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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 통일칼럼

통일칼럼

분단의 현장에 통일을 향한 통문을 열자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대학원생들의 안보 현장 견학에 동행해 오랜만에 판문점과 인근 지역을 방문했다. 6·25전쟁의 총성이 멎은 지 61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분단의 장벽은 높았고, 통일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6월의 판문점은 조용했고, 너무도 평온하여 오히려 서글프기조차 했다. 군사분계선을 상징하는 콘크리트 둔덕과 빛나는 철모와 선글라스를 갖춰 쓴 우리 헌병들의 부동자세, 그리고 멀리 판문각 계단 위에서 가끔씩 망원경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북한군 초병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속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군사정전위가 개최됐던 푸른색 가건물 같은 회담장은 이미 그 기능이 정지된 지 20년이 되었고, 지금은 남북 양쪽의 관광객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지난해 남북 양쪽을 합해 10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판문점을 다녀갔으며, 이 가운데 3분의 2는 외국인들이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외국인에게도 판문점은 베를린 장벽 이래 이념의 분단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었듯이 언젠가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게 되면 판문점은 그 최전선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열어가는 통문이 될 것이다.

판문점은 정전협정을 유지, 관리하는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이 개최되던 곳이다. 북한은 한국군 장성이 정전위 남측 대표에 선임되자 이를 보이콧하고 일방적으로 정전협정을 무실화하면서 정전위 자체를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렸고 이로써 판문점은 회담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지금은 정전협정의 한 당사자였던 중국 대표단도 철수하고 북측 중립국 감시국이던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제 전환 이후 자연스레 임무를 종식함으로써 중립국인 스위스와 스웨덴 대표들이 상징적으로 양측을 연결하고 있다. 양측을 연결하는 군 통신선과 적십자 통신선도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현재는 판문점 자유의 집 우리 측 사무소와 북측 판문각 사이에 적십자사 통신망 3회선이 가동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정전위 무실화 책동 이후 판문점을 남북대화의 장으로 활용하기를 극력 반대해왔다. 햇볕정책이 정점에 있던 시절에도 북측의 끈질긴 반대로 남북 간 회담장으로서 활용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지난해 개성공단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그리고 올해 초 남북 고위급 실무접촉이 남북의 판문점 사무소에서 각각 개최됨으로써 비로소 남북대화의 장소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수시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판문점으로 들어가는 길과 판문점에서 나오는 길은 비록 같은 길이지만, 판문점을 돌아보고 나올 때 갖게 되는 방문객들의 생각과 느낌은 들어갈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판문점은 대결과 대치의 현장이지만 이곳이야말로 남북이 대화하고 협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상시 대화도 가능하고 모든 종류의 회담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에서도 남북 간 구체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협력사무소의 상설화를 제의해놓은 상태다. 연간 10만 명에 육박하는 외국인들이 관광 차원에서 방문하는 판문점에 남북이 상설 연락사무소를 개설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내년 분단 70년을 앞두고 남북 간에 최소한 상설 대화 창구만이라도 열어야 역사의 수레바퀴를 또다시 앞으로 구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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