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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로 본 북한의 미술 / 박계리(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1998년 3월 3일자 로동신문에는 김정일이 백두산을 형상화한 미술작품을 지도하기 위해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때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계응태, 김국태, 김기남, 김용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당중앙위원회 당역사연구소장인 강석숭,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인 정하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리용철, 박송봉, 장성택과 당중앙위원회 책임자들이 동행했다. 함께 간 사람들의 면면을 통해 북한사회에서 ‘백두산 형상의 미술작품 지도’가 갖는 의미의 중요성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노동신문기사를 통해 이 날 김정일이, 백두의 기상이 반영된 미술작품을 더 많이 창작해 ‘주체 혈통의 대를 이어가는데 적극 기여’할 것을 요구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1) 김일성 사후에 백두산 재현문제가 ‘김일성’ 상징에서 ‘김정일' 상징으로 적극적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이어 2004년에 제작된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에서는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이라는 숫자가 등장함으로써 이러한 의도가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라는 작품은 크게 ‘여름편’과 ‘겨울편’의 2화폭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높이 각각 2m, 길이 15m로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 여름편’에는 119개의 봉우리,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 겨울편’에는 97개의 봉우리가 표현되어 두 병풍을 합치면, 216개의 봉우리들이 비반복적으로 묘사 되어 백두산 천지의 웅건하고 장중한 전경을 드러내고 있다.

백두산천지종합탐험대원들은 백두산 천지일대의 조사 측량 과정에서 상대 높이 20m이상이 되는 봉우리가 216개나 된다는 것을 확증하고 그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원도를 그렸다고 한다. 이에 기초하여 만수대창작사 조선화가들이 여러차례 현지답사를 진행하여 대형 병풍식 조선화 ‘백두산 천지의 216봉우리’를 창작했다고 하지만,2) 실질적으로 216은 김정일 생일 2월 16일에서 영감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김일성의 성지’ 백두산이라는 상징보다 ‘김정일’이 보다 부각되는 작품이라 하겠다.

북한에서는 이 작품을 선군시대의 또 하나의 기념비, 국보적 명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특히 작품 안에는 백두산 3대장군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상징하는 장군봉, 향도봉, 해발봉을 높이 묘사함으로써 백두산 3대 장군의 업적과 풍모를 재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김정숙은 김정일의 어머니로 그의 아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을 하는 과정에서 그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대두된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숙은 1917년에 태어나, 17살 때인 1935년 9월 항일유격대에 가입했으며, 18살 때인 1936년부터 김일성 부대에서 활동했다.4) 그녀는 항일유격투쟁의 와중이었던 1940년 23살의 나이로 김일성과 결혼하고, 2년 뒤 1942년 김정일을 낳았으며, 한국전쟁 직전이었던 1949년 9월 22일 31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이렇듯 김정숙의 짧은 생애는 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이라는 한국사의 격동기에 위치했다.

김정일의 부각과 함께 재현되기 시작한 김정숙 이미지는, 김일성 시대에는 ‘김일성의 충직한 친위전사’라는 이미지로 재현됐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 사후인 김정일시대에는 ‘김정일의 어머니’로 적극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했고 1998년부터는 선군시대의 ’군대의 어머니’라는 이미지로 변모됐다. 이와 같이 김정숙의 이미지는 북한 최고 권력자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부여되면서, 그 위상이 점점 더 강화돼 왔는데, 특히 ‘군대의 어머니’라는 최종 이미지는 선군정치와 관련된다 하겠다. 이와 더불어 김정숙은 장군이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 북한의 3대 장군은, 김일성장군, 김정일장군, 김정숙장군을 칭한다. 장군 호칭의 부여는 그녀의 위상이 얼마나 격상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4)

‘백두산천지의 216봉우리’에서처럼, 백두산이 백두산3대장군을 표상하면서 백두산이 선군시대를 재현하는 새로운 상징을 부여받고 있다.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이후 등장한 젊은 리더 김정은시대를 맞이해 백두산 관련 작품은 보다 광범위하게 제작되고 있다. 물론 김정일시대에도 그러했지만 백두산은 회화, 조각, 공예, 건축장식미술, 출판미술, 영화 및 무대미술, 산업미술, 서예 등 다양한 종류와 형태들로 구현되고 있다.5)

특히 백두3대장군이라는 명목 하에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을 모두 표상하는 백두산 이미지 제작이 많아졌다. 이는 ‘백두 혈통’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실지로 김광일, 홍철, 장은순이 함께 제작한 선전화 ‘백두의 혈통을 이어 주체의 혁명위업 끝까지 완성하리!’와 같이 김정은과 백두산, 또는 백두 혈통과 직접 연관시킨 글과 이미지들이 제작되고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6) 이는 젊은 지도자로 이어진 3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이미지라고 판단되며, 김정은시대에도 여전히 백두산이 지배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활발히 생산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주체미술에서는 아름다운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현상이지만 이는 사람의 주관적 정서를 통해서만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백두산이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이 이 산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비로서 아름다운 산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림을 볼 때, 또는 사람을 판단할 때도 어떤 사람은 이 그림이, 이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데 다른 누군가는 “안 예쁜데?” 하며 다른 그림, 다른 사람이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즉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기준 즉 미학관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주체미술에서는 백두산이라는 물성은 인간이 지닌 세계관과 철학을 통해서만 그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더불어 북한에서는 그 세계관과 철학이 주체사상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북한 사회에서 이러한 논의는 주체사상이라는 테두리를 더 명확히 하는 토대로만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백두산 작품들이 북한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 다른 사상을 지닌 곳으로 이동한다면, 그것이 재현해내는 의미는 여전히 동일한 파장을 낼 것인가? 어떠한 물건과 물질이 인간이 지닌 세계관과 미학을 통해 ‘아름다움’으로 발견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당연히 또 다른 시선의 역학이 작동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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