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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말하다 | 정부통일정책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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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의 설맞이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김동식 박사

남한을 의식해 국가적 명절로 격상된 음력설
사실 북한에서도 우리와 같이 과거에는 음력설(구정)을 민속명절로 크게 기념하였다. 그러나 1967년 김일성의 ‘봉건잔재 타파’ 지시에 따라 민속명절이 철폐되면서 음력설을 쇠지 않고 양력설(신정)만 명절로 쇠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김정일 지시에 따라 민속명절이 부분적으로 부활되면서 음력설도 추석과 함께 명절로 쇠기 시작하였다. 이때 음력설을 추석과 함께 민속명절로 부활시킨 것은 1989년 7월에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취한 조치였는데, 실제로는 남한을 의식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김정일은 축전참가를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북한에도 남한과 같이 민족전통이 남아 있고 종교의 자유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민속명절을 부활시키는 동시에 평양시내에 교회와 성당을 세우도록 했던 것이다.

2003년에는 음력 정월 초하루를 앞두고 김정일이 ‘양력설 대신 음력설을 크게 쇠라’고 특별히 지시하면서 이때부터 음력설에는 3일을 휴일로 정하고 국가적인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이 역시 남한을 의식한 조치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남한이 음력설 민속명절로 정하고 크게 쇠고 있는 사실이 북한주민들에게 전파 되었고, 이 때문에 김정일이 음력설을 크게 쇠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민족전통 계승 부분에 있어서 북한이 남한에 뒤처져 있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김정일이 북한에서도 음력설을 남한과 같이 크게 쇠도록 한 것이다.
정치행사로 시작하는 설맞이
북한의 설맞이는 보통 1월 1일 0시에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1월 1일 0시에 기관ㆍ기업소 단위 또는 개별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김일성ㆍ김정일 동상을 참배하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그래서 설명절을 비롯한 각종 명절 때 김부자 동상을 참배하고 헌화하는 것이 ‘겨레의 아름다운 풍속’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선전할 정도다. 주민들이 김부자 동상을 참배하는 시간에 김정은은 금수산기념궁전에 있는 김일성ㆍ김정일 시신을 참배한 다음 간부들과 함께 설맞이 공연을 관람한다.

김부자 동상 참배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김정은의 신년사 낭독모습을 TV로 시청하거나 라디오로 청취하는 일이다. 과거 김일성이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시작된 신년사 시청 및 청취는 그나마 김정일 시대에는 김정일이 구두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아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행사다. 그런데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을 흉내 내면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모습을 시청하거나 청취하는 일은 김일성 시대와 같은 행사가 되었다. 새벽에 김부자 동상을 참배하지 못한 주민들은 김정은 신년사 방송이 끝난 다음 집체적 또는 개별적으로 김부자 동상을 참배한다. 이렇게 1월 1일 하루는 거의 정치행사로 시간을 보낸다.

새해 첫 일과가 시작되는 1월 3일 첫 시간에는 기관ㆍ기업소 및 학교 단위로 김정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충성의 선서모임'을 실시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새해를 맞으면서 첫 일과로 시무식을 하는 대신 북한에서는 ‘충성의 선서모임’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시무식과는 분명 다르다. ‘충성의 선서모임’은 선창자가 노동당에서 작성해서 하달한 ‘충성의 선서문’을 읽으면 다른 참석자들이 따라 읽는 방법으로 한다. 학생들은 방학이라도 그날에는 학교에 가서 ‘충성의 선서모임’에 참석해야 한다.

김정은 신년사를 학습하는 것도 새해 일과 가운데 빠질 수 없는 대목이다. ‘충성의 선서모임’이 끝나면 당 책임자 또는 행정책임자가 직원들에게 김정은 신년사를 읽어주는 '독보회'를 해야 한다. 그리고 1월 한 달 동안은 신년사 학습기간으로 정하고 신년사의 기본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대학생들이나 청년조직에서는 신년사를 통째로 외우는 ‘신년사 통달모임’을 열기도 한다.
새해를 축하합니다 &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설명절이 되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설명절에 “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주고받는 것이 보통이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신년사를 청취하고 김부자 동상 참배를 마치는 1월 1일 오후나 저녁부터 제대로 된 명절분위기를 낸다. 보통 김부자 동상 참배나 신년사 청취를 직장 단위로 하기 때문에 그 후에도 직장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김부자 동상 참배와 신년사 청취 전통이 만든 북한만의 독특한 명절문화인 셈이다. 그래서 직장 단위로 명절 쇠는 집을 미리 정하고 그 집에서 필요한 음식을 장만하도록 돈을 모아 주거나 음식재료를 가져다 준 다음 정치행사가 끝나면 직장 동료들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모두 그 집에 모여 서로 새해를 축하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가족 단위로 명절을 쇠는 것은 1월 2일이다. 이 날은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거나 가족친척들이 모여서 명절음식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시골아이들은 아직도 제기차기나 팽이치기, 연날리기와 스케이트타기 같은 민속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전자오락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어른들은 미리 장만한 술과 음식을 먹고 노래를 부르면서 휴일을 보낸다. 여건이나 형편이 되는 주민들은 가족단위로 음식점에 가서 외식을 하기도 한다. 특히 북한남성들에게는 설날이 마음껏 술에 취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북한에는 ‘설날은 술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명색뿐인 음력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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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가장 대표적인 설음식은 떡이다. 북한에서는 보통 명절이 되면 떡을 해먹는 풍습이 있는데, 설명절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설음식이라고 해서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말이다. 쌀이 없어 떡을 해먹지 못할 형편이라면 쌀밥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리고 형편이 되면 만두나 떡국ㆍ약밥 등을 만들어 먹는다. 물론 고기가 있으면 술안주로서 금상첨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식량사정이 너무도 열악해 떡은 물론 푸짐한 명절음식을 기대하기 힘들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까운 곳에 사는 친척들끼리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즐겁게 설을 쇠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없다. 식량사정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명절 때 친척들이 자기 집에 찾아올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북한에서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전통도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다. 1960년대부터 북한당국에서 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하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 역시 봉건잔재라면서 금지시키는 바람에 음력설이나 추석 때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많이 없어졌다. 성묘를 하더라도 절을 하는 것보다는 묵념으로 절을 대신하고 있다. 그나마 유교적인 풍습이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던 일부 가문(가정)에서 당국의 눈을 피해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풍습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남아 있을 정도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차례를 지내지 않고 그냥 명절음식을 해서 먹는 것으로 음력설을 보낸다. 물론 음력설에는 북한당국이 특별히 조직하는 정치행사가 없다. 그래서 주민들에게는 음력설이 모처럼 편히 쉴 수 있는 휴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북한은 2003년부터 음력설을 국가적인 명절로 정하고 크게 쇠고 있으나, 아직까지 음력설은 명색뿐이고 ‘그저 쉬는 날’ 정도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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