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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경협 거점도시 단둥의 활기

물자와 사람 몰리고 개발·투자 열기
‘호시무역구’ 설립, 양국 교역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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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0년 만에 중국 단둥에서 부활한 북·중 자유무역구(호시무역구) 개소식 장면.

북한의 대외무역 중에서 중국과의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80%에 이른다. 이 가운데 70%가 중국 단둥에서 이뤄진다. 북·중 경협의 거점도시이자 대(對)중국 교역의 최일선에 위치한 중국 단둥시의 현실과 미래를 현장에서 진단했다.

단둥 = 김유림
채널A 사회부 기자

비 오는 월요일 오전. 중국 단둥시의 압록강철교 위로 ‘평북’ 번호판을 단 화물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간다. 강 건너, 북한 신의주에서 오는 차들이다. 낡은 다리 위에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삐걱삐걱 쇠 부딪치는 불안한 소리가 나지만 무거운 짐을 실은 차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게 5분 사이에 열 대도 넘는 화물차가 다리를 건넜다.

다리 아래에서는 얼굴을 꽁꽁 싸맨 중국인 장사꾼이 “남한 아가씨, 배 타고 북한 구경하라”며 성가시게 따라붙는다. 여권도 필요 없고, 북한 군인과 사진도 찍을 수 있단다. 매대마다 북한 담배나 화폐, 간단한 먹을거리들이 가득히 쌓여 있다. 배를 탄 사람들은 압록강 사이 두 육지를 평온한 듯 오갔다. 다리 건너편 북한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졌다.

1943년 4월 개통된 압록강철교 바로 옆에는 같은 모양의 철교가 절반은 끊어진 채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참전을 막기 위해 미군이 끊은 압록강단교다. 끊어진 다리 위에 서서 압록강철교를 바라봤다. 오랜 세월이 흐른 흔적이 낡은 철교에 그대로 남았다. 압록강철교는 폭이 좁아 차 한 대밖에 지나갈 수 없고, 도로 곳곳이 훼손돼 있다. 그 일대 사업가들에 따르면 안전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

세관 나서는 자동차들로 도로 마비

하지만 이 다리는 쉴 수 없다. 현재 북한과 중국을 잇는 ‘최일선’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외무역 중에서 대(對)중국 무역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그중 70%의 거래가 단둥을 통해 이뤄진다.

70여 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압록강철교는 요즘 더 바빠졌다. 그만큼 북한 경제가 ‘전환 체제’를 맞았다는 의미다. 한 북한 출신 화교 사업가는 “장성택 처형 이후 황금평 개발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북 사업이 ‘올 스톱’됐다가 최근 들어 다시 재개되는 분위기”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제 단둥 곳곳에서 그 훈풍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압록강철교에서 도보로 5분 남짓 떨어진 단둥 세관은 오전부터 오후 내내 수없이 많은 북한 사업가, 노동자들로 북적였다. 북한에서 온 차량들도 쉴 새 없이 세관을 통과했다. 때로는 세관을 나서는 차들이 뒤엉켜 왕복 8차선 도로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하기도 했다.

단둥 세관에는 가슴 한쪽에 김일성, 김정일 배지를 단 채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오갔다. 북한 사람임이 분명한 상당수는 배지도 달지 않은 채 거리를 오갔다. 한 상인은 “배지를 달면 하도 놀리고 모욕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북한 사람들이 알아서 달지 않는다”고 시큰둥하게 답했다.

압록강철교부터 단둥 세관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북한 물건을 판다는 백화점이 길게 늘어서 있다. 주요 고객은 중국인과 조선족, 그리고 한국 관광객이다. 이곳에서는 북한 우표나 지폐 등 기념품뿐 아니라 화장품, 고추장, 담배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가공식품들을 판매한다. 북한에서 만든 아동 한복을 꼼꼼히 살펴봤다. 박음질도 디자인도, 그 특유의 감성을 살리면서 매끄럽게 마감돼 있었다. “원래 조선 사람이 솜씨가 좋지 않냐”며 제품을 권하는 중국 장사꾼의 얼굴에서 확신이 엿보였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차마다 뭘 그렇게 가득 싣고 오는 걸까· 취재진은 세관을 나선 차를 따라가봤다. 20분쯤 갔을까, 단둥 외곽 지역의 하차장에 도착했다. 차마다 까맣거나 회색빛의 가루들을 내려놓았다. 북한 운전사에게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말을 피하더니 어렵사리 “공업용 원자재”라고 흘리듯 답했다. 건축용으로 쓰기 위해 북한 북부지역에서 원자재를 들여온 것이다.

한참을 짐을 내리는 차들의 동태를 살폈다. 눈길을 끌었던 건 상당수의 차에 짐이 절반도 안 실려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화물칸을 아예 비운 채 들어온 차들도 있었다. 이런 차들도 오후에 북한으로 다시 들어갈 때에는 칸마다 가득가득 짐을 실었다. 아직까지 북·중 무역의 불균형이 심하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반대로, 북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중국 제품은 무엇일까· 바로 전기 관련 용품이었다.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 장비나 태양열 손전등, 휴대용 전기발전기 등이다. 여전히 북한의 전력 상황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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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월 15일 중국 단둥에서 열린 ‘제4회 북·중 경제무역관광박람회’의 북한 전시관 모습. 천장에는 인공기가 걸려 있다.

공장이나 가계마다 별도의 발전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최근에는 가뭄이 심해 수풍댐, 운봉댐의 수위가 더욱 낮아졌고 자연히 발전량도 적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겨울철을 맞아 태양열로 온수를 데울 수 있는 장비의 수요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북한에 들어가려고 짐을 싣는 차들 중 중국 내륙지방에서 재배한 사과나 귤, 바나나 등 과일을 싣는 경우도 많았다. 그만큼 북한에서도 고급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낮 시간, 단둥의 최대 도매시장에 가도 북한 상인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북한 상인들은 일제 필기구나 옷가지, 난방기구들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더 좋은 제품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가격을 흥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대량 구매를 해서 북한에서 판매하고자 하는 중간상인들이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떠나는 차나 인편에 제품들을 실어 보내려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취재진이 다가가면 긴장된 미소만을 남긴 채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늘 조심하는 태도가 온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이 도매상가 상인들은 한결같이 “최근 북한 사람들의 출입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미 북한 안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가공제품은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기존 중국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단순 판매하는 형식을 탈피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땅에 공장이 들어설 수 있었던 건 중국의 자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나 설비, 기술 등은 대부분 중국에서 제공해주고 북한의 노동력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것. 이렇게 생산하는 제품들을 중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남한 물건과 돈도 북에 전달

그렇다면 중국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김 소장의 설명이다.

“기계를 북한으로 들여보내면 그 원료는 누가 줍니까· 바로 중국이 줍니다. 일정 가격으로 특정 원료를 북한에 팔면서 그 대금은 달러로 지급받게 되면 중국 사업가들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북한 정치에 대한 리스크는 줄이면서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오랜 기간 종속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탁월한 전략이죠.”

중국과 북한의 육로 교역을 중개하는 상인에게 “남한 물건도 보낼 수 있냐”고 물었더니 “못 주고받는 물건이 없다”고 에두른 답이 돌아왔다. 사실 수시로 중국과 북한 국경을 오가는 운전사들의 중요한 용돈벌이 중 하나가 남한 물건과 돈을 북한에 전달하는 일이다. 북한에서 미리 예약을 받아 단둥 사업가들을 통해 제품을 구해 다시 가지고 들어가는 것. 이들은 한국 커피믹스나 고추장 등 식료품뿐 아니라 화장품, 신발, 내의 등이 인기라고 귀띔했다.

10월 15일, 단둥과 북한 간 무역개혁의 제2막이 열렸다. 바로 단둥의 개발구(開發區)에서 호시무역구(互市貿易區) 개소식이 열린 것.

이 무역구 안에서는 양국 국경지역 반경 20km 이내에 거주하는 북한, 중국 시민은 누구나 하루 8000위안(약 143만 원) 이하의 상품을 관세 없이 사고팔 수 있다. 국경 무역의 일종인 ‘호시’는 한반도와 국경을 맞댄 단둥이 가진 지리적 특징 때문에 구한말까지 유지됐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중단됐다가 이번에 100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이날 대대적으로 열린 행사에는 김영남 주선양 북한총영사관 부영사까지 참석했다. 취재진이 행사 한 달 뒤 호시무역구를 찾았다. 호시무역구가 자리한 ‘개발구’는 단둥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비교적 외곽 지역이다. 차를 타고 한참 달리다 보니 북한과 중국 사이를 잇는 ‘중·조(中朝)압록강대교’가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에서 대교로 진입할 수 있는 도로에 올라봤다. 시원하게 뚫린 아치형 대교의 위용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중국 자본으로 다리 건설은 이미 마쳤으나 아직 북한 쪽 다리 연결 부분 개발이 덜 된 상태다. 내년 쯤 개통이 되면 트럭 등을 이용한 육로 교역의 중심이 낡은 압록강철교에서 압록강대교로 옮겨지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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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내년 개통을 앞둔 중·조압록강대교. 북·중교역의 중심이 압록강철교에서 압록강대교로 옮겨질 전망이다.

무역구의 개발에 앞서 단둥시는 이미 시내의 중심을 옮겨뒀다. 단둥시청과 세관은 물론이고 주요 학교, 복지시설 등을 모두 개발구로 옮겨놓은 것. 이 지역에는 단둥 시내보다 더 화려한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이 들어섰다. 아직 입주하지 않은 곳이 더 많지만 조만간 이곳이 동북 3성 경제에 큰 몫을 하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호시무역구가 들어설 자리 역시 고층 빌딩들이 텅텅 비어 있는 형상이다. 인력사무소나 기술개발소 역시 문이 닫혀 있었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 핑크빛 미래를 예상하는 선전물들이 나붙어 있었다. 상인들은 “내년 4월이면 가게가 모두 들어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내년 4월이 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북·중 무역의 중심이 더욱 집약된 형태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었다.

단둥 경제에서 한국은 철저히 배제

호시무역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운의 땅’ 황금평이 있다. 두 차례나 개발 드라이브가 걸렸으나 아직 허허벌판과 다름없었다. 황금평 앞에는 언제 내놓아진 것인지도 모르는 ‘개발 투자를 환영한다’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취재진이 1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광저우에서 왔는데 개발을 해볼까 싶어 한번 둘러보러 왔다”는 중국인 사업가였다. 여전히 정치적 불안함에 투자를 나설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중국 사업가들에게 북한, 그리고 황금평은 매력적이라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고속철도 조기 개통으로 이어졌다. 최근 단둥과 선양을 잇는 고속열차가 개통을 했다. 기존에는 차나 기차로 3~5시간 넘게 걸렸던 거리를 이제 1시간 1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다. 단둥에서 평양까지, 매일 기차가 다니는 만큼 선양에서 평양까지 하루 생활권이 됐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만큼 중국과 북한의 거리는 한층 더 가까워진 셈이다.

일요일 오후, 선양을 떠나 단둥을 향하는 고속열차에는 사업을 마친 사람들이 가득 탔다. 원자재를 떼어와 단둥에서 가공을 해 북한에 판매한다는 여성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사업 환경이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6박 7일, 짧은 기간이지만 단둥의 경제를 들여다보며 한편으로 매우 불안했다. 어쩌면 북한 문제의 가장 중요한 주체이자 화자여야 할 대한민국이 철저히 배제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 치밀하게 북한 경제에 개입해가는 중국의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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