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 : ‘청소년들이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웨이브(WAVE; World Association of Volunteering Elites)’는 용인외대부고가 중심이 돼서 한영외고, 한성과학고, 세종과학고, 민족사관학교 등 10여 개 학교 학생들이 함께하는 연합동아리로, 2011년 결성됐어요. 통일과 북한인권 관련 소식을 전하는 웨이브신문을 만들어서 학교나 관련기관, 해외 북한인권 관련 단체 등에 배포하고 있는데 이번 달에 ‘4주년 특별판’인 23호를 발행했어요.
e-행복한통일 : 신문 발행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고 들었어요.
준혁 : 매년 북한인권 릴레이 사진전시회를 열고, 관련 분야 포럼을 개최해서 친구들과 함께 통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요. 탈북학생들을 돕기 위해 ‘남한 말 책’과 ‘역사유적지 앱’도 만들었고요. 웨이브신문 취재를 하다 알게 된 건데, 탈북학생들이 남한 은어(隱語)의 뜻을 잘 몰라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년 전 뜻풀이 책자를 만들었고 올해 개정판을 냈어요.
또 남북한간 역사교과 내용이 달라 많이 어려워한단 얘길 듣고 지하철 노선도로 역사유적지들을 알려주는 앱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고요.
이런 전국 연합동아리 차원의 활동이 아닌 개별 프로젝트도 진행해요. 용인외대부고는 ‘날개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는데, ‘날개 프로젝트’란 탈북대안학교 한 곳을 지정해 학생들이 원하는 바를 조사한 뒤, 1년간 그 소원을 이뤄주는 활동이에요. 작더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재현 : 탈북대안학교 아이들과 함께 아쿠아리움 견학을 가거나 피자, 치킨을 사 들고 찾아가기도 했고 1년째 되던 날엔 크리스마스 파티도 열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아픈 기억들을 많이 갖고 있어서 아직까지 악몽을 꾸기도 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처음엔 우릴 보고 서먹서먹해 했지만 가까워지게 되자 나중에는 가지 말라며 아쉬워하더라고요.
준혁 : 웨이브 활동을 진짜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맘 먹은 건 중2학년, 미국 모의의원대회에 갔을 때에요. 외국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60여 명 중 6명 만 북한이 ‘3대 세습 체제’라는 걸 알고 있었고, 한반도 통일을 찬성하는 사람도 2명밖에 안 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나중에 일본 청년포럼에서 설문조사를 했을 때도 한국의 통일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래서 일단 사람들에게 최대한 널리 알려야겠단 생각을 했고, 덕분에 웨이브 활동을 꾸준히 해오게 된 것 같아요.
재현 : 저는 정치나 국제정세에 관심이 많아서 모의국회에 참가해 토론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어떤 학생이 기아와 빈곤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면서 5초를 센 다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 사이 지구 어딘가에서 또 한 명의 어린이가 기아로 죽었다’고요. 그 말이 너무 인상 깊어서 기아나 난민들을 위한 동아리활동을 했었어요. 그러다 북한인권활동을 하는 웨이브를 알게 됐죠. ‘세계평화 청소년 리더십 포럼’에 참가했을 때 패널 중 한 분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도 국민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듯,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쌓여서 결국에는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한 게 인상 깊었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방법을 찾다가 웨이브에 들어오게 됐어요.
승원 : 중학교 2학년 때 교내 북한인권동아리에서 활동을 하긴 했지만 좀 막연한 생각을 갖는데 그쳤던 것 같아요. ‘북한이탈 청소년 지원방안’을 주제로 소논문을 썼을 정도로 탈북민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웨이브에 꼭 가입하고 싶었고, 실제로 활동하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특히 세계평화포럼에 갔을 때, 외국인들은 북한실상에 대해 정말 잘 모른단 걸 느꼈고, 웨이브 신문을 통해서 해외에도 자세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죠. 포럼 도중 스페인 친구를 사귀게 됐는데 처음에는 축구이야기로 친해졌다가 나중엔 제가 북한과 통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어요. 비록 개인적인 작은 활동이지만 그렇게라도 통일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윤찬 : 저도 평소 북한이탈주민과 통일에 대해 관심이 많아 웨이브가 흥미롭게 다가왔고, 중학교 때부터 웨이브 활동을 했어요. 청소년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거든요. 올해 한 초등학교에서 사진전을 열었는데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다 보니 북한인권 문제 등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좋았어요.
재현 : ‘솔직히 요즘엔 신문도 잘 안 읽는다는데 고등학생이 만든 신문을 누가 볼까?’란 의구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NGO에서 근무하시는 고모도 웨이브신문을 알고 있다고 하시고 인터뷰를 위해 만난 사람들이 ‘신문 잘 읽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셔서 고마웠어요.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파급력 있는 매체란 자부심이 생겼죠.
준혁 : 처음에는 신문을 지인들이나 친구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지만 점차 영역을 넓혀 초·중·고등학교와 관련 기관, 탈북대안학교, 폴란드·미국 워싱턴의 북한자유연합, LA Link, 한슈나이더 등에 배포하게 됐어요. 이번에 발행된 4주년 특별호는 외국 독자층을 더욱 넓히기 위해 영어판도 함께 발간했어요. 최근엔 독자들이 카드뉴스를 선호한다고 해서 SNS에 새로운 방식의 뉴스들도 게재해보려 하고요.
윤찬 : 웨이브 활동을 하면서 북한 관련 이슈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주변에 그런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 보람이 있었어요. 신문을 나눠주면 친구들도 관심있게 봐주거든요. 연령대가 낮을수록, 특히 10대들이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가장 못 느끼지만 우리 청소년들의 인식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친구들이 이 이슈에 대해서 알고 조금씩 전해져서 파급 효과가 커진다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승원 : 보다 주도적인 활동을 하고 싶은데 학생이다 보니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재원 문제가 가장 크고, 시험기간이 되면 일단 다 중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또 통일문제 보다는 어떤 문제가 시험에 나올지 고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 진짜 아쉬워요.
준혁 : 확실히 탈북민지원이나 북한인권 활동은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는 걸 많이 느껴요. 그리고 현재 웨이브신문은 우리들이 장학금을 기부하거나 지인의 후원을 통해 제작되는데, 굳이 후원자를 찾아 나서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길 바래요. 또 언젠가는 남한 학생들만이 아니라 북한 친구들과도 신문을 같이 만들고 싶은데, 그게 어려운 일이라면 우선 탈북학생들과 함께하면 좋겠어요.
재현 : 일본이 과거 우리민족에게 잘못했다고 해서 현재 일본인 모두가 나쁜 건 아닌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나쁘다는 편견을 갖기보다는 이산가족의 아픔, 인권유린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통일대박’이란 말도 맞는 것 같아요. 가족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만남의 기쁨을, 기업에게는 새로운 인재와 자원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국가적으로는 국방비를 아껴 복지에 쓸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분단상황은 정상이 아니잖아요. 원래대로 돌아가야죠.
준혁 : 저도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옛날처럼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을 해야 한다’는 접근보다는 통일을 통해 얼마나 우리 사회가 발전할 것인가 이야기하고, 비용이 좀 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 말하는 편이 더욱 와 닿을 테니까요. 통일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혜택을 받는 것도 결국 지금의 청소년들의 몫이니까 청소년들이야말로 통일 이야기를 많이 하고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찬 : 토론대회에 나가보면 북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어린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딱딱한 주제로만 접근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저는 북한주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 친구들이 안다면 통일의 중요성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더 알리고 싶고요. 그리고 통일 이후 남북한 간 문화적 갈등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남한사람들이 북한이야기를 보다 많이 알게 된다면 통일 후 그런 마찰이 줄어들 거라 생각해요.
승원 : 통일을 위해서는 관심과 참여가 중요해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도 국민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잖아요. 동독 사람들이 ‘그냥 여기 있겠다’고 했다면 아직도 동독은 그대로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식을 먼저 바꿔야 해요.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렇게 반의반 만이라도 인식을 변화시킨다면 통일은 어렵지 않다고 봐요. 웨이브신문을 제작하는 활동은 그래서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글·사진.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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