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북한은 기상 변동으로 매년 농업 생산에 만성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오랜 기간의 경제 침체로 북한의 농업 생산 기반이 기상 변동을 충분히 흡수할 만큼 확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의 노력만으로는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데 있다.
북한이 기상 변동으로 받는 영향 중 가장 큰부분을 차지한 것은 여름철 집중호우와 태풍이다. 북한의 홍수 피해가 가장 컸던 해는 1996년과 2007년이다. 이 두 해에 큰 홍수 피해를 겪은 것은 농업 생산에 최악의 요건을 고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발생했던 대홍수는 곡창지대에서 주요 식량작물의 중요한 생육기간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당시 홍수는 농업 생산은 물론 중요한 농업기반시설에도 많은 피해를 주었다.
1996년에는 7월 말에 폭우가 내려 심각한 홍수 피해를 안겼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9개 도의 117개 시·군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는데 그중에는 주요 벼 재배지역이 포함됐다. 당시의 집중호우로 총 28만 8000ha의 농경지가 침수됐으며, 관개시설과 제방뿐 아니라 보·댐·교량이 파손됐고, 수십 ㎞의 전선과 수만 채의 가옥, 수많은 공공시설이 피해를 보았다. 주요 산업 중심지인 평양~개성, 평양~해주를 잇는 철도 역시 많은 피해를 보았다고 보도된 바 있다.
2007년에는 8월 중순의 호우와 9월의 태풍으로 두번의 큰 재해를 입었다. 이 기간에 내린 강우량은 한해 평균 강수량의 70~80%에 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주요 벼 생산지역에 위치한 96개 군이 피해를 보았으며 이 중 33개 군에서는 760~840㎜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 벼재배면적의 20%, 옥수수 재배면적의 15%가 완전히 침수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에 발생한 태풍 ‘위파’도 농업기반시설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2010년의 홍수는 1996년과 2007년과 비교할 때 그 세력이 약해 농업 생산에 일부 영향을 주었지만 기반 시설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9월 초에 발생한 태풍 ‘곤파스’는 이틀간 강한 바람과 함께 피해지역에 평균 150㎜의 비를 뿌렸다. 이는 황해남북도와 강원도의 대부분 지역에 영향을 끼쳤다. 조선중앙방송에 따르면 약 3만 ha에 달하는 면적의 작물이 물에 잠기거나 유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에도 6월 말 태풍 ‘메아리’에 이어 계속된 장마와 7월 말 집중호우, 그리고 8월 중순까지의 호우로 피해가 이어진 것으로 보고되었다. 당시 호우에 따른 작황 피해 규모는 1996년과 2007년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황해남북도, 평안남도, 함경남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평년의 2, 3배에 달하는 강우량을 기록한 지역이 많고, 주로 곡창지대가 피해를 많이 보았다고 보고되었다.
2013년부터는 장마와 태풍이 몰고 온 집중호우 피해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 대신 초봄부터 초여름까지의 봄 가뭄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봄은 맥류의 생장이 본격화되고 알곡이 여무는 시기이며, 초여름은 벼와 옥수수를 파종·이앙하고 봄감자가 자라는 시기이므로 농업 생산에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최근 빈발한 봄 가뭄으로 감자 생산 타격
<사진>북한의 농민이 홍수로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연초부터 5월 중순과 말까지 가뭄과 고온 현상이 발생했으며, 올해는 그 발생기간과 정도가 좀 더 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작년과 올해 연이어 “우리나라의 전반적 지역에서 가물이 들고 있으며 수십 년 혹은 100년 만의 왕가물”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 빈발하는 북한의 봄 가뭄은 보리 등 이모작 작물의 수확, 그리고 주요 식량작물인 옥수수의 파종과 이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모작 작물인 감자와 맥류는 북한 전체 식량작물의 10%를 약간 넘는 수준이며, 옥수수는 전체 곡물 생산량의 절반에 이른다. 따라서 전체 식량작물의 작황에 봄 가뭄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북한은 2012년과 2013년 봄에 서해안 일대의 가뭄으로 이미 파종했던 보리, 밀, 감자 등 이모작 작물과 4, 5월에 파종한 옥수수를 다시 파종해야 했으며, 그해 봄 작물의 작황이 저조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당시 가뭄의 피해가 심각했던 지역은 북한의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북도와 황해남도, 평안북도와 평안남도, 그리고 평양시 등 5개 시·도였다.
올해의 봄 가뭄은 기간이 길어져 2012, 13년을 크게 웃도는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곡물에 대한 가뭄 피해가 원산 일대 서해안 지역에서만 심각했을 뿐 주요 곡창지대를 비켜갔으며, 6월 중순 이후에는 북한 대부분의 지역에 많은 비가 내려 파국은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의 가뭄과 대홍수, 2000년대의 집중 호우, 그리고 2013~2015년 기간의 가뭄 등 남한과 북한은 대개 같은 시기에 유사한 기상이변을 함께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피해는 남한에 비해 훨씬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북한 농업 부문이 보유하고 있는 농업 생산기반시설과 황폐화된 산림 환경에 있다.
우리나라는 논농사 중심이기 때문에 농업 생산기반 시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수리관개시설이다. 과거 북한지역의 전력 사정이 양호했던 시대, 북한 농업의 관개는 낮은 곳에 위치한 강이나 저수지에서 높은 곳으로 물을 퍼 올려 공급하는 양수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상류지역의 댐과 저수지, 이를 활용한 자연흐름식 관개수로의 중요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1년의 농사에 필요한 저수량을 비교적 낮게 유지해도 농업 생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1980년대에서 90년대 경제 침체기를 지나오면서 양수체계와 전력 사정이 크게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양수에 의존하는 북한 수리관개 체계의 특성상 양수설비 유지·관리에 필요한 자본 공급과 순조로운 전력 공급 여부는 농업 생산 과정에서 기상의 변동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다. 양수장 시설과 설비가 노후화되고, 양수기를 가동할 수 있는 전력도 부족해지자 북한 농업 부문의 기상 변화 대응능력은 크게 저하되었다. 평시 저수량이 많지 않은 북한 농업에서 가뭄 피해는 이제 일상이 된 것이다.
농산물 작황을 감소시키는 요인을 제공하는 것은 비단 양수체계만은 아니다. 황폐화된 산림도 중요한 원인이다. 산림이 잘 조성되어 있으면 토양은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에 물을 풍부하게 머금게 되고, 갈수기에 천천히 물을 방출해주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황폐한 산림은 한편으로는 가뭄 피해를 가중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홍수 피해도 커지게 한다. 불행히도 북한의 산림 황폐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 농업은 날이 갈수록 자연재해에 취약해지고 있다.
북한의 노력과 함께 남북 간 협력 필요
<사진>2007년 집중호우로 홍수 피해를 본 평안남도 북창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파손된 도로를 복구하고 있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북한 스스로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은 1990년대 말부터 관개체계를 양수식에서 자연흐름식으로 바꾸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일환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평야지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물길 공사를 벌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관개지선 정비와 산간 지대의 수리시설 정비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아 전반적으로 관개는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황폐한 산림이 방치되고 있어 중·장기적인 수리·관개상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가뭄과 홍수 등 기상재해가 빈발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산림과 농업생산기반의 복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현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의 노력만으로 이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즉 북한의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와 남한의 협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드레스덴 구상’을 통해 북한 농업에 대한 협력 의사를 천명한 바 있다. 이 제안에는 북한 주민의 생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농업 생산 부문의 협력이 주로 담겨 있다. 이러한 대북 농업협력 의사는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농업 복구계획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현실화될 수 있다. 이 협력사업은 북한의 농업이 가진 잠재력을 회복시켜 궁극적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이 부문에서 협력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공공 부문의 준비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협력 규모가 비교적 크고 협력 사업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농업 기반 정비와 관계가 있는 사업으로는 대규모 관개체계의 보수와 개편, 간척지 복구, 자연재해 피해지 복구, 황폐해진 산림 복구 등이 있으며, 관련 기술 수준 향상을 위해서 과학기술 협력과 교육과정 지원 등을 추진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협력사업을 질서 있게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중심에는 남북 당국 간 농업 협력 협의체 복원이 있다. 남북한 당국이 직접 만나 공통의 과제를 협의하지 않고서는 남북 간 협력사업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이은 농업 발전, 그 결과로서 나타날 남북 양측의 공동이익 구현은 대화와 타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려대 경제학 박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