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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 인터뷰

인터뷰 / 김세원 상임위원

“다문화가정은 통일시대의 든든한 지원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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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눈으로 대한민국을 보라. 어쩌면 거창해 보이는 이 말 속에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분단조국의 실상을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다. 다문화가정이 통일시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라는 김세원 상임위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우리나라 다문화가족 수는 26만6547가구에 이르며 그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낯선 이방인의 모습보다 ‘우리’라는 범주에 더 익숙해진 이들, 하지만 십수 년을 한 울타리 속에 살아온 이들에게도 여전히 이상하고 알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우리의 분단 역사와 통일의식이다. 살아가는 동안 언어와 전통, 음식과 생활습관 등은 하나씩 터득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뼈아픈 역사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다문화가정을 낯선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있지만 그들은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우리와 같은 의료 혜택과 복지 혜택을 받고 우리처럼 세금을 냅니다.”

김세원 상임위원은 다문화가정이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들과 달리 대단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음에 주목했다. 더구나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라오스, 몽골 등 역사적으로는 남한보다 북한과 더 가까웠던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옮겨왔지만 그들이 나고 자란 나라와 교류하며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이들이 우리와 우호관계에 있는 자신의 고국 사람들에게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언어와 문화, 음식과 생활습관 등을 습득하도록 지원하는 데는 적극적이던 우리가 우리의 역사와 분단 현실, 미래 통일에 대해 알리고 가르치는 데만 유독 인색했던 게 아닐까.

다문화가정은 우리의 이웃 국가에서 온 협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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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월 11일 서울 강동구 강동구민회관에서 열린 “2014 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윷놀이 한마당'”에서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다.

김 위원은 가톨릭대학교에서 비교문화경영과 국제마케팅 등을 가르치고 있다. 몇 해 전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발했을 당시, 그는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마주하며 아주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2012년까지 영어 강의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죠. 한국 학생은 물론이고 프랑스,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자 국적에 따라 반응이 제각각이었어요. 당시 예비역이었던 한국 학생 한 명은 예비군복을 다시 꺼내 입어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했다더군요. 프랑스에서 온 학생은 부모님으로부터 전쟁이 날 것 같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 학생들은 대부분 누가 누구를 공격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해요. 그들은 중국 매체를 많이 접하다 보니 북한 언론의 보도와 한국 언론의 보도 사이에서 혼란을 겪은 거죠. 실제로 지난해엔 북한의 핵도발로 중국 학생 한 명이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직접적인 위협을 느낀 거겠죠.”

한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이웃 국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고, 이웃 국가들의 매체에 쉽게 노출되는 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한 통일의 당위성을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우리 국민이지만 우리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으로 세계인들에게 한반도 정세를 설명하고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의 부모는 전형적인 남남북녀 커플이었다. 함경북도 경원 출신으로 광복 이후 어린 여동생의 손을 잡고 월남해 강릉에서 터를 잡고 사셨던 어머니는 김 위원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어머니는 매우 씩씩하고 진취적인 분이셨죠.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10대 때부터 북간도를 오가며 무역 활동을 하셨을 정도니까요. 북한 여성들은 기질적으로 강인한 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통일이 된다면 남한 여성들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질과 북한 여성들의 강인한 기질이 만나 좋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의 영향 덕분이었는지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도전정신과 호기심이 늘 먼저였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영국 로이터재단의 후원으로 프랑스에서 유학할 기회를 얻은 것도, 이후 특파원 생활을 하며 남북관계에 대한 수많은 특종을 만들어낸 것도 그러한 기질 덕분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1992년 프랑스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국경을 넘어보았어요. 기차를 타고 육로를 통해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있다니, 그 전까진 상상도 못 한 일이었죠. 그제야 깨달은 겁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가 아니라 섬이구나!”

여권만 내밀면 쉽게 이웃 나라를 오갈 수 있다는 것도, 그러한 사실을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도 그에게는 몹시도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북한의 모습도 꽤나 흥미로웠다고 한다. 때로는 그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객관적이고 명확해 놀라기도 했다.

“천안함 사태 때 외신기자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들이 되묻더라고요. ‘북한의 소행이라는 게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데 왜 남한 사람들 눈엔 그게 안 보이지?’라고요. 매년 4월에 열리는 평양축전 행사를 관람할 외국인들을 섭외하는 전문여행사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차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 그곳 사무실 벽면에 커다랗게 ‘스릴과 서스펜스를 즐기려면 북한으로 가라!’라고 씌어 있는 거예요. 그들에게 북한은 쿠바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와는 또 다른 스릴과 서스펜스의 나라인 거죠.”

올해부터 해병대 정책자문위원 활동까지 겸하게 된 김 위원은 통일을 향한 이 모든 활동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무기와 최신 장비, 그럴듯한 전략을 갖춘다 해도 정신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인들과 교감하며 우리와는 또 다른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다문화가정 사람들과 함께 세계 평화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 21세기 통일한국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우리 세대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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