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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나누다 | 북한으로 띄우는 편지 당선작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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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오늘도 얼마나 고생하십니까?
얼마 전 까지만 하여도 찌는 뜻한 무더위로 밖에 나가기도 무서웠는데 어머니는
이 무더운 삼복더위에 세벌 김을 매시느라고 밭에서 굽은 허리를 한 번도 펴지
못하시고 일했겠지요? 지금도 어머님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하여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오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릅니다.

예로부터 자식은 나라의 충신은 못될망정 부모님께 불효자식은 되지
말라고 하였는데 저는 충신도 못되고 불효자식만 되었네요. 이렇게
가슴 아플 줄 알았으면 함께 있을 때 좀 잘해줬어야 하는데 이 못난
아들은 함께 있을 때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여리고도 여린 가냘픈 두 어깨에 5형제나 되는 자식들과
평생 환자로 살아오신 아버지를 걸머쥐시고 일하시느라 때 이른 나이에
벌써 허리가 굽어지시고 머리는 백발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계속 혼자서 뭐라고 계속 중얼 거리셨습니다. 그때 철없던 나는 이런 어머니를 보고
뭘 혼자서 자꾸 중얼거리느냐고 하면서 신경질을 부리곤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야 그것이 강한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질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신경질만 부렸던 나의 미련함과 미안함에 온 밤 바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하루 밤이 아닌 365일을 계속 운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눈물이 아닌 실천으로 뒤 늦게나마 효도를 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인데 우리 가족을 본의 아니게 남과 북으로 갈라놓은 저주로운 38선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하네요.

세월은 유수와 같다더니만 이제는 어머니와 헤어 진지 벌써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내가 처음 고향을 떠날 때는 우리의 이별이 이렇게 오랜 시간 지속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의 생각은 눈 딱 감고 3년간만 중국에서 돈을 벌어가지고 돌아가서는 어머님께 효도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금쪽같은 내 아들과 행복한 생활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추석이 다가 오는데 나의 이런 결심이 굳어진 것도
바로 추석에 아버지 산소에 갔을 때였습니다. 어머니도 그날 보셨겠지만
저는 그날 아버지 산소에서 제를 올리면서 중국에서 꼭 돈을 벌어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다고 속으로 맹세 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중국에 있는 3년 동안 아버지의 산소를 찾지 못할 테니 저 대신
꽃을 보면서 행복하게 지내시라고 아버지 묘 주위에 코스모스
씨앗을 잔뜩 뿌려주었습니다. 이런 저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어머니는 벌초하기도 힘든데 무슨 꽃씨를 그렇게 많이 뿌리느냐고
나무라셨지요? 그래도 제가 고집스럽게 잔뜩 씨앗을 뿌려 놓았으니
지금쯤은 아버지 산소에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활짝 피어나 저 대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꽃 속에 묻힌 아버지의 산소를 그려보면 아픈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됩니다.
솔직히 어느 하루도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을 잊어 본적이 없지만 이렇게 추석과 같은 명절이 오면 그 그리움은 몇 십 배로 더 커진답니다. 추석이 되면 어머님이 늘 손수 해주시던 순두부도 먹고 싶고 형제들과 만나 오순도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의 따뜻한 정도 느끼고 싶습니다. 여기서 항 혼자 생활하니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놓아도 맛이 없고 외로움은 쌓이다 못해 하늘을 찌를 것 같습니다. 더더구나 추석에는 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술 한 잔 부어드리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더욱 괴롭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몇 해 전부터 우리 탈북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헤아려 보시고 ‘민주평통’에서는 추석이 되면 다 같이 모여서 공동으로 제를 올릴 수 있게 차례 상도 마련해 주고 제를 올리는 방법도 가르쳐주어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작년도에는 차례 제를 지낼 때 입는 전통한복까지 마련해 주어 살아생전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차례 제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올해도 지금 차례 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멀리서 나마 정성껏 제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제가 여기서 정성껏 제를 올린다고 해도 직접 산소를 찾아가시는 어머니에 비하면 너무 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식인 제가 아버님의 산소를 맡아야 하는데 올해도 또 어머님이
가셔야 하겠네요.

그러나 어머니! 우리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지금으로썬 도저히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언제 가는 꼭 이루어지고야 말
통일의 그날 우리 다 함께 아버님의 산소를 찾아가 제를 드리고
용서를 빌 그날을 기다립시다. 그러니 어머니는 그날까지 이를
악물고서라도 꼭 살아만 계셔주세요. 이 아들이 어머님께 바라는
최대의 소원입니다. 그럼 꼭 살아서 다시 만날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은 이만 쓰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3.9. 9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남쪽에서 아들 드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