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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꿈꾸다 | 좌충우돌 남한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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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온 지 1년이 채 안된 할머니 두 분(A, B)을 일행과 함께 서울 시내에서 만났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도 B씨가 나타나지 않자 초조해진 A씨.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B씨를 발견하고 핀잔을 준다.
“조선혁명을 혼자서 하니? 왜 이렇게 늦었어?”
그러자 B씨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남한에서는 그런 말 쓰는 거 아니라며….”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조선혁명을 혼자 하니?’라는 말은 혼자서 분주하게 바쁠 때, 혹은 시간 약속을 어길 때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혁명’이라는 단어 사용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내가 오늘 지갑을 따귀 맞췄어. 번쩍번쩍 코 떼 간다는 평양에서도 안 맞춘 따귀를 처음 맞췄네?”.

B씨는 왜 따귀를 맞았을까? 그렇다. 따귀를 맞춘다는 것은 소매치기나 도둑질을 당했다는 뜻의 북한말이다. 함께 온 일행의 차 안에 가방을 놓고 내렸는데 가방은 그대로 두고 지갑만 쏙 빼간 것. 일행은 일단 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이 5~10분 안에 올 거라는 말에 안색이 바뀐 B씨.
“나 하나를 위해서 경찰이 그렇게 출동을 하는가?”
B씨는 “북한에서는 살인 강도사건이 나도 이름이 있든가(유명인이든가), 가계(김일성 친척)가 아니면 좀처럼 조사를 하지 않는다”며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B씨는 이날 결국 지갑은 찾지 못했고, ‘이런 것들이 다 경험’이라는 말로 애써 위안을 해야 했다.

“남한은 따귀꾼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라는 A씨의 말에
“도덕이 다 어디로 갔냐? 전부 왕가물 들었다! 하하하”고 말하는 B씨. 그러자
“아니야. 도덕은 다 엿사먹었대요라고 말해야지. 하하하”라고 A씨도 맞장구를 치며 껄껄 웃었다.
이들의 대화는 의식주 해결이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절을 겪으면서 사라져간 도덕과 예의범절 등을 풍자한 것으로, 두 사람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마치 만담꾼들처럼 즐겁게 웃었다.
일단 식당에 들어가기로 한 A, B씨 일행, 갑자기 궁금한 점이 있단다.
“왜 이 짝(남한)에서는 식당이나 시장에 가면 왜 아무나 한테 이모라고 하나? 이모는 직계 친척인데, 저 짝(북한)에서는 아지미라고 해요. 아지미.”
‘이모, 이모’ 하고 부르면 반찬 같은 거 더 달라고 하기도 좋고, 술 마실 때 안주도 더 많이 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A씨는 “아~ 사교성 있는 거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나는 언니라는 말 더 웃겨. 나이가 위고 아래고 상관없이 언니래. 저번에 옷을 사러 갔는데 나보고 언니, 언니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야 임마, 너 몇 살이가? 나 70(살) 넘었는데 쪼그만 게 언니라는 게 말이 되니? 그랬더니 아 글쎄, 그래야 좋아한대. 아, 나 북한에서 왔는데 그런 말 하면 흉하다 그랬지. 하하하.”
이렇듯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남한사람들이 사용하는 호칭이다. 남자친구나 남편, 사위를 부르는 말만 봐도 큰 차이가 있다. 일례로 북한에서는 남자친구를 ‘새쓰베’로 부른다고 한다.
“다른 지역은 잘 몰라도 함경도나 양강도에서는 남자친구를 새쓰베라고 불러. 네 새쓰베 뭐하니? 이렇게.”

이 새쓰베란 어디서 나온 말일까? 그렇다. 새서방이라는 뜻이다. 상당기간 연애를 해온 젊은 커플이나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의 경우 남자를 칭할 때 새쓰베라고 부른다고. 그렇다면 결혼한 지 꽤 오래된 부부들은 남편을 뭐라고 부를까? 바로 ‘나그네’다. 아주머니들끼리 모여서 ‘네 남편 뭐하니?’라고 할 때 ‘나그네 뭐하니?’ 이렇게 묻거나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아무개 아부지 뭐하니?’이렇게 말한다.

또 한 가지, 젊은 처녀 총각들에게는 ‘니 가(그애)하고 친하니?’라고 물어보면 아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친하다’는 말은 ‘사귄다’는 말과 같아서 ‘너 걔랑 사귀는 거야?’와 같은 뜻으로 들리기 때문.
‘요상한’ 호칭의 최고봉은 바로 ‘자기’라는 말이다.
“자기야, 자기야 그러는데, 북한에 그런 건 없어. 자기는 자기 자신할 때 자기잖아?”
A씨의 말에 모두들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아우, 우스워라. 그건 진짜 우습다. 나도 드라마에서 봤어. 하나원에서도 자기야, 자기야 하면서 장난쳤잖아. 자기야 소리가 정말 재밌어.” B씨도 맞장구를 친다.
A씨는 최근에 딸, 사위와 함께 강원도 고성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에 식도락이 빠질 수 없기에 이름난 횟집으로 A씨를 모셨다. 자연산 회를 주문하자 밑반찬이 몇 가지 나오고 본 메뉴인 회가 등장했다. 이 회를 본 A씨의 첫마디는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애들아, 회는 어디 있는 거냐?”
A씨는 왜 회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렇다. 북한에서 회는 해물을 강한 식초에 익혀서 양념해서 나오는 음식이다.
A씨를 위하는 딸과 사위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A씨는 회를 한 점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과 남한의 음식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해프닝들이 상당수 있다.
북한이탈주민 C씨는 ‘뭐 먹을래요?’라고 묻는 말이 조금은 두렵다. 얼마 전에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싸~한’ 분위기 를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 단지 “생선 종류는 웬만하면 다 잘 먹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녀. 도대체 C씨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바로 ‘물고기를 먹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돼지고기나 닭고기, 쇠고기 등을 육고기라고 하고 바다, 민물고기, 생선을 통칭해서 물고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일반적으로 물고기 하면, 주로 민물 고기를 가리키기 때문에 C씨 일행은 바로 앞 생선구이 집을 놔두고 한참 고민에 빠져야 했다.

냉면이나 개장(보신탕)과 같이 남북한에서 공통적으로 먹는 음식들도 재료나 조리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특히 김밥의 경우 고유 음식은 아니지만 북한에서도 김밥을 먹는데, 김 위에 밥을 얹은 후 그 위에 양념장을 뿌려서 먹거나 아니면 계란 지단을 올려서 말아먹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역차가 커서 김밥이라는 것을 먹어보기는 커녕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사람도 있다. 함경도 연사지역 깊은 산골에서 살았던 D씨는 서울에 와서 김밥을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김밥이라는 걸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는 거에요. 그래서 한동안 김밥을 푹~! 먹었어요. 푹~! 김밥천국이란 가게도 있던데 정말 천국은 천국이구나 생각했지요. 하하하.”


북한이탈주민을 공포에 떨게 한 음식도 있다. 바로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이다. 한 탈북인사는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가족들과 함께 식당에 갔는데 음식점 간판에 뼈처럼 삐죽삐죽하게 쓴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 상호를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할머니 뼈로 음식을 끓일 리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일순간 드는 공포심은 어쩔 수 없었다고.
피자의 경우 ‘이런 걸 뭐가 맛있다고 먹을까?’하는 반응들이 많다. B씨는 피자를 처음 본 소감을 이렇게 이야기 했다.

“고기조각이며 감자조각이며 먹다 남은 음식들 숭숭 썰어서 얹어놓은 지짐이 같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더란 말이지. 내가 물었어. 아니 왜 이렇게 비싸? 좀 눅은 거 없어?”
‘눅은 것’이란 ‘싼 것’을 뜻하는 말로 재활용(?) 음식처럼 보이는 데 지나치게 비싸다고 생각한 것이다.

“피자보다는 평양의 종합지짐이가 맛있어. 호박이나 다른 농산물을 넣고 낙지와 같은 해산물을 섞어서 부친 지짐인데 호박이 들어가서 달큼하고 아주 맛이 좋아.”
A씨는 후식으로 나온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아직 아메리카노처럼 ‘쓴 거’는 못 마셔도 이 믹스커피는 남한에 처음 도착했을때 부터 마셔왔다고 말했다.
“커피를 한 입 마시고 나면 입에서 까마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나는 좋더라고.” 까마치는 누룽지의 북한말이다. 구수한 향내가 좋게 느껴 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바로 음식쓰레기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 남한에 와서 음식물쓰레기를 보고 깜짝 놀랐어. 딜다보고 막 격분했어. 심장이 알랑알랑 떨리더라고.”
당시 놀란 심정을 재현하듯 가슴위에 손을 얹고 말하는 B씨의 말에 A씨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우리는 그런 거 없다고. 쪼금 나오는 찌꺼기까지도 정성스레 주변구역 사람들에게 보내줘. 그러면 그걸로 돼지를 키우거든? 그 돼지를 우리가 갖다 먹어. 저 짝 은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 가는데 이 짝은 흔해 빠져서...” 하고 말문을 흐렸다.

분위기는 일순 숙연해졌다. 북한이탈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항상 북쪽에 남겨둔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게 묻어날 때가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간절한 이들이다.
<글.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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