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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꿈꾸다 | 좌충우돌 남한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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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쟁이’로 오해하지 마세요!

북한이탈주민 A씨에게 남한에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A씨는 “아궁이에 불 때서 밥을 안 해도 되고, 빨래도 기계에 넣으니 얼마나 신사적이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아파트에 살았다는 A씨. 어떻게 아파트에서 장작으로 불을 땔 수 있었을까? 새로 건설되는 아파트는 좀 다르지만 예전의 북한 아파트는 굴뚝이 일자로 연결돼 있고, 석탄이나 장작, 김치 같은 걸 보관하는 개인 창고가 집밖에 나란히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창고에 땅굴을 파서 돼지도 키우기도 한다고.
“지방에서 아파트는 제일 방법 없는 사람이 살아. 한 방에서 8명도 사는데 뭘.”
평양이야 사정이 다르겠지만 북한에는 이런 옛날 아파트들이 많다. 땅집(개인주택), 하모니카집 (다세대주택), 독채(독집)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북한 주민들이 무엇보다 싫어하는 주택은 바로 고층아파트다. 북한이탈주민 A씨는 대뜸 “고층아파트가 좋은 기네?”하고 묻는다. 북한에서는 전력난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높은 데 사는 사람은 불쌍하지. 내가 아는 인민배우는 15층에 사는데, 거기까지 자전거를 지고 왔다갔다해. 얼마나 불쌍해?”

남한에서는 배우라는 직업이 나름 선망의 대상인데, 북한에서는 사정이 좀 달랐다.
“북한에서 배우는 평배우, 공훈배우, 인민배우가 있는데, 그다지 인기직업이 아니야. 영화출연료도 직접 내야하고 필름비도 자기가 부담하거든? 특히 평민배우는 피뜩 나왔다가 없어진다고 해서 ‘피뜩배우’라고 해. 하하하.”
아마 남한에서 ‘반짝스타’를 북한에서는 ‘피뜩배우’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남한의 ‘사생팬(스타의 사생활까지 따라다니는 열성 팬)’도 이상하게 보이기는 마찬가지.
“북한에서 팬이라는 건 없어. 평양에서는 배우가 옆을 지나쳐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거든?”
그러자 20대 초반의 B씨는 “저는 2PM 좋아해요. 북한에서도 좋아하는 연예인은 달력을 걸어놓고 보기도 하는데 개인 숭망을 못하게 하니까 티를 못내는 것도 있어요. 하지만 지방 장마당 같은 데서는 배우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막 따라다니기는 해요.”
남한에서는 뭐니뭐니해도 국영수 과목이 최고다. 세 가지 중 한 과목이라도 뒤처지면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렵기 때문. 하지만 북한 산간지역에서는 수학과 물리, 화학 등 기초과목 교사들이 비교적 대우를 못 받는다고 한다. 8년 전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전직 수학교사 C씨는 “담임이 아니니까 배급을 안줘서 힘들었어요. 내 다니던 학교는 기술학교라서 수학, 물리, 화학처럼 바닥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아무도 학급을 못 맡았거든요.”

그렇다면 이 학교의 핵심과목은 뭐였을까? 바로 약초과, 림업과, 농산과, 목재가공과, 공업과 등이다. C씨는 자유롭고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남한 학생들을 부러워했다.

“북한에는 토끼 기르기 같은 꼬마과제가 있으니까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어요. 게다가 우리 학교 다닐 때는 혁명역사, 당 정책, 주체사상 이런 거 얼마나 많이 했어? 수학만 공부하고 싶은데 자꾸 암송내기 하라고 하니까, 그래도 황장엽이 넘어오면서부터인가, 그게 마사(없어)졌어.”

남한에서는 수학선생님이 훨씬 잘나간다며, 수학을 가르쳐보는 건 어떠냐고 귀띔해줬더니 C씨는 “여기 수학은 내가 배워주던 수준에서는 너무 높아. 아직 억양도 안 고쳐져서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라며 말끝을 흐렸다.

현재 40대 후반인 전직 수학교사 C씨는 복지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젊었을 때부터 숙련돼온’ 남한 사람들 사이에서 뒤늦게 전문 기술을 배워 취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은 희망이다.

“나는 성격이 좀 쭐라 가지고 사진 같은 것도 잘 안 찍었거든? 그런데 우리 애는 좀 남해. 저번에 무슨 강연을 들으러 함께 갔는데 우리 아들이 그걸 동영상으로 찍었더라고. 핸드폰에 어느새 싹 잡아 였더라고?”
여기서 ‘쭐라다’는 말은 ‘착하고 숫기가 없다’는 뜻이고 ‘아들이 남하다’는 ‘똑똑한 아이’라는 뜻이다.
젊은 북한이탈여성에게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뭐니뭐니해도 옷차림이다. 민소매, 미니스커트, 핫팬츠 등을 보고 많이 놀라워한다. 그런 차림으로 밖에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걸 신기하게 생각한다. D씨는 처음 옷을 사러 기관원과 함께 갔던 날을 떠올렸다.

“남한에 오면 옷이 필요하잖아요. 단체복을 계속 입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처음 대형 할인마트에 갔는데 핫팬츠를 권해주는 거예요.”

D씨는 일단 탈의실에 들어가서 입어보긴 했는데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북한에서는 집안에서도 무릎바지나 팔부바지 이상 올라가는 옷을 안 입어 봤던 터였다. 더욱이 함께 간 기관원이 총각이었다고.

“아직 안됐어? 아직 안됐어? 계속 밖에서는 부르고 있지, 저는 안 나오지 그러니까, 그 사람이 괜찮다고, 남한에서는 그렇게 다들 입는다고 그러더라고요.”

일단은 입고 나왔지만 D씨는 계속 손으로 바짓단을 내리면서 앞은 가방으로, 뒤는 쇼핑백으로 가리면서 겨우 할인매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재미있다. “웬걸요 며칠 만에 금방 적응되더라고요. 하하하.”
북한에서는 곳곳에 규찰대가 있어서 짧은 치마나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못 입게 하고 신발도 끌신(슬리퍼)은 단속한다. D씨는 찐빠바지(청바지) 단속, 두발 단속을 떠올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런 사회분위기 때문인지 드라마나 영화같은 대중문화도 ‘교양’적 관점으로 보곤 한다. 북한에서는 TV가 체제 선전 도구로 많이 이용된다. “또 나온다. 15분 끄라!” 이 말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 15분 분량의 ‘동지의 노래’가 듣기 싫으니 TV를 끄라는 뜻이다. 왜 싫으냐고 물어봤더니 “그 사람(김일성, 김정일) 이름은 듣고 싶지도 않아. 우리에게 거짓말만 한 사람이라서….”라고 말하고는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전직 수학교사 C씨는 한국에서 다녀본 여행 중에 바다여행이 가장 인상 깊다.

“산골에 살다보니 한국에 와서 바다 여행을 처음 가봤어요. 공부시간에 배운 그대로더라고요. 배가 들어올 때 두 번째 배는 요만하고 세 번째 배는 요만하고 네 번째 배는 안 보이길래, 역시 우리가 사는 지구는 둥글구나 하며 웃었지요. 하하하.”

63빌딩 역시 신기하긴 마찬가지. C씨는 “얼마나 희한한지 땅에 차가 이만하게 보이는 거야”라고 감탄했다. 북한에도 청진 같은 곳에는 고층 건물이 있었지만 거길 올라가 볼 일은 없었다고.

서울의 빌딩은 한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을 일제히 내뿜는다. 불이 꺼지지 않은 도시, 서울생활이 피로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C씨는 “밤에 밖을 내다보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고 말한다. 두 시건, 세 시건 밤 새 끊임없이 차가 달리는 것을 보고 “여긴 참 부지런도 하다. 저 사람들은 뭘 하길래 저렇게 바쁜가?”하고 중얼거리곤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국가가 지정해 준 일만 할 수 있는데, 쌀 반 kg값을 월급으로 주면서 직장에 안 나가면 무직자라고 추방당한다. “남한에서는 일감이 있고, 더 많이 일하면 더 벌 수 있는 자유가 있잖아요. 정식으로 취업을 하지 않고 알바를 해도 먹고는 살 수 있고 말이에요.”

북한에서는 해만 지만 사람 인적이 끊긴다. 전기 공급이 힘들다보니 평양에서도 10시만 되면 사방이 캄캄해 질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자전거라도 타고 지나갈라치면 ‘강도 맞추기’ 십상이라고.

어느 날 영등포를 걷던 C씨는 건물 뒤에 뭔가 찌그러져 있는 게 있어 한참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달이었다. 가로등마저 꺼진 북한의 달은 휘영청 밝은데, 서울의 달은 화려한 야경과 반짝반짝 빛을 내는 건물들 사이에서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작았다. C씨는 “그 많은 전기 모아서 북한에 조금만 갖다 주면 참 좋을 텐데”라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 9~10호 '좌충우돌 남한적응기'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행복이 넘치는 교회'(탈북민들과 함께하는 교회)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글.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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