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호 > 먼저 온 통일
먼저 온 통일 / 김철수 민주평통 의료봉사단장
만성 결핵과 간염에 노출된 아이들, 영·유아기의 영양부족으로 발육이 더딘 아이들, 탈북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불안감에 시달리는 아이들.
그들을 위해 민주평통 의료봉사단이 떴다.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에 1970년대부터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에이치플러스양지병원. 이곳 2층 이사장실은 매일 오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불을 밝힌다. 병원 설립자인 김철수(70) 이사장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마음 바쁜 환자들이 진료실 밖에 진을 치기 시작하는 오전 8시 30분까지 4시간 반가량을 이용해 그는 공부하고 글을 쓰고 ‘오늘의 할 일’을 점검한다. 그는 <김철수 박사의 성인병 완전정복>, <현대인을 위한 성인병 극복> 등 일반인을 위한 건강 지침서를 여러 권 펴낸 저자이자 한때 주요 TV, 라디오 방송의 건강 상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 스타 의사였다.
2008년 아들 김상일 원장에게 병원을 맡기고 이사장으로 물러났지만 그렇다고 그의 ‘오늘의 할 일’ 목록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한병원협회 명예회장, 대한에이즈예방협회장, 남북의료협력재단 공동대표로서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일은 늘어만 갔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2~6기까지 연임한 뒤 2013년 16기에 직능운영위원을 맡아 다시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들어 새로 추가된 직함이 있다. 민주평통 의료봉사단 단장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민주평통 운영·상임위원들에게 “자유와 인권을 찾아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찾아온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게 돕는 일은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통일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주평통은 북한이탈주민의 국내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통일맞이 하나~다섯’ 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①북한이탈주민과의 1:1 멘토링 ②법률 지원 ③의료 봉사 ④장학 지원 ⑤취업 지원 등 ‘5대 중점사업’을 발표했다.
지난 2월 16기 민주평통 위원들 가운데 의료인을 중심으로 ‘민주평통 의료봉사단’이 구성됐다. 김철수 단장이 협조를 요청하자 고문 4명(김태옥·신현국·이경호·김진기), 부단장 5명(김세영·김필건·백성길·성명숙·조찬휘), 실행위원 7명(강병권·김강산·김영수·서석완·유희석·임정희·이영수)이 한달음에 달려와서 기꺼이 주머니를 열고 재능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북한이탈주민 가정에 구급상자 1만 개 보급
2월 25일 17명의 민주평통 의료봉사단은 출범식을 갖고, 당일 열린 첫 회의에서 북한이탈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료 지원 방법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기초 건강검진과 진료, 가정용 상비약이 든 구급상자, 안경, 치과용품의 지원이 결정됐다. 이를 위해 대한치과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가 진료를 맡고, 한국제약협회는 구급상자 및 의료구급약품을 지원하고, 시호비전그룹에서 안과 검진 및 안경을 제공하기로 했다.
“현재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이 2만5000여 명에 이릅니다. 한 가정에 하나씩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구급상자 1만 개를 제작했습니다. 여기에 넣을 상비약도 감기약, 소화제, 진통제, 상처용 연고 등 9종과 핀셋, 가위, 치과용품 세트를 포함해 12종이나 됩니다. 모두 봉사단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의료봉사단 활동의 시작에 불과하다. 6월 10일 에이치플러스양지병원에 북한이탈 청소년들이 다니는 ‘두리하나국제학교’ 재학생 50여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가슴 X선 촬영 등 기초검사를 한 뒤 이틀 뒤인 12일 검사 결과를 토대로 진료를 받았다. 진료 현장에는 현경대 수석부의장이 찾아와 북한이탈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함께 살피고 봉사단원들을 격려했다.
“학생은 50명인데 교사와 학부모까지 함께 와 진료받은 사람은 70명쯤 됩니다. 내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한방과, 치과(이동차량)를 거쳐 안경사 5명이 검사를 한 후 각자 안경을 맞춰줬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김 단장은 북한이탈 청소년들의 건강 상태에 대해 결핵과 같은 특정 질병이 발견된 경우는 한 명뿐이고, 이미 11개월간 꾸준히 약을 먹고 있어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나머지는 B형간염, 소화불량, 어깨 결림, 불안감 호소 등이었다. 그러나 김 단장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발육 부진’이다.
“나이는 열세 살인데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있어요. 원래 6학년이어야 하는데 체격이 왜소하고 주눅이 들어 있는 상태여서 낮은 학년에 다니는 거죠. 이런 아이들은 남한 사회 적응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죠. 통일의 씨앗이 뿌리도 내려보지 못하고 말라죽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영양제 보급과 같은 실질적인 지원을 하면서 꾸준히 지켜보고 지원할 생각입니다.”
민주평통 의료봉사단은 앞으로 북한이탈 청소년들이 다니는 11개 학교를 중심으로 이들에게 체계적인 검사와 진료 등 의료 지원을 계속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