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호 > 글로벌 평통
글로벌 평통 / 이원일 스페인지회 자문위원
한국에서 30년, 스페인에서 40년, 태권도인으로 살아온 지 60년, 침구학을 한 지 41년. 이원일 스페인지회 자문위원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정리한 <내 이름은 재외동포>를 출간했다. 그에게서 태권도 사랑, 나라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1973년 11월 30일 한 남자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맞아주는 이도 없는 생경한 나라에서 가진 거라곤 태권도 도복 한 벌과 현금 300달러뿐. 말아 쥔 그의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41년 전 이원일(71) 자문위원은 이렇게 스페인에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 여권 검사와 비자 확인을 받는데 직원이 뭐라고 물어요.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모르니 말은 못 하고 창구 앞에 손을 올려놓고 주먹만 쥐었다 풀었다 했죠. 그때 직원이 내 손에 검게 박인 굳은살을 보고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웃는 얼굴로 통과시켜줬지요.”
1970년대 태권도는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각광을 받았다. 스페인 사람들은 태권도 종주국 한국에서 온 사범이라고 하면 먼저 말을 걸고 친절을 베풀며 특별대우를 해줬다. 오늘날 K-팝이나 K-드라마 못지않은 한류의 원조인 셈이다. 이 위원이 인천체육전문학교 초대 태권도 코치와 감독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스페인행을 택한 이유도 더 큰 무대에 한국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1943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월남한 그는 열두 살 때 기왓장 10장을 한 주먹으로 격파하는 태권도의 위력에 홀딱 빠졌다. 눈을 감아도 뛰어차기로 기왓장을 깨뜨리는 사범의 멋진 동작이 어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곧바로 태권도에 입문해 1967년 주월 한국군 맹호부대 태권도 교관으로 복무했고, 1971년 인천공업고등전문학교 태권도 코치·감독, 1973년 인천체육전문학교 무도과 초대 태권도 코치·감독을 지냈다.
한인 2~3세 위한 정체성 교육서 출간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자신의 이름을 딴 원리태권도장을 설립해 수많은 외국인 제자를 길러내는 한편, 한국에서 가르쳤던 제자 사범들을 스페인으로 초청해 함께 태권도로 국위 선양을 하며 ‘민간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2009년 공인 9단이 됐고, 태권도 정신과 동작을 학문적으로 총 정리한 <태권도 교본> 3권을 스페인어로 출간했으며, 41년간 공부한 침구학 관련 책도 3권이나 냈다. 현재 스페인 한인총연합회 선거위원이기도 하다.
“태권도에는 예의, 염치, 인내, 극기, 백절불굴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선배를 존경하고 친구는 의리로, 후배는 사랑으로, 제자는 엄격한 가르침으로 대하는 것이 무도인의 자세죠. 만약 제가 태권도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제 나이 일흔을 넘었지만 이곳에서는 40대 중반으로 봅니다.”
지난해 일흔 생일을 맞아 이원일 위원은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작업을 했다. <내 이름은 재외동포>라는 책을 펴낸 것. 이 책은 그의 회고록이자 제자들에게 건네는 인생 지침서이면서 해외 거주 한인 2, 3세들을 위한 정체성 교육서다. 비록 40여 년의 해외 생활에 한국어로 쓴 글이 서툴고 어색하지만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다.
“5대양 6대주에 750만 명의 재외동포가 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스페인 땅에서 스페인 국적으로 살고 있지만 한국인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유럽의 한인 동포들도 유럽 한인총연합회를 만들어 동포들끼리 화합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힘을 보태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해외 생활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고민은 이민 1.5~3세들의 정체성 교육입니다. 6·25전쟁을 겪은 세대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그 의지를 이해하지만 이후 세대들은 말로는 통일 해도 평화통일이 왜 필요한지 잘 모릅니다. 모국이 잘살고 힘이 있어야 재외동포들도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후세들에게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부모 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 위원은 2001년 민주평통 10기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13년 16기에 다시 합류했다. 지난해 <내 이름은 재외동포>를 펴내고 민주평통 활동도 재개하면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30년, 스페인에서 40년, 태권도인으로 살아온 지 60년, 침구학을 한 지 41년인 인생을 정리하고 돌아보면서 ‘이제 나머지 삶을 남북통일을 위해 헌신하자’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민주평통 위원들 몇 명이 활동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교민 화합이 우선이죠. 그래야 모든 교민들이 민주평통의 의무와 역할을 이해하고 통일운동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자문위원 선발도 더 공개적으로 해서 교민들 스스로 내가 선출한 일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국에 바라는 게 있다면 연 1회라도 통일 전문가를 해외 각 지회에 파견해 이민 1.5~3세들을 교육시킬 기회를 마련해달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