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도 돌이켜보면 남북관계에 많은 일이 있었다.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 통일 비전을 둘러싼 공감대를 확산하면서 관련 제도를 하나씩 갖춰나갔음은 물론이고, 대외적으로도 소위 통일 친화적인 외교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기회만 있으면 위기를 일상화해 한반도 문제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북한을 상대로 안정적인 국면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또한 동북아 세력 전환기를 맞이해 각국이 국가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일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지금까지 우리 측에 대한 비방과 위협을 일삼던 북한을 상대로 의미 있는 타결을 이끌어낸 것은 작지 않은 성과였다.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원칙 있는 대북정책 기조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초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창의적인 대북정책을 내걸었고,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남북한 사이에 결국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입장을 시종일관 강조해왔다. 지난 8·25 합의 과정에서도 우리 정부는 북한의 확실한 입장 표명과 재발 방지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고, 결국 이러한 원칙이 관철됐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지혜롭고 효율적인 통일외교를 들 수 있다. 물론 통일외교의 효과는 단숨에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처럼 우리보다 훨씬 외교 자산을 많이 확보한 나라들을 상대로 외교를 전개하는 경우, 우리의 국가 이익이 그들의 국가 이익에 지배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올 한 해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 확산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사안 자체의 고유성과 순수성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미·중 간 세력관계 차원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북한의 변화 필요성과 통일에 대한 공감대만큼은 확실하게 인지한 상황에서 국가 이익의 연대가 이뤄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통일 의지와 정책 개발에는 채찍질이 필요하다. 지난여름의 사례를 참고해보면, ‘확성기’라는 우리가 지닌 매우 고전적인 소프트파워(Soft Power)에 북한이 그렇게까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점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에도 오랫동안 잘 버텨온다고 생각했던 북한이었는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의외의 취약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우리가 고민하고 수립해야 할 정책 개발의 윤곽은 더욱 자명해진다. 확성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우리 체제의 우월함과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소프트파워 수단을 적극 개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창의성, 역동성, 개방성 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접촉을 정교하게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박인휘
미국 노스웨스턴대 정치학 박사. 통일부·외교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 통일준비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자문위원, 이화여대 국제교류처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