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으로도 더욱 가까워졌다. 다양한 공연과 시범 그리고 이란 젊은이와의 소통에 대통령이 직접 참여했다. ‘대장금’, ‘주몽’ 등 한국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을 보인 이란은 향후 한류의 거점 국가가 될 것이다. 방문 국가 전통을 존중한 대통령의 루싸리(이란의 머리두건)와 국기 색깔 의상 착용은 이란 국민의 깊은 관심과 긍정적 반응도 끌어냈다. 박 대통령은 이란을 방문한 첫 번째 비이슬람 국가 여성 정상이었으며 이란 언론은 이란 전통을 존중하는 박 대통령의 행보에 이례적인 관심과 찬사를 보냈다.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이란은 중동의 패권국가로 부상할 것이 자명하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석유 그리고 1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구리, 철광석, 아연 등 부존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수자원도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풍부하고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다. 인구도 8,000만 이상으로 거대한 시장이다. 터키와 이스라엘에 이어 중동 내 세 번째 군사대국으로 정규군 40만 그리고 공화국수비대 12만과 더불어 100만 이상의 예비군을 운용하고 있다. 전투기와 잠수함을 조립하여 배치하고 있으며 중장거리 미사일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와는 다소 불편한 정치·외교적 관계에 있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이 반미국가가 되고 1980년대 8년간 이라크와 전쟁을 펼치면서 이란은 북한과 군사적으로 가까워졌다. 여기에 2002년부터는 이란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우리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때문에 정상회담이 오랫동안 이뤄지지 못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이런 정치·외교적 거리를 크게 좁히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인 정상회담의 결과는 파격적이었다.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 문제와 관련해 중대한 발언을 내놓았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어떤 핵개발도 반대한다. 특히 한반도와 중동에서 위험한 무기, 핵무기가 없어지는 것이 우리의 기본원칙이다.” 유엔 등 국제사회와 핵 대치를 벌이던 국가의 정상의 발언이다. 북한과 전통적으로 군사적 그리고 전략적 우호관계를 유지해 온 이란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통일 원칙에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이란의 절대 권력자이자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의 면담도 의미가 있었다. 하메네이는 “테러와 지역의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이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한·이란 양국이 협력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양국 간의 협력을 강조했다. 이란의 대외정책 기조를 직접 관장하는 최고 통치권자의 입장이다. 1989년 5월 이란 대통령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했던 중동 패권국의 지도자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의 면담 효과는 이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이슬람권의 15%를 차지하는 약 2억 5,000만 시아파의 정신적 지도자다.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시아파가 집권하고 있다. 레바논의 최대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도 시아파다. 그리고 바레인 인구의 70%, 쿠웨이트 인구 40∼50%가 시아파다. 예멘 북부, 사우디 동부 등에도 시아파가 밀집 거주하고 있다. 이번 면담 자체가 중동 내 대북 압박 여론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이란과 시리아 그리고 헤즈볼라가 친북한 성향이 강한 국가 혹은 정파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이란과 서방의 핵협상 타결은 북한 정권에 ‘따끔한 일침’이다. 13년 만의 핵 협상타결로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이란은 핵무기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대화를 통해 핵 협상 타결과 개혁·개방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북한에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제 북한 핵개발은 서방과 대치하는 유일한 핵문제로 남았다. 이란 문제 해결로 미국 등 서방은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상황에 따라 북한 핵문제에 외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게 됐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심리적으로 위축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과 현재 가장 밀접한 군사적 관계를 가진 국가, 이란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물론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은 크게 다르다. 이란은 원자력발전을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 핵개발의 목표다.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포기하고 저농축 우라늄만 생산하겠다는 이란처럼 북한이 양보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이란이 보이는 약간의 자세변화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협상을 통해 국제사회와 공존의 길을 선택한 이란의 최고 지도부는 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지지하고, 핵확산방지조약(NPT) 실효성을 존중하고, 핵무기 개발이 절대 안보를 강화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 북한은 최대 우방도 잃고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다.
<사진.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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