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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 북한의 대남 행보와 대남전략의 변화
최근 북한의 대남 행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대남 비방과 함께 군사적 도발과 무력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유화와 강경을 오가는 북한의 대남전략 목표를 파악하고, 이에 따른 우리의 유연한 대북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북한은 아시안게임 참가를 기정사실화하고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통보하는가 하면 상호 비방 중단과 군사적 긴장 해소를 위한 대남 대화를 국방위 특별제안으로 제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화환도 남쪽에 전달했다. 또한 북한은 6월과 7월에 집중적으로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 수십 발을 발사하는 등 군사적 무력시위 또한 계속하고 있다. 유화와 강경을 오가는 북한의 최근 대남 행보를 보면서 화전(和戰) 양면의 양동작전이라는 설명도 나오고, 북의 대남전략이 오락가락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북한의 대남전략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상호 모순되는 엇박자가 아니라 사실은 일관된 의도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남전략과 대남전술의 단순한 오락가락 행보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김정은 시대의 국가전략 변화에 따른 근본적 변화의 가능성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스스로 체제 유지에 상대적 자신감을 갖고 있다. 김정일 시대의 최대 목표가 사회주의 붕괴 이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선군(先軍)을 내세워 사상 최대의 체제 위기를 견뎌내는 것이었다면, 이제 김정은 시대의 목표는 체제 유지에 성공한 자신감을 토대로 강성국가 진입을 선포하고 경제 발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체제 유지에 대한 자신감 확보한 북한
지난해 핵무력과 경제 발전 병진노선을 당 중앙위를 통해 당의 총노선으로 제시한 것도 이제 핵무력으로 대미 억지와 체제 유지가 가능해진 만큼 국방비를 추가로 늘리지 않고 경제 발전에 당의 힘을 쏟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013년 3차 핵실험과 2012년 은하 3호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에 기반을 둔 북한의 자신감이었다. 곧이어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해 신의주특구 외에 13개의 지방 개발구를 새로 선포한 것도 김정은식 경제 발전 전략을 제시한 것이었다.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농업에 포전담당제를 실시하는 내용의 이른바 ‘6·28 방침’도 김정은식의 경제 관리 개선조치로 자리 잡고 있다.
절대적으로는 아직도 부족하지만 과거에 비해 식량난이 완화됐고, 북중 교역의 지속적 확대와 사경제의 확장으로 북한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는 것 역시 김정은 시대 체제 유지의 자신감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북한이 선전하고 있는 현대식 각종 시설들도 과거 김정일 시대 고난의 행군 시절과 견주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상대적으로 체제 유지에 자신감을 갖게 된 북한은 이에 근거해서 대남전략도 상대적 우월성의 입장에서 구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남북관계 중단에도 불구하고 체제 유지를 이뤄낸 만큼 이제 북한의 대남전략은 남측에게서 절실하게 지원을 받겠다는 소극적 구걸형에서 벗어나 있다. 오히려 최근 북한의 대남 행보를 보면 남쪽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내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 남북관계를 평화롭게 관리하겠다는 성격이 더욱 강해 보인다.
체제 유지를 넘어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의 향상을 이루기 위해 지금 김정은 체제는 평화로운 대외 환경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당 중앙위에서 병진노선을 채택할 때에도 경제 발전을 위한 평화로운 대외환경이 언급됐다. 올해 들어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1월 16일 국방위 중대 제안과 6월 30일 국방위 특별 제안을 통해 남북대화를 제안하고 있는 것도 철두철미 정치적 대결 중단과 군사적 긴장 완화를 핵심 의제로 하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논리에 따르면 이제 체제 위기를 벗어났고 체제 유지의 자신감을 토대로 경제 발전에 나서야 하는 만큼 한반도에서 정치적 대결과 군사적 긴장이 시급히 해소돼야 자신들의 경제 발전에 유리한 대외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고, 그 맥락에서 남북관계는 평화롭게 관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고 그에 맞춰 이산가족 상봉이나 각종 유화적 조치를 취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평화로운 대외환경으로서의 남북관계 관리라는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사소한 우발적 충돌’을 두려워하는 북한의 속내
체제 유지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북한의 새로운 대남전략 목표, 즉 평화로운 대외환경 조성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전략의 목표는 올해 실시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강력한 비난과 지속적인 중단 요구에도 투영돼 있다. 지금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을 비난하는 가장 큰 명분은 군사적 긴장 고조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촉발될 가능성이다. 2010년 이후 북한의 동북아 정세 인식은 한결같이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이 중국 압박을 위해 한반도에서 대결과 전쟁의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상호 대결과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군사훈련은 북한에 가장 평화롭지 못한 대외환경으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이 1월 16일 국방위 중대 제안을 통해 ‘사소한 우발적 충돌도 그 즉시 전면전쟁에로 번져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은 ‘대국들에게는 어부지리를 주게 되고 우리에게는 민족의 공멸을 가져다주는 상상 밖의 재난’이라고 주장한 대목이 북한의 정세 인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결국 지금 북한에게 남북관계는 평화로운 대외환경의 중요한 영역으로 간주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며 동시에 정치군사적 대결 해소가 급선무라는 입장인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고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비난하고 중단을 요구하는 최근의 행보는 바로 이 같은 대남전략의 표현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을 거부하고 있는 것 역시 정치군사적 의제를 배제한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일변도의 교류협력은 지금 북한의 대남전략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국방위 중대 제안과 특별 제안 그리고 공화국 정부 성명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치적 비방 중단과 군사적 긴장 해소를 위한 남북대화를 제안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지난 6월과 7월에 집중된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 발사 역시 본질적으로는 그들이 의도하는 정치군사적 의제 요구에 화답하도록 박근혜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예년과 달리 이례적으로 다수의 발사체를 날리고 과거에 비해 개량된 신형 미사일과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사거리를 과시하는 것은 북한의 군사력 향상을 도모하는 동시에 남북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각인시키고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확인시킴으로써 박근혜정부에 대해 자신들의 제안에 화답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전략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국가전략이 체제 위기에서 체제 유지의 자신감으로 변화했고, 이에 따라 대남전략 역시 대북 지원을 얻기 위한 구걸형의 남북관계가 아니라 경제 발전을 위한 평화로운 대외환경으로서의 남북관계 관리로 성격이 변화한 것이라면 지금 우리의 대북정책도 거기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
평화로운 대외환경으로서 남북관계는 북으로 하여금 한편으로 관계 개선을 위한 유화조치를 내놓게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과 정치군사적 대화 요구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게 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참가를 강력하게 피력하면서 수차례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최근 북한의 대남 행보는 결국 유화와 강경의 엇박자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일관된 전략 아래 움직이는 셈이다.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과거 북의 대남전략을 전제로 대북정책을 취한다면 향후 남북관계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보장받기 어렵다. 북한이 남쪽의 지원을 절실히 바란다는 과거형 대남전략으로 지금의 정세 인식을 하는 한 우리는 북한의 속내를 잘못 보게 된다. 오히려 우리 정부가 희망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드레스덴 선언의 실천을 가능케 하려면 북한의 변화된 대남전략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기초해서 북한을 우리가 제안한 의제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지혜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북의 변화된 대남전략에 맞춰 유연한 대북정책 필요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은 일관되게 기능주의적 접근이다. 즉 벽돌 쌓듯이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그렇고, 인도적 문제와 민생 인프라 구축 및 민족 동질성 회복 등을 내세운 드레스덴 선언도 모두 경제 협력과 사회문화 교류를 우선시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새롭게 제안한 남북의 하천 및 산림 관리를 위한 공동 협력 사업이나 광복 70주년 기념 공동 문화사업 등도 기능주의적 접근의 발로다. 경제 협력과 사회문화 분야부터 출발하자는 ‘작은 통일’의 시작인 것이다.
이에 반해 북한의 대남전략은 시종일관 정치군사적 접근이다. 올해 들어 북한은 국방위 중대 제안과 특별 제안 등을 통해 정치적 비방 중단과 군사적 긴장 해소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남과 북 모두 관계 개선의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자신이 내민 손만을 상대방이 잡기 원하면서 정작 서로 손을 맞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 해소를 위한다면 지금 남북이 내밀고 있는 각자의 손을 서로 맞잡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은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을 비난하지 말고 전향적으로 수용하고, 동시에 박근혜정부도 북한의 국방위 제안을 거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기능주의적 의제와 정치군사적 의제를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경제 협력과 사회문화적 교류도 논의하고, 북이 요구하는 비방 중단과 군사적 적대 중단도 동시에 포괄적으로 논의함으로써 일단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 경협과 사회문화 교류를 진전시키면서 항상 우리가 먼저 북한에 대해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국방장관 회담을 요구했음을 상기한다면 북한이 요구하는 정치군사적 의제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자신감을 갖고 오히려 북한이 내민 손을 적극적으로 잡아채서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 겁낼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