의 3대 외교 구상이 실현되려면 대북관계에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일관계는 대단히 답답한 상황이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좀 더 넓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조차도 일본 변수를 경시하고는 성공을 거둘 수 없습니다. 한국은 미·중·일이라고 하는 세 개의 다리를 중심으로 외교를 펼쳐나가야 하는데 지금 한쪽 다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대북정책에서 발상의 전환 필요

이상현 지난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한국 외교가 올스톱됐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동안 일본도 중국도 북한도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이제는 동북아에서 일본과 북한이 아니라 우리가 고립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김흥규 2014년에 들어 북한이 전례 없이 유연한 정책을 통해 ‘평화 공세’를 하고 있어 제3국이 보면 외교적으로는 한국이 경직돼 있고 북한이 오히려 유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대석 8월 광복절을 전후로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9월 19일 개막하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이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남북대화 재개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서동주 북한의 아시아경기대회 참가 선언은 북한이 주도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순수 민간 차원, 인도주의적 측면, 스포츠 행사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2013년 11월 한러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남·북·러 삼각경협, 나진~하산을 잇는 시범단지 참여 등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해야 합니다.

이원덕 통일 대박론 자체는 큰 의미가 있지만, 자칫 내수형 논리로 끝날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정작 중요한 파트너인 북한은 한국이 드디어 북한을 흡수하려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어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상현 5·24조치 이후 북한이 공식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사과를 할 가능성이 적다면 비공식적 접촉을 통해 사과를 얻어내는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최대석 최근 동북아에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중국의 신형대국관계가 미묘한 긴장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주변국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북한과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을 명목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으며, 북한과 러시아도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이 활발합니다. 반면 우리는 6자회담, 남북관계, 한일관계 그 어느 것 하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심히 우려됩니다. 오늘 토론에서 모든 분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사항은 현재의 경색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한국 외교가 7월 초 한중 정상회담, 8·15 경축사, 그리고 9월의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를 활용해 지금보다는 훨씬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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