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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꿈꾸다│좌충우돌 남한적응기

돈 대신 종잇조각? ‘울자울자’하지마세요!

탈북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 ‘하나원에서 사회로 나가면 며칠은 반드시 운다’고. A씨는 ‘남들 다 겪는 거니까’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정말 딱 3일 만에 화장실에 들어가 ‘온밤’을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4년여가 지난 지금 A씨는 현재 명문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중이다. 이번호에서는 ‘신중남’ A씨의 남한사회 적응기와 함께 북한의 추석나기 풍경을 함께 전해본다.

물어볼 수 없었어요! 결국 남은 건 딱 2천원

2010년 한국에 온 A씨는 하나원에서 나올 때 300만 원의 생활비와 10만 원의 훈련수당을 받았지만, 브로커비용으로 300만원을 보낸 뒤 10만 원만 가지고 새로운 거주지에 정착했다. 겨우 10만 원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는지 물었더니 “당시에는 돈의 가치를 전혀 몰라서 10만 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도 몰랐다”고 한다. 운동화가 필요했던 A씨는 사회에 나온 바로 다음날 신발가게에 갔다. 육개장“그땐 북한사투리를 그대로 썼을 때니까, 아예 말을 안했거든요. 말없이 신발 한 켤레를 골라 계산대에 올려놨지요.”
그 운동화의 가격은 9만8,000원이었다. 전 재산이 10만 원밖에 없는 A씨는 급당황했지만 운동화를 구입했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사기 전에 미리 물어보기도 하고 ‘어? 비싸네?’ 하면서 도로 제자리에 가져다놨을 텐데 그땐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가져다놨으니까 그냥 사야 되는 줄 알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A씨의 수중에 남은 돈은 딱 2,000원이 되었다. 돈은 없어도 주민센터 등에서 쌀과 라면을 많이 줬기 때문에 굶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더 필요한 게 있었으니 바로 담배다.
“담배가 2,500원인가 하더라고요. 고향(북한)에서는 대담배(가치담배)가 있었고 마라초(말아서 피우는 담배) 같은 게 있었는데 여긴 없더라고요.”

당면이 들어간 남한의 순대 홀홀단신으로 남한에 넘어와 주머니 속엔 달랑 2,000 원뿐인 상황. A씨는 담배 구경도 못한 채,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3일을 보낸 뒤 그날 밤 화장실로 들어가 ‘온밤’을 울었다. 이튿날 눈을 떴을 땐, 밖에 나가서 누구든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하나센터에서 찾아왔어요. 그게 얼마나 반갑든지요.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하나센터에 가니까 그나마 사람들이 있어서 안심이 되더라고요.”

울자울자 하는 아주머니, 돈 찾아준 사연은?

이후 기초생활수급비를 수령하게 된 A씨는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갔다.
“북한말을 쓰지 않으려고 아예 말을 안했어요. 하지만 마트에서 반드시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바로 사려는 제품을 찾지 못할 때요.”
A씨가 필요한 건 바로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그릇이었다. 북한에서는 물을 담는 그릇을 ‘소래’라고 한다고 한다.
육개장“제가 소래 어디있냐고 물었더니 점원이 못 알아 듣더라고요. 대화가 안 통하니까 대뜸 조선족이냐고 물어보대요? 저는 ‘아니다! 나 한국사람이다’하면서 보여 달라고도 안 했는데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보여주고 강원도 사람이라고 둘러댔어요.”

그런데 그 점원이 강원도 말투가 아니라고 말하자, 당황한 A씨는 물건을 사지도 않고 그냥 가게를 뛰쳐나왔다고 한다. “그 뒤에 말투 먼저 바꿔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그래서 젓가락을 입에 물고 책을 읽거나 TV, 인터넷 등을 보면서 따라하니까 좋아지더라고요.”

A씨는 지금도 ‘세제’라는 말보다는 북한말인 ‘가루비누’라는 말이 익숙하다고 한다. 슈퍼마켓에서 들어가기 전 ‘세제’라는 말을 머릿속에 수없이 연습해갔지만 “슈퍼 주세요”라는 엉뚱한 말이 나오기도 했다고.
남한정착 4년차를 맞은 A씨는 이제 북한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다. 억양도 거의 남한 사람과 유사하다. 그리고 하나원에서 사회로 갓 나온 탈북 동료를 돕는 일도 한다.

당면이 들어간 남한의 순대 “한 (북한이탈주민) 아주머니가 우리 동네에 사시니까 도와드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어느 날 아기를 등에 업은 그 아주머니가 길에서 거의 울자울자 하고(울상이 돼) 있는 거예요. 왜 그런지 물었죠.”

아주머니는 ‘방금 은행에서 70만 원을 찾으려고 했는데 돈은 안 나오고 이런 종잇조각이 나왔다’고 했다. 게다가 통장 정리를 해보니까 정말 그 70만원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

“웃음이 나왔어요. 아, 괜찮다고... 이것도 돈인데 좀 다를 뿐이라고 말했죠. 그리고 은행에 가서 다시 수표 넣고 현금을 뽑아드렸어요. 그랬더니 그제서야 마음을 놓으시더라고요.”

A씨는 그런 일을 당할 때 황당한 심정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모를 것’이라며 빙긋 웃었다.

남한에선 추석 때 명절 느낌이 안 나요!

다가오는 추석을 맞아 북한의 추석 이야기도 좀 해볼까 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오래전 남한에도 있었던 그런 정겨운 한가위 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북한에서는 추석 당일 새벽, 음식 장만으로 분주하다. 명절 휴일이 길지 않기 때문에 남한처럼 전날 음식을 만들 시간이 없는 것. 명절에는 가족 전체가 새벽에 일어나서 떡도 치고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한다. 그리고 추석날 아침에는 동네방네 음식을 나눠주기도 한다고.

“남한에서는 명절이 돼도 별 감흥이 없잖아요. 저쪽(북한)에서는 명절 며칠 전부터 벌써 들떠있거든요. 떡 같은 것도 항상 먹을 수는 있는 음식은 아니니까요. 또 ‘그 분(김일성)’이 말씀하신 ‘이 밥에 고깃국’도 먹을 수 있고요. 아이들은 명절 한 달 전부터 손으로 꼽아요. 30일 지나면 추석, 29일 지나면 추석... 이렇게요.”
육개장북한에서 도시와 농촌의 추석풍경은 조금 다른데, 도시의 경우 사람들은 한복을 입고 공원 같은 곳에서 꽹과리 소리 요란한 농악무를 구경하기도 하고, 실내에서는 윷놀이와 장기, 카드놀이 등을 한다. 시골에서는 추석날 밤 동네 청년들이 기타 등 악기를 가지고 한 집에 모여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밤새서 놀곤 한다고.

“물론 낮 시간은 운동대회를 해요. 북한에서 중요한 날에는 무조건 대회를 하거든요. 미니올림픽같은 건데, 팀을 나눠서 배구, 농구, 축구 같은 것도 하고 공연도 해서 1등을 한 사람에게는 돼지고기 얼마, 돈 얼마 이런 식으로 포상을 해요.”

성인이 되기 전 남한으로 건너온 뒤 수녀원에서 동료들과 함께 지냈다는 B씨는 명절 때, 무연고 아이들과 다 같이 모여 북한식 카드놀이를 즐겨왔다고 한다.

“명절 때면 오히려 수녀님이 카드놀이를 어떻게 하는지 우리에게 배우시고, 함께 모여 밤 새도록 놀아요. 북한의 카드놀이는 서양식과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이탈주민들은 명절이 되면 더욱 고향이 그립다. 비록 고향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이런 명절날만큼은 절대 혼자서 보내지 말고 남한 사람들과 혹은 동료 북한이탈주민들과 어우러져 즐기면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보도록 하자.

<글.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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