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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꿈꾸다,  통일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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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부터 ‘아, 이게 되겠다’고 생각한 포인트는 바로 세상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 그리고 진정성 두 가지입니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워낙 폐쇄적이다 보니까 학교를 어떻게 다니고 무엇을 배우는지, 시장에서는 어떤 물건을 사고파는지 등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매체도 없었는데, 그런 분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니까 신기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느 지역 출신인지,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언론을 통해 이야기 하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기 때문에 섭외가 힘들었습니다. 보통 고향을 강원도라고 말하면서 탈북 사실을 숨겨온 분들도 많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아픈 이야기보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한다’, ‘탈북 루트와 탈북과정의 어려움들, 이런 이질적인 이야기들을 미디어에 알려야 한다’며 그분들을 설득했습니다.

또 '왜소하고 굶주렸고 못 배웠다'는 ‘탈북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해 탈북하신 분들 중에서도 좀 더 호감이 가고 예쁘고 재능 있고 키도 크고 학력도 높은 분들 위주로 섭외를 했습니다. 이와함께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초반에는 볼거리 위주나 예능 위주의 내용을 일부러 많이 넣었습니다. 그래서 이 같은 기획 의도가 성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셨던 본부장께서 처음에 실향민 관련 프로그램을 제안하셨는데, 당시만 해도 ‘실향민이 주인공이 되는 프로그램이 과연 될까?’하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실향민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아이템’이라는 말씀에 공감하게 됐고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는데 제작하면서 접한 62년의 사연에 너무 가슴이 아렸습니다.
특히 1회 주인공은 정말 기가 막힌 스토리를 간직하신 분이었어요. 38선 왕래가 가능하던 시기에 함께 강화도로 내려왔다가 어머니와 누나가 고향에 묻어놓은 놋그릇을 가지러 간 사이 휴전선이 막혀버렸고 이후 두 번 다시 뵙지 못하게 됐어요. 불과 1.7km 앞이 고향인데 뵙지 못하니 10대에 헤어진 어머니 생각에 62년 동안 매일 밤 잘 때도 북쪽으로 창문을 열어놓고 주무신다는 그분이 철조망을 넘어다보며 ‘엄마’하고 눈물을 흘리실 때는 정말 다 같이 울었던 것 같아요. 이런 슬픈 이야기를 17회까지 끌어가면서 나름대로 사명감, 소명의식 같은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포맷도 주위에서 ‘잘 만들었다’, ‘의미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탈북자분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어요. 62년 전에 헤어진 분들도 이산가족이지만, 지금 남한에 내려오는 사람들, 즉 연세 많으신 부모님을 모셔오지 못하고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하는 사람들도 ‘현재진행형 이산가족’인 것입니다. 이분들의 사연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여성분은 영하 30도 날씨에 두만강을 팬티 한 장 입고 건너왔는데 중국 브로커에게 속아 인신매매를 당했고 중국의 나이 많은 장애인에게 팔려가서 매 맞고 살다가 겨우 도망쳐 왔다고 합니다.
꽃제비였던 한 청년은 현재 우리나라에 와서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엄마가 인신매매에 팔려갔대요. 우여곡절 끝에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를 데려가려면 돈을 내놓으라고 했고 중국 돈 1천 원(한화 30만 원)이 없어서 엄마를 두고 북한에 있는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다시 북한에 가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런 기가 막힌 사연들을 들으며, 실향민도 실향민이지만 이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먼저 알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프로그램이 완전히 달라지 게 된 계기였죠.
‘이만갑’ 프로그램에서 통일에 대한 경제적인 가치나 탈북과 북한인권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 혹은 국제적인 정세 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통일에 대해서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면 시청자들도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 프로그램에서는 통일에 대해 2주에 걸쳐 다룬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통일 뒤 애매해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출연자들은 ‘김일성 동상 2만5천 개는 어떻게 할 거냐, 아파트 30층 높이의 동상도 있다’며 김일성 동상을 화두로 삼았지요. 이 동상을 만들기 위해 북한 주민들에게 동을 계속 걷었는데 이것에 대한 뼈저린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조건 녹여서 악화된 경제사정을 극복하는 데 써야 한다는데 모두들 동감했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만약 통일이 된다면 어떤 점이 좋을까?’를 두고 이야기 했는데 답변 중 베스트는 통일열차를 타고 가족도 만나고 세계여행도 가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은채 대륙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현재는 사실상 우리나라가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지만, 통일이 되고 나면 우리는 통일열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파리로 갈 수도 있구요. 이런 여행을 하면 진짜 신나겠다. 며칠 걸릴까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만갑’ 프로그램은 반응도 좋고 시청률 잘 나오는 편이지만 정작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채널 A’가 언론사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미국 LA Times를 비롯해 영국 BBC, 로이터통신,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 등 외국의 유수 언론사들은 모두 ‘이만갑’ 프로그램을 조명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방송사 3군데에서 취재를 해갔을 정도입니다. 이는 우리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다는 외국에서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그 부분에 대해 관심이 없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만갑’을 하면서 무엇보다 제가 많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제작진 모두 탈북자들의 사연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현재 탈북자가 2만5천 명을 넘는 상황에서 ‘현재진행형 이산가족’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탈북해서 온 다섯 살짜리 꼬마 아이가 하나원을 거쳐 고아원으로 가는 것,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모정을 내려놓게 되는 사연들을 보며 정말 가장 중요한 가치, 즉 가족이라는 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돈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는 가족인데 가족을 못 만나고 가족들이 나 때문에 몰살당하는 일은 없어져야 합니다.

‘이만갑’에 출연하는 미녀들은 통일이 되어도 파리나 영국 같은 데는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온다고 합니다. 오로지 서울발 청진행, 문산행 KTX 기차를 타는 것, 서울에서 KTX 탈 때 껌을 씹다가 단물 빠질 때쯤 개성에 도착하는 것, 이게 소원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이것 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이런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 프로그램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마지막 가치까지 없어지는 나라가 북쪽에 있는 것이고, 정권 이데올로기 때문에 기본적인 가치가 버려지고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글.김영수 사진.나병필, 채널A'이제만나러갑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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