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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말하다 | Today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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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분 식량을 준비하는 북한의 ‘김장전투’
이애란 원장(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아침저녁 코끝을 스치는 매운 바람에 너도 나도 두툼한 옷을 입고 나서는 가을의 끝자락, 초겨울의 문턱이다. 이제 곧 푸른색의 모든 채소들이 자취를 감추고 벌거벗은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을 것이다.
사계절이 분명한 한반도에서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지혜로 김치가 개발되었고 김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하고 발효를 잘 시켜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에, 자칫 김장이 잘못되면 겨울 내내 맛없는 밥상을 마주해야 한다. 이 때문에 김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김치를 담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은 남이나 북,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남한은 비닐하우스 기술이 발전해 눈 속의 빨간 딸기가 엄동설한을 녹이는 상황이어서 김장을 많이 하지도 않고, 또 김치산업이 발달하여 언제든지 마켓에서 김치를 사먹을 수 있기 때문에 김장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반면 북한은 아직도 김장이 반년 분 식량을 준비하는 중요한 연례행사이고 김치마저 없으면 그야말로 겨울내내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김장철을 전투기간으로 설정해 ‘김장전투’로 명명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휘발유를 비롯한 연유와 자동차 등 운송설비를 미리 준비하고 휴가기간을 아꼈다가 김장철에 사용한다.

김장철에 얼마나 좋은 배추와 무를 많이 가져오는가가 그 집안 가장의 능력과 수완을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하고 김장용 양념인 고추와 마늘, 그리고 사용하는 젓갈의 종류와 양이 어떤가에 따라 계층과 신분이 갈리기도 한다.

겨울에도 신선채소가 시장을 채우는 남한과 달리 북한엔 가을이 아니면 신선채소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겨울철 북한주민의 밥상은 김치를 얼마나 다양하게
올려놓느냐에 따라 상차림의 순위가 매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북한주민들은 김장철에 상당히 다양한 김치를 담그게 된다.
남한에선 배추김치 한 가지만 담그지만 북한주민들은 통김치,
써래기김치, 채김치, 갓김치, 명태식혜, 깍두기, 양배추김치 등
다양한 김치를 담가 겨울철 상차림을 준비한다.

이러한 현상은 북쪽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왜냐하면 북쪽으로
갈수록 겨울이 길어지고 겨울에 먹을 수 있는 부식물의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철에 김장을 많이 담그지 못하여 김치가 일찍 떨어진 집들에겐 옆집이나 이웃, 친구들이 가져다주는 김치가 정말이지 생명을 나누어주는 것만큼이나 고마운 것이다.

북한에선 겨울철 도시락 반찬 1위가 김치이고, 김칫국물이 가방에 쏟아져서 버스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난처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누구나 다 겪는 일이기도 하다. 북한은 김치를 담을 때 아직까지 재래식 방법을 쓰기 때문에 우거지를 덮고 김치국물을 넉넉히 해 붓는다. 그래서 김치를 건진 다음 김칫국물이 남으면 그것을 퍼다가 국수국물도 만들고 따끈한 밥에 부어 김치말이도 해먹는데, 이것이 정말 별미이다.
남한에선 젓갈이 산업화되어 멸치액젓이나 까나리액젓을 사용해서 김장을 하기 때문에 집집마다 김치의 맛이 엇비슷하지만 북한은 각 가정마다 사용하는 젓갈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김치맛도 다양하다. 그래서 김장철에 서로 양념을 교환해서 배추에 비벼먹는 재미도 사실은 쏠쏠하다. 그럴 때면 그 집 주부의 손맛을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주부의 손맛이 아닌 젓갈의 맛이다. 어떤 재료를 젓갈로 사용했느냐가 맛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은 현재 김장하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고 김치 맛에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역시 젓갈의 양이다. 젓갈을 많이 사용하는 남한 김치는 익히지 않고 그냥 양념을 비벼서 먹는 비빔김치가 되었고, 젓갈을 많이 사용하지 못하는 북한 김치는 익히지 않으면 맛이 없어서 꼭 익혀야 먹을 수 있는 김치로, 전통적인 김치의 맛이 많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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