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2014년 6월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 최초로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한국과 중앙아시아 협력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중앙아협력사무국 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유럽과 아시아, 중동과 중국을 잇는 교차로인 중앙아시아는 한국에 제2의 중동이나 마찬가지. 한·중앙아시아 협력 실태와 앞으로의 전망을 짚어본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의 교류와 협력은 일반적 인식과 달리 오래전부터 이뤄져왔다. 그러나 중세 이후 한반도의 중국 중심 대외관계 재편,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간의 물리적인 교류의 단절은 한반도에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단절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 간의 오래된 교류의 역사는 역사학적인 실증 자료의 발굴로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발굴된 많은 유적은 실크로드 교역으로 한반도와 중앙아시아가 연결되어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 증거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디지털 기술로 복원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Afrosiab) 벽화에는 머리에 조우관(새 깃을 꽂은 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찬 고구려 사신 2명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당시 동북아에서 당나라와 경쟁 중이던 고구려가 역시 당나라의 반대쪽 변방에 있던 이 지역 고대국가들과 연대했을 개연성을 보여준다. 신라의 한반도 통일 이후 당나라 서쪽 변방인 오늘날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두고 당나라와 아랍세력 간에 지배권 경쟁이 벌어졌을 때 고구려 유민의 후예로 당나라의 장수였던 고선지가 그곳에서 활약했음이 역사 문헌과 서방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유라시아 대륙 중심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고대와 중세에 걸쳐 북부 초원 유목 문화와 남부 오아시스 정착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된 동서양 문화를 받아들여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곳이다. 인구 구성 측면에서는 다민족 사회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투르크-이슬람 문화를 포괄하는 전통의 토착문화가 지배적인 문화로 유지돼왔고, 근대화 과정에서 슬라브·유럽 중심의 러시아 문화가 유입돼 현대 중앙아시아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다양성과 함께 중앙아시아는 한민족 공동체의 역사 측면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역이다. 조선 말기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이주해 일제강점기 한반도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한민족 동포의 후예, 그리고 당시 홍범도 같은 일부 독립운동가들이 1937년 이곳으로 강제 이주돼 뿌리를 내린 지역이라는 점에서 중앙아시아는 한국 현대사와 많은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 남북을 역사적 시차 두고 연결해준 중앙아
<사진>중앙아시아는 동과 서를 연결하는 문화의 교류지 역할을 해왔다. 사진은 14세기 후반 중앙아시아 최대의 정복자였던 티무르의 동상. 우즈베키스탄에서 촬영했다.
중앙아시아의 한민족 동포는 북한 체제 설립 초기에 북한으로 다수 들어가 체제 안정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 북·소관계가 악화됐을 때도 대다수가 중앙아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소련에 유학중이었던 북한 출신 젊은 청년들 가운데 일부는 북한체제 개혁을 외쳤다는 이유로 북한 체제와 단절이 불가피했고, 이들에게 중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고립됐던 한민족의 후손들 역시 1960년대 이후 상당수가 중앙아시아로 이주해 중앙아시아 한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됐다. 당시 이들의 모국인 남북한은 국제정치적인 이유로 단절관계에 있었지만, 중앙아시아는 이와는 상관없이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을 역사적인 시차를 두고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중앙아시아의 한인 동포들이 모국을 직접 인식하게 된 계기는 바로 구 소련의 1988년 서울올림픽 참가였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구 소련의 수교 등 상호 인정 과정이 가속화했고, 중앙아시아의 한인 동포들과 한국의 직접적인 교류도 본격화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 교류는 1990년대 초반 국교 수립 이후 활성화돼왔다. 이후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의 협력은 경제를 주축으로 진행됐는데,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문화 분야로 확대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2007년부터는 ‘한·중앙아 협력포럼’을 통해 한국과 중앙아 국가 간 포괄적, 다면적 협력 관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개별 국가별 양자관계 및 협력 상황은 다음과 같다. 중앙아시아의 신흥 경제부국으로 부상한 카자흐스탄은 2009년 5월 한국·카자흐스탄 두 정상 간 합의로 개최된 2010년 한국에서의 ‘카자흐스탄의 해’와 2011년 카자흐스탄에서의 ‘한국의 해’ 행사를 통해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소개하며 양국민 간 우호와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2012년 한·카자흐 수교 20주년 이후 양국은 각종 문화, 학술 교류행사를 활발히 진행하면서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질적으로 한층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전통 문명 중심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특히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한국을 8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초기 한국 대기업 중심 경제협력은 이제 한국 중견기업들의 적극적인 우즈베키스탄 진출이라는 성과로 이어져 확대 및 심화의 단계로 들어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 우즈베키스탄 국민이 외국인 근로자 자격으로, 결혼 이주자 자격으로 한국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은 2012년 수교 20주년을 맞아 키르기스스탄에서 ‘한국주간’, 한국에서 ‘키르기스 콘서트 및 영화제’ 등을 여는 등 양국에서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2014년 서울에 상주 공관을 개설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투르크메니스탄 공식 순방이 이루어졌다. 투르크메니스탄에는 한국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대거 진출하는 등 경제 중심 교류가 주로 이뤄지고 있으며, 향후 사회·문화 교류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타지키스탄은 여타 중앙아 국가에 비해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2015년 서울에 타지키스탄 상주 공관이 개설됨으로써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립 이후부터 국익 극대화를 위한 외교를 추진해온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에너지 자원의 보고로 부각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대중앙아시아 외교와 협력은 이와 관련되어 더욱 경쟁적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중앙아시아의 위상과 역할은 때로는 중앙아시아 각국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때로는 중앙아시아 각국의 능동적인 역할 수행을 통해 지속적으로 향상돼왔다. 카자흐스탄 같은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공헌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경제적으로는 다소 어려우나 새로운 남남협력 모델의 제시와 실천을 통해 중앙아시아뿐 아니라 유라시아 주요 국가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협력과 교류는 이러한 다면성에 걸맞게 유연한 대응이 요구된다. 이는 미래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된 국제적인 지지 기반 확보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기존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협력과 교류는 중앙아시아 각국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중앙아시아 외교’라는 거대 프레임을 중심으로 추진돼왔기 때문에 개별 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개별 국가의 장·단기적인 국익 극대화 측면에서 자국의 발전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국익 극대화를 기준으로 협력 대상 국가들을 선택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가 향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협력 관계 발전 및 심화를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 간에는 민간 차원의 인적 교류 확산을 위한 환경이 조성됐다. 6월 24일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의 협력 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중앙아협력사무국 추진위원회도 발족했다. 카자흐스탄과는 상호 비자면제협정, 키르기스스탄과는 일방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고, 우즈베키스탄은 많은 우즈베크 국민이 한국에 외국인 근로자나 결혼 이주자 신분으로 이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에 본격적인 민간 레벨의 접촉과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다양한 수준의 행위자들이 공공외교 활동에 동참하는 이른바 ‘참여형’ 또는 ‘협력형’ 공공외교가 요구되고 있다.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교류협력은 민관의 유기적인 협력을 기반으로 참여형, 개별 국가 단위 쌍방향형 협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인적 네트워크와 뉴미디어를 융합시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한국 내 중앙아 각국 문화원 설립 적극 독려해야
<사진>지난 4월 '제7차 세계물포럼’ 참석차 방한한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을 정의화 국회의장이 환영하고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투르크 유목 문명, 페르시아 정착 문명의 요소를 역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중앙아시아 국가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 적극 활용해야 할 부분이다. 문명사적인 배경 측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는 등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문화 또는 문명 동질성 코드를 연구하는 학술 교류 활동도 쌍방향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사에서 돌궐로 알려진 고대 투르크 문명에 대한 공동 연구의 추진도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의 협력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물리적인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문화원(또는 교육원)의 확대가 요구되고 있다. 한국의 문화원 등은 이미 몇몇 중앙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성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중앙아시아 각국 문화원이 개설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각국 문화원 개설은 중앙아시아 개별 국가의 문제이지만, 한국의 시각에서는 국가별 양방향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프레임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독려가 요구된다.
또한 중앙아시아는 고대부터 동서양을 연결하는 매개체 기능을 수행했던 지역이며, 이 기능은 오늘날에도 계 속되고 있다. 아울러 한반도가 분단된 시점에서 이 지역은 간접적으로 남과 북을 연결하는 매개체 기능을 했다. 이는 2014년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해 중앙아시아의 한민족 공동체 밀집 거주지를 경유하고 북한과 한국을 육로로 연결했던 이들의 경험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세계 문명사에서 매개체와 연결체가 되었던 중앙아시아의 역할은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개될 분단구조의 극복 및 이후 통일 과정에서도 중앙아시아의 한민족 동포인 고려인을 통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의 향후 교류와 협력은 이러한 거시전략 차원에서 심화·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김상철 한국외국어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관계(중앙아시아) 박사. 카자흐스탄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 부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