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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 북한 IN

북한 IN

북한의 명품녀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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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로데오 거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 있는 쇼핑지구로 의류 브랜드나 맞춤 의류 상점이 모여 있는 곳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각 나라마다 의류 매장이 있는 거리를 로데오 거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평양에도 로데오 거리가 있을까. 명칭으로 보면 없지만, 기능으로 보면 로데오 거리와 맞먹는 거리가 있긴 하다. 평양시 모란봉구역 안상택 거리가 바로 그렇다.

안상택은 북한에 큰돈을 기부한 일본 조총련 기업가이다. 그가 얼마를 북에 보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북한은 1980년대 모란봉구역 북새동에 새로 건설된 아파트 단지를 안상택 거리라고 명명했다. 안상택 거리는 개선문에서 만수대 김일성 동상으로 올라가는 길의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안상택 거리는 북한판 로데오 거리라 할 수 있다. 그곳이 그렇게 된 이유는 안상택 거리에 해외와 교류가 가능한 북송 재일교포들이 많이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일명 ‘재포’라고 불리는 이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 북한의 첨단 유행을 선도했다.

재포들이 일본 친척에게서 송금받은 돈을 빨아내기 위해서 안상택 거리에는 외화상점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외화를 쓰는 사람들 대다수는 재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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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시아클럽역도대회 참가 선수단이 본 평양. 옥류관에서 회식을 마친 한국선수단이 바라본 평양의 야경.

물론 지금은 화교들이나 해외에 나가 돈을 벌어온 북한 사람들이 더 많은 외화를 가지고 있다. 반면 북한에서 재포들의 위상은 최근 들어 급격히 하락했다. 그들에게 돈을 보내주는 일본 친척들이 나이 들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상택 거리는 여전히 외화를 사용하는 상점과 고급 식당 등이 몰려 있는 거리이다. 밀도로 따졌을 때 평양시에서 고급 외화상점과 외화식당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다. 외화상점과 외화식당은 각각 10여 개나 있다. 물론 일반 식당은 더 많다.

외화상점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북한판 ‘명품녀’들이 몰려든다. 명품녀는 명품을 좋아하는 과소비녀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북한에선 명품이 뭔지 잘 모른다. 아는 브랜드는 매우 한정돼 있고, 브랜드 이미지는 유행에 크게 좌우된다.

북한 명품녀들에겐 명품 브랜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산국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중국산이 저질이라는 이미지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에는 일본산 제품이 북한에서 최고 인기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엔 한국산 물품이 일본산보다 더 인기가 있다가 요즘엔 유럽산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유럽산은 품질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구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유럽의 옷이나 화장품, 물품을 쓰는 사람들이 돋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평양에선 유럽산 옷과 상품을 입거나 들고 다니는 여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들은 해외의 패션은 전혀 모른다. 다만 명품상점에서 파는 유럽 옷은 가짜가 없다는 믿음은 팽배해 있다. 실제로 북한의 장마당 산업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직은 유럽산 짝퉁을 만들어내는 데까지는 역부족이다. 물론 북한에서 파는 유럽 제품도 알고 보면 중국산 짝퉁이 많지만 평양의 사람들에겐 그 정도가 정품의 기준이다. 북한산 짝퉁이 중국산 짝퉁을 아직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브랜드보다 생산국이 중요… 최근엔 유럽산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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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평양에 나타난 미니스커트녀.

북한의 명품상점은 모든 상품이 정품이라고 선전한다. 중국 백화점에서 명품이라며 파는 제품의 짝퉁은 보통 1, 2년 뒤 평양에 도착한다. 질은 중국 백화점에서 파는 것보다 못하지만 가격은 중국 가격에 못지않다. 그래도 그런 상품이라도 있다는 것은 부의 기준을 가늠하는 징표이다.

그렇다고 안상택 거리의 외화상점이 북적이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가보면 한산하다. 명품의 특성이 그렇듯이 몇 개만 팔아도 본전은 건지는 것이다.

요즘 북한에는 반지와 귀걸이도 유행하고 있다. 사회주의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엄격히 통제해왔지만 이제는 북한 당국도 단속에 지친 기색이다.

북한판 명품녀들은 늘 외화상점에 들락거리며 상품을 구경하고 돈 있는 남자를 탐색한다. 1990년대만 해도 돈 있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장 많이 하는 선물이 외화상점에서 파는 비싼 쇠가죽 구두였다. 한국에선 구두를 선물하면 여자가 달아난다고 기피하지만 북한에선 반대로 가장 비싼 선물이 구두였다. 하지만 이제는 구두 정도는 먹히지 않는다. 이제 북한에선 비싼 옷과 가방이 선물의 대표 상품이 됐다.

돈 있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명품녀들은 성형은 물론, 각종 비싼 북한판 명품으로 무장하는 것은 필수. 그러나 북한에선 월급으로 달러를 벌 수 있는 곳은 없다.

결국 북한판 명품녀들이 택하는 길은 매음과 사기이다. 어떻게 보면 북한판 명품녀들은 고급 매춘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당국의 통제가 아무리 심하다 한들 은밀한 곳에서 진행되는 매음은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를 통해 분명히 입증되는 진실도 있다. 아무리 사회주의 공산주의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았다고 해도, 이뻐지고 돋보이려는 여성의 욕망은 이념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북한판 명품녀들이 몸소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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