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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 포커스

포커스 / 25년 만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

25년 만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
용서와 화해 통한
한반도 평화를 전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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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근혜 대통령은 8월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 주시고 기도해주신 데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있었다. 1984년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인 첫 방한, 그리고 3년 뒤인 1987년의 방한 이후 25년 만에 이뤄진 방한이었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한국 가톨릭에 엄청난 축복이자 나아가 가톨릭 신자만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도 의미가 깊은 ‘사건’이라 하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교회의 개혁, 화해와 평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 등으로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지역을 직접 방문해 용서와 화해를 설파하기도 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일상을 로마의 노숙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내어주면서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한 과정에서도 확인됐듯이 길가의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주는가 하면, 세월호 유가족을 매일같이 만나면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졌고,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다가가 포옹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군가가 그랬듯이 어쩌면 지금의 교황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돌’ 스타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교황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더 큰 마음의 위안을 주었고, 곱씹어볼 만한 울림을 남겨놓았다.

모두에게 치유의 손길 내민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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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월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카퍼레이드를 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극 이후, 온 사회가 가슴 한구석에 상실의 아픔을 지니고 있고, 치유받지 못한 채로 방황하고 있다. 이 순간에 교황의 따스한 미소와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위로의 말씀과 행동은 우리 모두에게 그 어느 정치인도 해내지 못한 치유의 손길이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교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치유가 됐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큰 치유는 아직도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남북 모두에게 던진 교황의 메시지일 것이다. 8월 14일 도착하는 날부터 18일 떠나는 날까지 한반도의 모든 이에게 용서와 화해와 한민족의 통일을 언급한 교황의 메시지는 정치적인 해석을 떠나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자세로 분단과 통일에 임해야 하는지를 가장 상식적인 차원에서 일깨워주었다. 누구의 말처럼 가장 상식적인 말이지만, 이를 잊고 사는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교황의 말씀은 결코 정치적인 정쟁의 대상이 되어 누구의 편을 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세월호 유족을 향한 그의 행동을 두고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 삼았을 때, 교황은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답했다. ‘정치’라는 괴물보다는 인간의 아픔이 먼저였던 것이다. 이는 분단의 상처 앞에서도 똑같다. 분단의 치유는 정치적인 가치가 우선인 것이 아니라, 이로부터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상처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따라서 교황이 8월 18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에서 하신 말씀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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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월 19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명동대성당 본당에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있다.

그간 교황은 한반도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교황이 된 이후, 첫 부활절 메시지에서 “한반도 평화를 빈다”고 직접 거론하기도 했고, 올해 부활절에서는 ‘한반도 불화의 극복과 화해’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관심은 한반도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청와대 연설에서부터 시작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청와대 연설에서 평화가 단지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여야 한다는 그의 강조는 ‘평화를 위한 평화를 넘어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도 한반도 평화가 전쟁의 공포를 넘어 남북 모두가 평화롭게, 함께 번영하는 삶까지 의미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

교황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메시지는 8월 18일 있었던 명동성당 미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교황은 명동성당 미사에서 “죄 지은 형제를 아무 남김없이,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시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할 때는 관대함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우리 한국인이 모두가 같은 형제이고, 가족이며,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평화와 화해의 은총을 하느님께 간구하면서, 한반도 안에서의 특별한 공명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며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도임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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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월 16일 충북 음성군 꽃동네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20년 전 사지가 마비된 오미현 씨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사실 오늘날 남북이 처한 현실은 서로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고 있는 상태이며, 남북이 격하게 대치하고 있는 조건에서 용서, 화해, 평화를 말씀한 것은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해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분단이 가져온 여러 가지 폐해 중에서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불신과 대립의 문화이자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신과 대립의 문화와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용서, 화해의 문화와 관용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분단은 점점 더 극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교황의 말씀은 용서, 화해, 평화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와 감정을 되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남북이 화해와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데서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말씀을 해준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에도 내민 손, 우리가 이어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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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월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대한 시복식’에는 수십만 명의 신도들이 참석했다.

이번 교황의 방한에 북한의 가톨릭 신자들이 함께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 가톨릭계가 여러모로 애를 썼지만, 결국 북한 신자들의 참여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교황은 이들에게도 손길을 내밀었다. 8월 17일 해미 순교성지를 방문하는 자리에서, 아시아 주교단회의 연설을 통해 아직 교황청과 관계를 맺지 못한 아시아 나라들과의 대화를 강력히 희망했다. 교황청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로는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북한, 브루나이 등이 있다. 교황은 이들 나라들과의 대화를 강력히 희망함으로써 북한에도 대화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지난 기간 교황청과 북한은 몇 차례에 걸친 대화를 가졌고, 교황청은 아직 신부님과 수녀님이 없는 북한의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지원에 각별한 관심을 표한 바 있다. 비록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가톨릭 계열의 인도적 단체를 통한 지원을 끊임없이 지속하고 있다. 이번 교황의 방한으로 앞으로 북한과 교황청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문제는 교황의 말씀이 아니라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태도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하나하나의 행동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한반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27년 전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이던 1984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을 처음 방문해 이 땅에 입 맞추고 광주를 찾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우리는 민주주의를 되찾아올 수 있었다. 그것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씀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그를 성취하기 위한 우리 안의 잠재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또 과거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유럽 방문이 동구권의 민주화로 귀결되었듯이 교황이 남긴 메시지의 파장과 영향력은 작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비록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희망을 언급한 것일 뿐이라 해도,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통일에 대해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동기를 부여하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더 큰 발걸음으로 나타나리라고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황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교황이 북한에 내민 손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교황의 방한 그리고 그의 말씀으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우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값진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photo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 교수로 북한연구방법론, 한국공산주의운동사 등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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