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그리고 사위인 아버지의 이야기가 한국 분들에게 한국어로 알려지게 된 점, 특별하게 생각해요. 영어로 14년 전에 책이 준비됐을 때, 바로 영화제작이나 한국어 번역 등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한국 내의 정치 변화, 경제 상황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출판이 보류됐어요. 그러다가 이 책을 따로 수업 교재로 사용하시던 한림대학교 노은미 교수님께서 출판사와 상의하고 번역을 맡아주셔서 이처럼 한국어로 발간될 수 있었어요. 세상 모든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뜻이 있다고 믿어요. 현재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인해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 있고, 제3국을 떠도는 탈북민에 대한 도움의 손길 역시 절실한데, 책이 이 시기에 출판된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이 책을 한 가족의 탈출기로 보지 말고, 보다 넓은 시각으로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외할머니는 전쟁 중 잃어버린 큰아들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수소문하시다 1991년 북에 계신 외삼촌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면서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당시 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책(할머니가 있는 풍경)으로 출판했는데 주류 언론에 소개되는 등 화제가 되다 보니 책에 실명으로 거론된 외삼촌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단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기서부터 두 번째 책인 ‘아들이 있는 풍경’의 이야기가 시작되죠. 저는 어떻게든 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북·중 국경지대인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머물며 할머니와 아버지, 탈북가이드와 함께 외삼촌 가족의 탈북을 도왔어요. 20여 년이 흐른 지금, 생전에 남북통일을 보고 싶다고 하시던 할머니는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셨지만, 외삼촌 가족들은 현재 한국에 정착해서 잘 살고 계세요. 외사촌인 애란 언니는 현재 북한인권 활동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고요.
책을 출판하기 전 ‘과연 미국의 독자들이 북한에 대해 알고 싶어할까?’라는 의문이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출간이 되자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았고 이후 미국 주류 미디어 인터뷰와 대학 및 기관 강연을 통해 이산가족의 고통과 탈북민들의 현실을 알릴 수 있었어요.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초청으로 이민법 관련 청문회에서 탈북민의 현실을 증언했고요. 그때만 해도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 책을 읽고도 북한의 현실을 믿을 수 없다고 했어요. 북한 주민의 삶은 철저히 장벽에 가려져 있었고 아시아에서 숨어지내는 탈북민들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너무 비극적이어서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요.
할머니와 관련된 두 작품은 이제 미국의 학교와 교육기관에서 교육자료 쓰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는데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불행하게도, 책을 처음 쓸 때보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더 나빠진 것 같지만, 그래도 저는 용기를 잃지 않고 북한 인권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계속해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꾸준한 강연활동을 통해 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북한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아직도 많은 이산가족들이 남과 북에 존재해 있어요. ‘아들이 있는 풍경’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 우리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세계인들이 할머니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은 이 책이 가족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많은 세계인들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 가족’인 한국인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현재 남한에 와 있는 탈북민들이 많은데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은 통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분들이 남한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원만하게 열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경험상 탈북민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유를 찾아온 인간영웅들입니다. 이런 분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북한인권에 대한 세계인들이 관심이 커져가고 있는 것을 느껴요.
남북한의 상황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할 수 있어요. 언제라도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인 통일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북한주민들은 굶주리거나 고통을 받고 있을 겁니다. 중국, 몽골 등에 숨어 지내고 있는 탈북민들은 여전히 송환의 공포 속에 살아갈 거고요. 그들을 도울 사람들은 우리입니다. 한 가족이, 한 사람이, 하나의 행동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할머니가 아들을 위해 그 험난한 여정을 보내신 것처럼요.
‘아들이 있는 풍경’을 출간한 후 이제 제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더라고요. 책뿐 만 아니라 연극 등을 통해 메시지가 더 널리 전달되기를 기대해요. 현재 ‘머치 라이크 유(Much Like You)’라는 1인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고 6월에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8월에는 영국 에딘버그에서 공연할 계획입니다. 미국 TV를 위한 데모작품도 제출했고요.
맨 처음 ‘할머니가 있는 풍경’이란 작품을 썼을 때는 북한에 계신 외삼촌 가족의 안전이 걱정돼 자괴감에 빠졌었지만 이번엔 달라요. 책 속 이야기가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남한은 물론 북한에도 전해져서 새로운 희망을 드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글 /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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