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호 > 특별 인터뷰
특별 인터뷰 / 유기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지난 6월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이 19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장에 선출됐다. 유 위원장은 국제법·해양법 전문 변호사로 활약하다 정계에 입문해 부산 서구에서 내리 3선을 한 중진 의원이며, 18대 국회에서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간사로 활동한 바 있다.
외교·통일 분야 현안이 산적한 19대 국회에서 외교통일위원장을 맡은 그의 국제 정세 분석과 향후 계획을 들었다.
19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최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새롭게 취임하며 동북아 정세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죠. 중국의 부상,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강화와 미국의 지지 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보니 지역 안보협력체제와 외교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간 지지부진했던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을 토대로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했고, 유라시아 개발 및 인도적 대북 지원, 남북 경협 활성화와 같은 사업 추진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어 우리 위원회에서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박근혜정부의 구상에 따라 외교통상부의 통상업무를 타 부처로 이관하며 기존의 조직과 정책이 변화한 만큼 외교부가 재외국민 보호 및 영사 업무, 지역 안보, 각국 간 외교 현안에 더욱 주력할 수 있도록 위원장으로서 독려해나가고자 합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한·중·일 ‘원자력안전협의체’ 구성은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이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구체화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추진하는 첫 단추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한국, 중국, 일본 중심 원자력안전협의체 구성은 3국 간 원자력안전 협력 채널을 확대, 발전시키자는 구상입니다. 또 향후 미국, 러시아, 북한, 몽골 등의 참여까지 유도한다는 계획이죠. 원자력안전협의체가 가동된다면 현행 3국 간 ‘원자력안전고위규제자회의’의 미래 발전 구상으로서 비정치·안보 분야 협력부터 시작해 민감한 분야까지 평화협력을 단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동북아에서 원자력발전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안전이 역내 공동 안보위협으로 대두되면서 다자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께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한 광복 70주년 기념 공동 문화사업 준비 등을 제안했음에도 5·24조치의 해결 없이는 남북관계에 실질적 진전이 없을 것이란 회의론도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드레스덴 선언에서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민생 인프라 구축 등을 말씀하셨고, 이번 경축사에서도 신중하고 선의에 입각한 제안을 했지만 북측이 이를 비난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같은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당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5·24조치의 완화가 필요하며, 낙후된 북한의 철도·도로·항만·공항시설의 보완과 점검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통일비용의 선지출과 불용비율이 높은 남북협력기금의 활용을 고려해야 합니다. 북한의 사회간접시설의 보완이 행여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 마련도 필요합니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먼저 손을 내민 만큼 북한도 우리가 제안한 남북 고위급회담에 응답해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남측으로부터 양보를 바란다면 미사일 발사 시위나 정례적인 한미 군사훈련 트집 잡기를 중단하고 화해 무드 조성을 위해 한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만, 북한이 광복절 경축사를 비난하면서도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의사를 재확인하고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춰 화환과 조전을 보내온 것은 긍정적인 사인으로 보입니다.”
‘통일 대박론’에 이어 3년 4개월 만에 성사된 이산가족 상봉, 드레스덴 선언 등으로 어느 때보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으나, 선언적 의미에 그쳐 액션플랜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박근혜정부의 제안에 북한도 화답할 날이 올 것입니다. 통일부가 향후 남북 간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하기 위한 고위급 대화 채널 개설 및 정례화를 추진해나가고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경제협력 사업을 단계적으로 재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그동안 통일 문제는 선언적 의미에 그쳐왔다는 지적이 있어 정부에서 지난해 만들어진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상시 대화 채널로 정착시키고 고위급 대화 채널을 개설해 정례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8월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고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 및 9·19 공동성명을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의장 성명이 채택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은 아세안이 창설한 태평양지역 최초의 공식적 다자안보협의체로서 그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주었고, 아세안은 그간 외교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제로섬 게임에서 탈피해 전략적 균형감을 잃지 않고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해왔습니다. 작금의 동아시아는 중국의 급부상과 일본의 우경화 경향 속에서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인데, 그 와중에서 지금까지 전략적 균형감을 잘 유지해왔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이 그런 선언을 한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고 응원단도 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까요.
“진정성이 담보된다는 전제하에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와 응원단 방문에 큰 박수와 환영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이를 계기로 남북한이 정치·경제·문화·인도적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확대 발전시켜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지난 8월 7일 첫 회의를 했습니다.앞으로 어떤 역할을 기대하십니까.
“통일부는 단기적 현안을 맡고 통일준비위원회는 중·장기적 대책을 맡는다고 하는데, 아직 그 구분이 모호한 것 같습니다. 통일부와 통일준비위원회, 둘 사이에 명확한 업무 분장과 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탄력적 운영이 필요합니다. 또한 성공적인 위원회로 거듭나려면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실효적 조치와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실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구체적 실천 방안과 정책을 마련하면서 그에 필요한 예산과 이행계획에 대해 입법기관인 국회와 긴밀히 논의하고 상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남북대화나 6자회담이 중단된 상태이고, 한일관계 역시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독자적인 의원외교, 즉 의회를 통한 한일 교류 확대를 제안하셨습니다.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의회를 통한 교류를 확대하고 일본의 올바른 인식 제고를 지속적으로 촉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7월 29일 일본 공명당 소속 중의원 두 분과 참의원 세 분을 만나 한일관계 개선에 노력해주기 바라고 이를 위해 일본의 올바른 인식이 우선돼야 함을 당부했습니다. 앞으로도 외통위원장으로서 여러 경로와 기회를 통해 양국의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의회외교 차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간극을 좁힐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생각입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대통령 순방외교로는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부분을 의원외교를 통해 드러나지 않게 해결해야 합니다. 한일 간 역사 문제도 단호하게 대응하되 경제나 북핵 문제 등엔 대화 채널을 계속 가동해야 하고 그 역할을 국회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이 아닌 서울을 먼저 방문한 것에 대해 많은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북한 핵’을 명시하지 않고 ‘한반도 핵’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이에 대해 미국과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시 주석의 방한에도 불구하고 한중관계에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차이나뉴스위클리를 비롯한 중국 언론들은 시 주석의 이번 방한으로 한중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이뤄졌다고 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중국도 북한의 비핵화가 국가 안전을 위한 최후의 선(저선·底線)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다시 4차 핵실험을 운운한다면 더는 북한을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동북아 질서의 변화와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외교전략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알다시피 한반도는 역사상 수많은 외세의 침입과 전쟁을 통해 많은 고통을 받아왔고 오늘날까지도 분단의 역사를 이어가며 ‘지정학의 저주’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지정학의 저주’를 ‘지정학의 특수’로 바꿔나가야 할 때이며, 이를 위해 북한은 물론 한반도 주변국과 긴밀히 협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외교적 좌표를 설정해 지정학적으로 한반도가 유라시아의 중심이자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주변국에 역설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할 것을 제안해 이를 성사시키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외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의해임없이 변화하며, 국제사회에서 영원불변한 것은 없습니다.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은 국익을 최우선한다는 것뿐입니다.”
최근 북일관계가 급진전하면서 한반도에서 북한을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경쟁을 벌이고, 한·미·일 공조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상황에서 국익에 따라 누구와도 손을 잡는 것이 세계 외교의 추세입니다. 이제는 의리외교보다는 실리외교를 펼쳐야 합니다.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통하는 아시아의 관문이고,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통일이 주변국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우리는 외교적 고립이 아닌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 국회 외교통일위 위원장으로서 우리나라가 실리를 챙기면서 탕평외교를 펼치도록 노력하겠다는 구상을 밝히셨습니다.
“현재 우리 외교는 동북아에서 중국과 손을 잡고 일본과는 등을 지고 있습니다만 언제까지 일본과 등을 돌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벌써 다섯 차례 정상회담을 한 반면 일본 아베 총리와는 단 둘이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실리를 챙기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탕평외교입니다.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일본 의원들과 만나고, 주한 일본대사와 유흥수 신임 주일대사를 차례로 만나 한일관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현재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이 2만6000여 명입니다. 이들을 ‘먼저 온 통일’이라 부를 만큼 남북통일 과정에서 이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은 2007년 1만 명을 넘어섰고, 불과 3년 만에 2만 명을 넘는 등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탈북민 지원은 탈북민이 적었던 초기 귀순용사, 국가유공자 등으로 우대됐다가 1990년대부터 생활보호대상자로, 1990년 후반 탈북민이 급증하면서는 자립 대상이 됐습니다. 정부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신변 보호 및 거주 보호 담당을 지정해 정착을 돕고는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앞으로 통일 한반도에서 북한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내적 갈등이 커진다면 ‘쪽박 통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의 동반자로, 통일의 주역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합니다.”
7월 말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재미 한인 300여 명이 모여 ‘제1회 미주 한인 풀뿌리 활동 콘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미주 한인 170만 명이 힘을 합친다면 정부가 하지 못한 부문의 외교적 성과도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700만 명 이상의 재외동포가 전 세계 180여 개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재외동포는 상대국을 잘 이해하고 우리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국가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될 글로벌 인재입니다. 이스라엘, 인도, 중국 등 많은 나라에서 국외 자국동포 영입을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재외 한글학교 육성 등 정부 지원을 통해 한인 2세들에게 뿌리의식을 함양시키고, 우수 인재 발굴·육성 등을 위해 네트워크 기반을 구축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내년은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965년 1만 명이던 한일 방문자 수는 2010년 500만 명을 돌파해 2013년에는 5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한일 양국은 50년간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은 늘렸지만 역사 문제 등으로 지금은 최악의 관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근본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원외교를 펼쳐 국익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