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호 > 남북관계 대토론회
남북관계 대토론회 / 민주주의 체제 우월성 적극 활용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이후 선언적 의미의 통일이 아닌 본격적인 통일준비가 시작됐다.
이를 위해 2015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하고, 어떻게 북한을 변화시키고 통일 기반을 구축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제13차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대토론회가 열렸다.
2014년 11월 14일과 15일 양일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코리아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남북관계 전문가 대토론회가 충북 제천 베니키아호텔청풍에서 열렸다. ‘2015년 한반도 정세 전망과 우리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대토론회에는 학계, 언론계, 정당 등의 남북관계 전문가 35명이 참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이날 대토론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적극 활용해 자신감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주도해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박찬봉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개회사에서 “통일준비라는 국가적 과제를 목전에 두고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운동사에서 뼈아픈 역사로 기록되고 있는 신간회(1927년 2월 좌우익 세력이 연합해 만든 대표적인 항일운동 단체) 운동의 실패를 기억해야 한다”면서 “신간회 운동을 분열로 이끈 이념적 갈등에 대해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결론이 났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평통과 함께 이번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코리아정책연구원의 유호열 원장은 개회사에서 “2015년은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 그중에서도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하는 행사라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중국도 남한 중심의 통일을 지지할 것”
기조연설에서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북한의 정세로 보나 중국과 북한의 관계로 보나 민족 통일을 이룰 절호의 기회가 도래했다. 통일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라며 북한 정권의 속성을 4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개혁·개방을 원치 않는다. 개혁·개방을 하면 자유화의 바람이 불고, 민주화 의식이 형성돼 정권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남한에 떠넘기기 위해 대화와 교류에 응하는 척 제스처만 취할 뿐이다. 둘째, 북한 정권이 존속하는 한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북한 정권은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북관계의 긴장을 통해서만 정권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넷째, 그들은 민족 통일도 원치 않는다. 적화통일이 된다 해도 김씨 정권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 정권은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붕괴돼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빈곤과 억압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통일이다. 합의에 의한 통일과 흡수통일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합의에 의해 통일된 적은 없다. 흡수통일을 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하나는 북한 정권의 붕괴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역으로 보고 포기하지 못하는 중국이 남한 중심의 통일을 지지하는 것이다. 지금 바야흐로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질 때를 맞이했다.”
이어진 토론은 1세션 ‘어떻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와 2세션 ‘어떻게 통일 기반을 구축할 것인가’로 나뉘어 진행됐다.
1세션 : 어떻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1세션은 양병기 청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고 박영호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의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어떻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박 선임연구위원은 독재(권위주의) 국가의 민주화의 조건, 북한 민주화의 억제 및 장애 요인, 북한 민주화를 추동하기 위한 전략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현재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장화가 시장경제라는 제도적 차원으로 발전해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것이 곧 민주화의 제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최고지도자의 몰락이나 교체가 민주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보다는 시장경제화를 통해 북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도록 권위의 분산, 사적 재산권, 경쟁, 자유와 권리, 법과 제도에 의한 보호 등 사적 영역에 대한 인식을 증대시켜야 한다.”
토론에서 강승규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2015년 남북관계를 전망해보면 경제와 인권 문제로 위기에 처한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전쟁 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북한 체제에 상당한 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비한 전략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살 만해야 민주화가 된다. 지금 북한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기회”라면서 “지금 북한은 우리의 도움 없이 경제가 호전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우리가 주도하는 평화통일로 이끌려면 우리가 북한 경제를 지원하고 개입하고 접촉해야 한다. 이것이 장기적인 통일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도 “국가가 배급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사상 통제가 약화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법에 의한 지배가 강조돼 중학교 교과서에서도 형법을 다룰 만큼 법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면서 북한을 변화시킬 전략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가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를 들어 북한 방송과 신문을 자유롭게 보게 하자. 지금은 북한 연구를 하는 전문가들조차 접하기 어렵다. 또 대북 접촉 지원 창구를 지금처럼 정부로 일원화하지 말고 풀어줘서 우리 사회가 가진 무한한 힘에 맡겨야 한다”면서 남북관계에서 생각의 전환을 요구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박근혜정부가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2015년에도 남북관계는 이산가족 상봉 한 번 한 걸로 끝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고, 권오국 민주평통 상임위원회 간사는 “북한 주민들이 북한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남한 체제로 편입될 것인가 선택할 수 있도록 북한 주민들에게 더 많은 외부 정보가 유입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는 중국에 있는 20만 명가량의 탈북자들을 대한민국 정부가 보호할 능력이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고,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주민 접촉을 확대하고 교류·협력이 활발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기보다 기존에 중단된 사업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남북관계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것을 제안했다.
2세션 : 어떻게 통일 기반을 구축할 것인가
2세션은 최민자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사회로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발제를 했다. 임을출 실장은 “북한의 변화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는 입장”이라고 밝힌 뒤 현 정부의 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추진 과제, 박근혜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북한의 평가, 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정책의 대전환 필요성 등을 설명하며 흥미로운 토론을 이끌어냈다.
특히 북한을 변화시키는 방안으로서 민간 기업들이 좀 더 자유롭게 대북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정부 차원의 경협사업을 더 과감하게 추진하며, 북한의 방송과 출판물을 전면 개방하고,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고 내정간섭을 최소화함으로써 북한 정권이 우리의 통일준비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가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대북 투자에서 개인의 자유보다 오히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정부 차원의 대북 경협 확대와 군사적 긴장 완화는 비대칭적 상호주의 측면에서 동의한다”고 밝혔다. 김중호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협상을 통해 이란의 핵 포기를 얻어낼 경우 북한, 중국, 러시아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며 한반도 정세에서 주변국 관계와 국제 환경에 대한 고려를 요구했다. 또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발제자의 민간 차원의 대북사업 확대가 추후 책임 소재를 놓고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과 북한 언론 출판의 개방도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이윤식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는 각종 지표를 보면 북한이 당장 망할 것 같은데 붕괴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한다”면서 “그것은 루마니아 사례와 비교했을 때 북한은 어릴 때부터 우상화 교육을 통해 주민들에 대한 통제 역량이 더 뛰어나고, 핵무기를 갖고 있으며, 위기가 왔을 때 후원세력(중국, 러시아)이 있다는 것”이라고 현실을 분석했다.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20년간 경험적으로 보면 오히려 교류·협력이 증대되는 기간 동안 북한의 군사적 또는 비군사적 위협이 꾸준히 증대됐다”면서 “북한의 취약한 외교 부문을 공략해서 주변국과 비정부기구,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들을 활용한 한반도 평화외교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윤영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변화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주고 탈북자들을 따뜻하게 관리해 작은 변화에서 큰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과 함께 북한 고위층에 대해서는 강하게 압박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의 통일정책이 흡수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에 대해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보선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갖는 전략적 모호성이 오히려 대북관계에 유연성 있게 작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하고 “현 시점에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대북 인도적 지원을 ‘프로세스’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통일 기반 구축에 대한 임을출 실장의 발제 중 방법론에 대해 다양한 찬반 의견이 오간 가운데 사회를 맡은 최민자 교수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미시적, 거시적 차원에서 다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남북한 당사자 관계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동북아 구도 자체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두만강 하구 쪽을 열어서 동해로 출로를 만드는 것은 중국도 러시아도 원하는 바이고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여는 길”이라고 토론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