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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편견 없애고 소통으로 하나된
중소기업 근무 7년 차 최강국 과장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의 공장. 최강국 씨가 남한에 오롯이 정착하기까지 7년 여의 세월을 보낸 곳이다.
이 기업에서 강국 씨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됐다. ‘배려 받아야 하는 탈북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젊은 남한 청년들에게 인생의 조언을 들려주는 든든한 선배이기도 하다. 이젠 ‘대구사람 다 됐다’는 최강국 씨를 만나보자.

최강국 과장

임업기계공장 경험을 바탕으로 중장비 자격증 취득

2008년도에 남한으로 온 최강국 씨는 사회에 나오자마자 직업전문학교에 등록해 중장비기술 자격증들을 줄줄이 따냈다. 북한에 있을 때 혜림농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인 임업기계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바탕이 됐던 것. 당시 중장비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게는 장려금이 지원되던 상황이라 ‘남한 정착과 취업에 이만한 기회도 없으리라’는 생각에서 6개월 동안 직업전문학교 중장비반을 수료하고 포크레인, 지게차, 로드 등의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자격증을 땄던 것과 달리, 정작 직장생활은 순조롭지 않았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직장 내 직위가 높은 젊은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그때 마침 친구가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아는 사람이 자동차부품 제조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기계에 대한 이해와 기술력이 있는 강국 씨를 스카웃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강국 씨가 북한에서부터 갈고 닦아온 기술과 경력을 인정해준다니 참 고마운 일이었다.

최강국 과장 최강국 과장

직원 5명에서 20명으로, 알차고 탄탄한 회사에 7년간 몸 담아

그렇게 입사했던 회사는 최강국 씨에게 7년간의 보금자리가 됐다. 회사는 당시 5명으로 출발했지만 이제 20명의 직원들이 함께 하는 어엿한 중소기업이 됐다. 15명의 후배들이 생긴 셈이다. 강국 씨는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지긴 했지만 그 무게감이 한편으로는 좋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튼튼한 일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강국 씨는 이곳에서 신차에 들어가는 부품 등을 디자인해 제조, 납품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작년에 새로운 모델의 차가 많이 나와서 엄청 바쁘긴 했지만, 길에서 저희가 만든 차량등을 보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더라고요. 밤에 차들이 브레이크를 밟으면 우리 손때가 묻은 차량등이 반짝반짝 빛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퇴근길에 우리가 만든 차량등이 어디 있는가만 찾아보게 돼요(웃음).”

강국 씨가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던 데는 동료들과 이문수 대표의 힘이 컸다. 동료들은 강국 씨가 북에서 온 사람이라고 차별하거나 의식하지 않았고, 이문수 대표는 변치 않는 믿음으로 강국 씨와 함께 회사를 일궈왔다. 강국 씨는 이문수 대표를 “납품일자를 잘 지키고 맡은 일을 확실히만 해낸다면 웬만해서 잔소리는 안 하는 분”이라고 소개하며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만큼 챙겨주고 야유회나 회식도 빠뜨리지 않으니 이만한 회사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강국 과장

사장님 역시 강국 씨와 일하면서 탈북민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처음엔 솔직히 반신반의로 채용했지만 지금껏 지켜봐 온 강국 씨는 누구보다 배려심이 많고 적극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리더로서의 자질도 충분하단다. 회사가 어려울 때마다 동료들을 다독이며 잘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회사대표 입장에서 볼 때 최강국 씨는 진짜 인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최 과장이 남한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죠. 그런데 오히려 자기가 먼저 사람들한테 다가서더라고요. 우리 신참들에게는 조언도 해주면서 부드럽게 리더십도 발휘하고요. 인품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강국 씨만 놓고 본다면 저는 다른 회사에도 탈북민 채용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모든 덕은 스스로 땀 흘린 만큼 따라오는 법

강국 씨는 “모든 일은 땀 흘린 만큼 얻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해야 할 일이 적진 않지만, 열심히 한만큼 그만한 보수가 따라오는 것이 대한민국의 장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종종 한 번에 큰 욕심을 내는 탈북민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다.
“쉽게 얻어지는 게 뭐 있나요? 저는 뭐든 내가 한 만큼 얻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쉽게 돈을 벌려고 하면 오히려 멀리 돌아가게 되니까요. 처음부터 너무 욕심내지 말고 차근차근 성취해나가는 것이 제일 좋은 정착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북에서 건너오긴 했지만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는 생각이다. 때때로 탈북민에 대해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일부 남한 사람들의 태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느냐는 탈북민 스스로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국 씨는 사람을 사귀는데 망설임이 없다. 족구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제 5년 지기 친구나 다름없고, 3년 전 자율방범대 활동을 함께 했던 한 ‘형님’은 강국 씨의 멘토 같은 분이다. 모두들 강국 씨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부모처럼, 형제처럼 따뜻한 벗이 돼주고 있다.

내년이면 강국 씨가 남한에 들어온 지 꼬박 10년이 된다. 요즘은 어딜 가도 ‘대구 토박이’라는 소릴 듣지만, 여전히 명절만 되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강국 씨는 선배의 가족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섰다가 보위부에 잡혀 들어갔고, 이후 두 달여 만에 북한을 떠나온 뒤로 가족들을 볼 수 없었다. 세 남매 중에 큰 형님이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얘길 들었고, 북에 있는 누이와 작은 형님 소식도 3년 전 들은 게 전부다. 그래서 강국 씨는 남은 가족들이라도 생전에 만나볼 수 있도록 하루빨리 통일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끝으로 최강국 씨에게 앞으로의 목표,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그냥 여기서 안전하게 퇴직하는 게 꿈입니다. 돈도 열심히 모으고요. 통일이 되면 형님, 누이 모셔다가 오붓하게 살아야죠. 그리고 막상 통일을 이루고 나면 우리 탈북민들의 역할이 정말 클 거라고 생각해요. 남북한 사람 서로가 마음을 맞추는 게 우선이니까요. 분단 기간동안 서로 갖고 있던 오해나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둘 간의 차이를 극복해나가는 데 있어 탈북민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열심히 즐겁게 살아 보렵니다.”

최강국 과장

<취재·사진: 강문희, 기자희>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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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행 : 2016-02-15 /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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