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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꿈꾸다│좌충우돌 남한적응기

배고파서가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남한에 왔어요!

최근 몇 년 사이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온 젊은 청년들을 만나보면, ‘밥을 배불리 먹기 위해’ 탈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토대’가 좋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고, 농부의 자녀는 농장으로, 광부의 자녀는 광산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북한의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를 위해 남한으로 떠나보낸다는 것. 
이들은 비록 ‘부모의 손길’이 필요할 나이에 남한이라는 ‘낯선 환경’에 홀로 발을 디뎠지만, 어리고 젊은 만큼, 매우 유연한 사고방식과 빠른 적응력을 갖고 있었다. 
19살에 고향을 떠나 남한에서 당당한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A씨의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아, 남한에서는 엿이 욕이군요?

A씨는 하나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대학 입시준비를 하며 지인 소개로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막상 채용은 했지만, 제과점 사장님은 얼굴도 새카맣고 일도 서투른 A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메뉴 이름이나 가격을 못 외우면 혼나니까 핸드폰에 메모해두면서 열심히 외우고, 남들 청소 안하는 곳까지 구석구석 청소하며 부지런히 일 했어요. 사장님이 나중에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일하는 거 보고 감동받았다고요. 지금도 가끔 연락드리는데 꼭 한 번 놀러오라고 말씀하세요.”
이미지 이런 일도 있었다. 수능시험기간에 많이 눈에 띄는 엿을 먹고 있었는데, 마침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니가 있기에 엿을 나눠준 것.

“언니 엿 먹어, 그랬죠. 알바 언니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왜 그래? 물었더니 ‘남한에서 그 말은 욕이야’라는 거예요. 그래서 알았죠. 아, 남한에서는 엿이 욕이구나.”

남한에 온지 햇수로 3년째가 됐지만 A씨는 아직도 슈퍼에 갈 때 가끔 인터넷으로 먼저 검색부터 한다. 필요한 물건의 이름을 확실히 알고 가기 위해서다.

“괜히 모르면 창피하니까요. 요전 날 H마트에 갔는데 사고 싶었던 물건의 이름을 도무지 모르겠는 거예요. 가스레인지는 가스레인지인데, 집에 있는 큰 거 말고 작은 거요. 결국 손으로 가리키며 ‘저거 주세요’ 그랬죠.”

A씨가 말한 물건은 휴대용가스레인지였다. 휴대용부탄가스, 부탄가스레인지, 버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 물건을 A씨는 그냥 편하게 ‘작은 가스레인지’라고 불러도 됐을 것 같다.

'저 오빠 나한테 관심 있나?' 끙끙 앓아요

A씨 아버지의 직업은 농부였다. A씨는 농부 자녀는 농사만 지어야 하는 북한의 제도가 싫었을 뿐, 결코 배가 고파 북한을 탈출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녀는 남한에 온 지 1년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현재 유명대학 간호학과에 입학해 간호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지나치게 북한의 기아 문제만을 부각시키는 것 같아요. 굶주려서 뼈만 앙상한 아이들의 영상이나 사진을 자주 보여주는데, 모든 북한 주민이 그렇게 살지 않지는 않거든요. 청바지도 몰래 입고, 매니큐어를 바르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요.”
이미지 B씨는 ‘북한’하면 너무 가난한 모습만 보여주니까, 남한사람들이 ‘못 사는 곳에서 왔다’며 무시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 소개팅을 나가도 북한이 고향이라고 말하면 성공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A씨는 자신의 고향을 강원도라고 말하곤 했다. ‘강원도 어디?’라고 물으면 ‘철원’이라고 답하고, ‘철원 어디?’라고 물으면 ‘어릴 적에 이사와서 잘 몰라요’라고 답변했었다고. 물론 이제는 고향을 속이거나 둘러댈 필요가 없어졌다. 올 여름 한 남성에게 고백을 받은 것. A씨는 ‘고백남’에게 “오빠 저는 그쪽(북한)에서 온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는데, 그 ‘고백남’은 “그게 어때서? 이제 여기 왔으니 대한민국 사람인데 그게 어때서?”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A씨가 한 가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북한 여자들은 아무래도 ‘순진한 것’ 같단다.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친절하잖아요. 잘 해주고 웃어주고 말 걸어줄 때마다 ‘저 오빠 나한테 관심 있나?’ 생각하면서 혼자 꿍꿍 앓곤 했어요. 근데, 저는 저만 그런 줄 알았거든요? 알고 보니 북한에서 온 제 친구들도 다 공감하더라고요. 이 남자는 아무 감정 없이 하는 행동인데 저희는 그렇게 오해를 하는 거지요.”

칙칙칙칙 - 근처에 기찻길이 있나요?

때로는 명랑하게, 때로는 격앙된 표정으로 남한 적응과정을 설명해주던 A씨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다며 소개한 에피소드는 ‘기차소리’ 이야기였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에요. 어느 날 집에 혼자 있는데 칙칙칙칙-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근처에 기찻길이 있나? 분명 없었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요. 몇 번 그런 생각을 하다가, 시간이 엄청 많이 흐른 뒤에 불현듯 그 소리의 정체를 깨닫게 됐어요.”
A씨가 기차소리로 착각한 그건 무슨 소리였을까? 바로 밥가마(압력밥솥) 소리였다. 증기가 배출될 때마다 나는 치익치익 소리였던 것이다.
이미지 물론 그렇다고 북한을 아프리카 오지마을처럼 문물 자체가 없는 곳으로 오해해서도 안된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요 근래에 남한으로 들어오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 사람들도 ‘식후 커피’를 마시고 비록 ‘중국제’이긴 하지만 라면도 먹고 산다.
북한에서 믹스커피가 한참 유행했는데, TV 드라마에서도 커피를 타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돈을 내면 커피를 타서 가져다 준다고 한다. 라면 역시 일반 서민들이 먹어볼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은 된다고.

“저희 엄마는 농장 노동자들에게 밥을 대주는 식당을 했어요. 손님이나 노동자들에게 가끔 라면을 끓여주곤 했는데, 어른들이 라면을 먹고 국물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제가 늘 먹곤 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여기 와서는 예전 그 라면 맛이 나지 않네요. 엄마가 끓여주시던 라면 맛이 그리워요.”

A씨의 부모는 아직 북한에 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 ‘남한’이라는 둥지 밖으로 어린 자녀를 밀어 보낸 부모의 마음을 A씨는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듯 훌륭하게 장성해 통일이 되는 날 기쁜 마음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같다.

<글.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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