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호 > 한·미포럼
한·미포럼 / 한반도 통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도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주최하고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가 주관한 2014년 한미 평화통일 포럼이 지난 10월 13일 미국의 워싱턴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성대하게 개최됐다.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도전’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북한 인권 문제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된 가운데, 미국 수도 한가운데서 양국 관계자들이 한국의 통일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한미 평화통일 포럼 본 행사 시작에 앞서 황원균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우리에겐 꿈이 하나 있다. 남북이 하나 되어 발전하는 것”이라며 “모두 함께 갑시다”라고 외쳤다. 김기철 미주 부의장은 “이 자리를 한반도 평화통일의 꿈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계기로 삼아달라”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는 “이번 행사는 개최 시기와 주제, 주최자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한 자리”라고 평가했다.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기조연설에서 한미 간 69년간의 혈맹 관계를 강조하고, 북한을 변화시켜 세계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데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나아갈 것을 제안했다. 다음은 현 수석부의장의 기조연설 내용 중 일부다.
“한미 두 나라는 1945년 이후 69년간 혈맹의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미래의 꿈이 없었던 가난한 나라, 안보 불안에 시달리던 한국이 50여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기적을 이룬 것은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국민 모두가 뭉친 결과이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일관되게 지원해준 미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국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미국 젊은이 등 5만4000명이 6·25전쟁에서 생명을 바쳤습니다.
지금 한미 양국에 가장 큰 도전은 여전히 북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24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통일에 모든 국가와 세계가 나서달라고 호소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접근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남한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도발을 반복해 왔습니다. 박 대통령은 도발에는 강력한 응징을 하되 대화에는 대화로 남북 간의 문제를 풀겠다는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대북 문제를 처리해왔습니다. 도발-협상-보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습니다. 남북 간의 신뢰 없이는 백 번의 약속과 합의도 물거품이 된다는 경험을 통해 당장 합의할 수 있는 사안부터 풀어가 신뢰를 쌓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독일을 방문해 드레스덴 평화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자유와 풍요를 희망했던 동독 주민들의 열망이 독일 통일을 이뤘듯이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풍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남북통일을 이루는 핵심 동력이 될 것입니다. 인류 역사가 보여준 정의의 물결이 북한 땅에만 예외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자유와 인권에 기초한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미국 정부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핵 없는, 통일된 한반도는 동북아 평화와 발전, 번영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굳건한 한미동맹의 터전 위해서 세계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데 우리가 미국과 손잡고 소임을 다해나갈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행사는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대주제에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두루 담았다.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발표를 위해 사전에 충실히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다. 미 국방부에서 일했던 반 잭슨 신미국안보센터 연구원이나 한반도 통일경제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윌리엄 브라운 미 국가정보국(NSA) 동아시아 국가정보조정관 선임보좌관 등 새로운 발표자들을 만난 것도 소득이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이 진행한 이날 세미나는 1세션에서 ‘북한의 변화 가능성과 한미 공조’, 2세션에서 ‘동북아 평화구조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라는 소주제로 나눠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한용섭 국방대학원 교수, 데이비드 맥스웰 조지타운대 전략안보연구소 부소장이 각 세션의 사회를 맡았다. 발표자 및 토론자의 주요 발언 내용을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은 다양하다. 미국은 방코델타아시아(BDA) 사례처럼 북한 정권에 실질적인 고통을 줄 수 있는 대북 금융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자적 관여(Multilateral Engagement) 정책도 필요하다. 모든 북한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 바로 통일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반 잭슨 신미국안보센터 연구원
“북한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국제사회가 취했던 접근법들, 고립을 꾀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은 실패했다. 차별화되는 네 가지 접근 방법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 인민군과 한미 양국 군이 군사적 협력을 하는 방법, 기술을 활용한 체제 전복 활동, 국제사회가 망명 북한 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법, 국민보호책임(R2P) 등에 따른 인도적 개입 방법 등이다.”
박승제 대륙전략연구소 해외협력위원장
“식량과 연료의 부족은 북한 정부의 통치에 가장 큰 어려움을 주면서 주민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을 30% 정도라도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선임연구원
“강력한 제재 조치가 이란을 비핵화 협상의 테이블로 돌아오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은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지지하면서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북한 정권에 압력을 가하도록 중국을 압박하고 한반도 방위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한국이 대일관계를 개선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안보통일연구부장
“한반도 통일은 현상 변경이다. 분단 70년이 되는 내년을 한반도가 통일을 향해 전환하는 원년으로 만드는 것이 소망이다. 통일코리아는 한반도는 물론 주변국들에게 모두 이익이다. 한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분단의 폐해와 통일의 혜택을 알려야 한다. 통일 후에도 한국은 미국과 전략동맹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강화해야 한다.”
윌리엄 브라운 미국 국가안전보장국 동아시아 국가정보조정관 선임보좌관
“경제통일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남한의 재정적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통일 후 몇 년간 북한에 별도의 통화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초기엔 남북 간 인구 이동을 제한한다. 북한의 해외 원조 사용을 세심히 조율하고 시장 메커니즘이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의 주인의식과 자립에 관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박근혜정부의 대외정책은 ‘신뢰외교(Trustpolitik)’로 알려져 있으며 크게 세 가지 층위로 구성된다. 한반도 수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수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글로벌 수준의 ‘신뢰외교’ 및 ‘중견국 외교’가 그것이다. 신뢰 외교의 바탕이 되는 ‘신뢰 구축 외교’는 적대세력을 공존세력으로 전환시키는 데 머무른다는 차원에서 궁극적인 한반도 통일에 대한 포괄적이고 정교한 이론화가 필요하다.”
수미 테리 컬럼비아대 워더헤드 동아시아 선임연구원
“미국과 한국은 이해관계를 가진 역내 각국과 협력하여 의도적이고 집중적인 외교적 노력을 통해 통일에 대비한 준비를 가속화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을 설득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로 남북한이 통일되면 현재의 비무장지대 이북에는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수도 있다. 통일 한국에서 미군을 아예 철수시키겠다는 약속까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일·평화·대박 함성 울려 퍼진 만찬장
한미 양국 참석자들은 세미나에 이어 열린 만찬에서도 통일에 대한 염원을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2014년 7월 30일 저녁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 인근 하얏트 호텔 연회장에서 ‘미주 한인 풀뿌리 활동 콘퍼런스(KAGC)’가 열린 이후 수백여 명의 한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지난 11월 4일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6·25전쟁 참전용사 출신 찰스 랭걸 연방 하원의원(민주·뉴욕)과 2007년 하원 위안부 결의안 채택의 주인공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의원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사회를 맡은 마이클 권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 총무는 ‘통일’을 세 번 외치는 것으로 만찬을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황원균 워싱턴협의회장은 인사말을 마친 뒤 ‘평화’와 ‘통일’을 함께 외치자고 제의했다.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다음 번에는 평양 대동강변에 있는 냉면집으로 여러분들을 모시겠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현 회장 역시 ‘통일’과 ‘대박’을 외치는 건배사를 제의했다. 성찬을 앞에 두고 ‘통일’과 ‘평화’, ‘대박’을 외치면서 참가자들이 이번 행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자리였다.
미국 측 참석자들도 의미 깊은 기념사를 해 눈길을 모았다. 도널드 만줄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한반도 북쪽의 형제들이 굶주리는 현실에서 여러분도 자유롭지 않다”고 말해 감동을 줬다.
랭걸 의원도 건배사를 하면서 “하나의 한국, 하나의 국가, 민족, 운명(One Korea, One Country, People, Destiny)”라고 외쳤다. 혼다 의원은 유창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라고 연달아 외쳐 미국의 대표 지한파 의원임을 증명했다.
이날 만찬장에는 한미 양국 6·25 참전용사와 교포 해군 장병들이 군복을 입고 참석했다. 식사가 시작되면서 두 명의 한미 양국 미군악대 출신 남성 연주자들이 관악기로 ‘고향의 봄’, ‘아리랑’, ‘희망의 나라로’ 등 한국 가곡을 연주하면서 테이블별로 흥겨운 대화의 한마당이 펼쳐졌다. 만찬은 참석자 전원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것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