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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 진단

진단 / 북한 인권 개선 운동과 통일 준비

북한 인권 개선 운동과 통일 준비
한반도 미래를 준비하는 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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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월 27일 전국대학생북한인권협의회 소속 대학생들이 ‘북한 인권 개선과 통일을 위한 대학생 북한 인권주간’을 선포하고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은 이제 북한 지역에 대한 과거 청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한국 또는 통일한국 정부가 아닌 유엔과 국제사회 주도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은 유엔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엔은 2003년 이후 유엔 인권이사회, 2005년 이후 유엔총회에서 매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특히 유엔 인권이사회는 2012년과 2013년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립을 포함하는 북한 인권 결의안을 표결 절차 없이 합의로 통과시켜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에 대한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보수와 진보 세력 간에 찬반 논쟁이 뜨겁지만, 국제사회는 이미 찬반 투표가 의미 없을 만큼 공통된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를 공식 문건으로 채택하고,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내용이 포함된 권고안을 제출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한국 등 60개국이 제안국으로 참여한 이 결의안은 11월 18일 제69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찬성 111표, 반대 19표라는 압도적 차이로 통과됐다.

2014년도 결의안은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고 인권 침해의 최종적 책임자인 김정은을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역대 가장 강력한 결의안이었음에도,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과 쿠바, 시리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19개 국가에 불과했다. 또한 유엔은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 서울에 북한 인권 현장 사무소를 설립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 상황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북한 인권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서 유엔이 중심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인권 가해자 김정은,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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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자 북한 전 지역에서 이에 반발하는 집회가 열렸다.

북한은 지난 10여 년간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활동과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에 대해 거부와 무시, 회피의 태도만 보였을 뿐 강력하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가 포함된 결의안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이고 강경하게 반발하는 대응을 했다.

북한 인권 결의안이 논의되고 있던 뉴욕에서 9월 23일 한·미·일 3국이 참여한 ‘북한 인권 고위급 회의’가 최초로 열렸는데, 북한 측이 참여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북한 인권 고위급 회의는 대북 인권 결의안과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등을 주로 논의하는 자리여서 북한 측은 그러한 활동을 제지하고자 했을 것이다.

또 북한 측은 15년 만에 외무상을 대표단장으로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10월 7일 유엔본부에서 처음으로 기자들과 외교관을 대상으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북한 측 참여자들은 북한의 인권 상황이 열악하지 않으며,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가 북한 인권의 장애 요소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북한은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항목을 삭제해준다면 그동안 거부했던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의 방북을 허용하고 활동에 협조하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이러한 북한의 주장을 반영해서 쿠바 등 친북 국가들이 주도해 김정은을 포함한 인권 가해자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를 삭제한 별도의 인권 결의안을 제3위원회에 상정했으나, 대다수 국가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북한은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이 통과돼도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는 유엔 안보리의 결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현재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어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만 국제사회가 합의된 의견으로 결의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언제까지나 북한을 두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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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1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통일과 북한이탈주민의 역할’ 세미나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탈북 과정에서의 인권 유린 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권고 내용을 담은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이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채택된 것에 공식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과 관련해 핵실험 등 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면서 반발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대변인 성명에서 “인민 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제도를 전복하려는 목적으로 미국이 주도한 이번 결의의 강압 통과를 전면 배격한다”면서 “반공화국 ‘인권 결의’의 채택으로 초래되는 모든 후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결의 채택의 주모자, 하수인들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대조선 적대행위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핵 시험(실험)을 더는 자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조건에서 미국의 무력 간섭, 무력 침공 책동에 대처한 우리의 전쟁 억제력은 무제한 강화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어 평양에서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을 규탄하는 10만 군중집회를 개최하는 등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은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권고가 포함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은 유엔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에 국한되지 않고, 실제적인 개선조치와 노력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반발도 향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이 즉각적으로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어렵겠지만,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요구 때문에 향후 북한은 유엔 인권 레짐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국제사회와 유엔의 인권 개선 노력이 강화될수록 외교적 반발의 수위는 높이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정치범수용소 축소, 구금시설 개선 등 부분적인 인권 개선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유엔 현장 사무소, 2015년 서울에서 공식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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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권 가해자인 북한 최고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북한 인권 결의안이 11월 18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찬성 111, 반대 19, 기권 55’의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됐다. 스크린 속 인물은 최명남 북한 외무성 부국장.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도 국제사회의 합의된 의견이므로 북한에 강력한 압력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는 중국과 러시아가 포함된 유엔 안보리의 결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추진할 수는 없지만,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한 찬성 국가가 증가하고 반대 국가가 감소할수록 중국과 러시아의 비토권 행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향후 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중심적인 역할은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과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에 의해 서울에 설립되는 ‘현장 사무소’가 담당하게 될 것이다. 북한 인권을 위한 현장 사무소는 2015년 초 공식 출범을 앞두고 현재 유엔 선발대가 도착해 업무 준비를 하고 있다. 유엔 현장 사무소는 5, 6명의 유엔 직원이 근무하게 되며, 북한 인권 관련 공식 자료(사건과 인물) 수집과 DB 구축, 유엔 특별보고관 활동 지원, 국내외 민간단체 등과의 네트워크 구축 등의 기능을 한다. 그중에서도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대상 북한 인권 사건 정보 수집이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될 전망이다.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은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인권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제소를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 인권 개선을 넘어 북한 지역의 과거 청산에 대한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즉 유엔은 국제사법체계를 동원해 북한 지역에 대한 과거 청산 작업을 개시했다. 북한에 대한 과거 청산은 통일 이후 한반도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이미 유엔 주도로 그 논의는 물론이고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에 대한 사법적 처벌과 북한 지역에 대한 과거 청산 작업이 북한 인권 개선의 한 부분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북한 정권의 운명에 대한 결정이 유엔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정권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우리 민족의 통일에 대한 준비를 의미하는 것이며, 과거 불행했던 사건들에 대한 진상 규명과 사법적 청산은 통일 이후의 상황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는 현재와 과거 북한에서 발생한 부끄러웠던 인권 피해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규명함은 물론 희생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구제, 그리고 유사한 희생자 발생 예방이라는 목적을 아울러 갖고 있다.

따라서 북한 인권 운동은 과거 청산 운동이자 진실 규명 운동이며, 희생자의 명예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북한 인권 운동은 향후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민족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미래지향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 인권 운동은 우리 민족 구성원의 미래와 통합적 삶을 설계하고 준비하는 건설적 통일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향후 북한 인권 정책은 ‘남북한 사회 통합을 위한 준비 차원의 정책’으로 인식해야 한다.

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은 이제 인권 개선을 위한 운동적 차원을 넘어서 북한 지역에 대한 과거 청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북한 지역에 대한 과거 청산이 한국 또는 통일한국 정부가 아닌 유엔과 국제사회 주도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인권 가해자의 운명은 한반도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돼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엔과 국제사회 중심의 북한 인권 개선 활동에 대해서 한국 사회가 전략적 판단과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북한 지역에 대한 과거 청산은 향후 통일 한반도의 사회 통합은 물론이고, 북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과업이기 때문이다. 북한 지역에 대한 우선적이고 당사자적 입장을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photo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 통일부 정책평가위원·정책자문위원,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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