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한국인이란 걸 잊지 마. 넌 항상 한국인 커뮤니티를 위해 일 해야 해.’
스티브 서 협의회장은 아홉 살 때 플로리다로 이민을 왔지만, 부모님은 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랐다. 이주민 전문 변호사인 서 협의회장은 7년간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국지역에서는 가장 젊은 나이에 17기 협의회장이 됐다.
마이애미협의회는 39명의 자문위원들로 구성, 차세대 육성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며 주류사회에 한반도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스티브 서 회장은 차세대를 대상으로 한 통일사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가끔 ‘꼼수’를 쓰기도 한다고 말한다.
“사실 차세대들은 통일에 큰 관심이 없으니까 ‘프로페셔널 통일 컨퍼런스’를 할 때 ‘통일’이라는 말을 살짝 빼요. 선입견을 가지면 참여율이 떨어지니까요. 차세대들에게는 ‘전문가를 초빙해 함께 네트워킹하는 코리언 아메리칸 모임’이라고 홍보한 뒤에 자연스럽게 통일 이야기를 꺼내요. 실제로 폭스뉴스의 유일한 한인 해설자를 연사로 초청하는 등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어요. 그리고 곧바로 통일강의를 진행했더니 차세대들도 통일 문제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주니어 (통일) 컨퍼런스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했더니 참여율이나 호응도가 매우 높았어요.”
스티브 서 협의회장은 ‘통일’이 1세대와 2세대 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장기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그는 세대 간 갈등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솔직히 1세대와 2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주제가 별로 없어요. 1세대는 한국식, 2세대는 미국식 가치를 추구하니까요. 하지만 통일을 주제로 하면 이야기가 돼요. 물론 2세대는 인권 때문에, 1세대는 이산가족이나 외교안보적 이슈 때문에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등 그 이유는 다르지만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거든요. 이처럼 통일이 1~2세대를 연결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티브 서 회장은 2018년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 미국 플로리다주 첫 하원의원에 도전해 성공함으로써 한반도 통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치가가 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받은 건 1948년 이스라엘을 되찾았을 때에요. 현재 연방 상원의원이 20명이고 연방 하원의원이 19명이나 되죠. 반면, 제가 사는 지역은 한인 이민 역사 113년간 단 한 번도 한국인이 상·하원의원에 당선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통일이 되면 한인동포 사회도 그 힘을 받아서 미국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위치로 올라설 수 있다고 봐요. 한국인들은 충분한 능력이 있으니까요.”
2000년도에 유학차 미국에 갔다가 정착하여 현재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정용일 뉴욕협의회 간사. 14기부터 활동을 시작, ‘이번이 네 번째 해외지역회의 참석’이라는 정용일 간사는 행사에 참여한 자문위원들의 열정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말한다. 조국을 떠난 지 오래됐는데 강한 애국심을 갖고 통일과 한국 이미지 개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번 해외지역회의에서는 평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대규모 해외지역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은 조국이 우리 해외동포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고,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란 걸 느꼈어요. 그래서 우리가 좀 더 한국을 자랑하고 한반도 통일에 대해 많이 알려야겠다는 의무감, 사명감이 더 강해지는 걸 느꼈어요.”
뉴욕협의회는 현재 171명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 해외지역협의회가 그러하듯이 뉴욕협의회 역시 포커스는 차세대, 다음 세대로의 전환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청년세대의 통일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올해 대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유튜브 공모전이다. ‘내가 생각하는 통일’을 주제로 UCC 제작물을 응모하도록 한 것으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공모전을 통해 접수된 결과물들을 취합해 통일교육교재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기존 교재들로 통일에 대해 가르치면 큰 흥미를 못 느끼기 때문에 너희들이 직접 찾아서 공부한 뒤에 UCC를 만들어보라고 했죠. 동영상을 만들려면 공부를 해야 하고 공부하다 보면 아이들 시각으로 남과 북 통일을 바라보게 될 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영상을 다시 교육에 활용하고요.”
정용일 간사는 통일과 북한인권 개선 문제가 남북한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 뒤에는 미일중러라는 4대 강대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해외자문위원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주 국가에서 외교관보다 섬세한 접근을 통해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해외자문위원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문위원들 역시 각자 삶의 터전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만큼, 이처럼 정부가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서 해외자문위원들을 설득력 있게 이해시킬 때 자문위원들 또한 제 역할을 잘 해내서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제 포틀랜드 지회장은 현재 미연방정부 에너지성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5기와 11~14기 그리고 17기 등 11년 넘게 민주평통 자문위원을 지냈다. 김민제 지회장은 6년 전에 왔을 때보다 올해 해외지역회의가 더 체계적으로 완성된 것 같고, 자문위원들과 한국 정부 간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김 지회장은 20대에 한국에서 공무원을 지낸 경력이 있다 보니 ‘대통령과의 통일대화’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다고 한다.
포틀랜드지회는 총 19명의 자문위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령대의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성돼 있다. 17기에는 주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육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을, 세계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역사교육을 기본으로 해서 왜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야 하고, 그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 무엇인지를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포틀랜드지회 자문위원들은 비용을 갹출해 교사들을 초청하고 별도의 강의시간을 만들어 150여 명의 학생들을 3개월간 교육시켰다.
“학생들에게 한국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국인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도 으뜸이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려줬어요. 그리고 왜 우리가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죠.”
포틀랜드 지회는 크게 여성과 차세대에 맞춘 컨퍼런스를 실시하고 있는데, 두 가지 사업 모두 젊은 여성자문위원들이 주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중에서도 여성컨퍼런스를 강조하는 이유는 ‘엄마들을 제대로 교육시켜야 아이들이 올바로 자란다’는 신념 때문이다.
“젊은 엄마들이 변해야 그 나라가 발전할 수 있어요. 어린 여자아이들, 젊은 여성을 올바르게 교육시키는 것이야말로 그 나라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길인 거죠. 통일이든 정치든 다 사람이 하는 일인 거니까요.”
김민제 지회장은 앞으로 임기동안에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전문가 초청강연을 자주 열 계획이라고 했다. 또한 현재 생존해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대상으로 모임을 만들고 함께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행사를 하면 주류사회 정치인들이 항상 서포터로 참가하곤 한다며, 그들에게 통일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는 행사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박정인 자문위원은 샌버나디노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며 클래식 피아노 석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재원이다. 사실 그 전만 해도 ‘통일은 돼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만 해왔는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제가 일찍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통일이나 한국 역사에 대해 잘 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히 설명해줄 수 없었는데, 이번 해외지역회의 프로그램이 알차서 북한과 통일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국내외에 2만 명의 자문위원들이 계시다고 듣긴 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아울러 이민 1세대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사라지고 진짜 조국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박정인 자문위원은 그중에서도 토크콘서트를 인상 깊게 봤다고 한다. 탈북민들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없었는데, 토크콘서트 통해 직접 이야기를 듣고 나니 현재 북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음악프로그램인 콘서트를 최고로 꼽았다.
“저는 ‘문화의 힘’을 믿거든요. 크로스오버 팝페라같은 통일음악공연을 감상하는 건 강의를 몇 시간 듣는 것보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오렌지·샌디에고협의회는 현재 140여 명의 자문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17기에는 차세대들이 많이 영입돼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현재 차세대분과에서는 차세대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며 특히 청년 네트워킹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전문직에 많이 종사하고 있는 1세대 자문위원들이 유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해주면서 유대감을 강화하고 있다.
박정인 자문위원은 “1세대는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시대였지만 지금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벽이 있다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수록 통일을 돌파구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또한 젊은 세대가 통일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통일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를 설명해주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피아노를 전공하는 만큼 박정인 자문위원은 예술 혹은 문화라는 매개체로 통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한류의 파급력이 대단하잖아요. 주변에 아시아계나 흑인들도 많은데 오히려 저보다 그들이 케이팝을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특히 10~20대는 확실히 한류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이렇게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과도 문화 교류가 활발한데, 북쪽에 있는 우리 민족과도 문화로 연결되면 얼마나 감동적이고 의미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북한주민들도 한류를 같이 느끼고 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글.기자희 / 사진.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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