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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나누다 | 호국보훈이야기 당선작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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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의 새내기 직원으로 의류매장에서 근무하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주름이 깊은 노인 한분이 허름한 옷에 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자동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늘 친절교육을 받는 직원들이지만 물건을 살 손님은 아니라는 것을 예감한 탓인지 할아버지가 수선실을 찾으시는데도 한명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더운 날씨에도 긴팔 셔츠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할아버지를 수선실이 있는 2층 계단까지 안내해드렸습니다.

그리고 10분쯤 지났을까? 그곳에 볼 일이 생겨서 올라갔다가 화가 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선실 직원들은 선풍기 3대를 모두 텔레비전쪽으로 고정시켜 놓은 채 야구경기에 넋을 잃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반대편 바닥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가위를 갈고 계셨습니다. 선풍기 한대를 할아버지쪽으로 돌려놓고 싶었지만 갓 입사한 신입사원인 처지에 주제넘게 나설 수도 없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근무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층 계단을 살피며 할아버지가 내려오시기만 기다렸지요. 얼마 후, 할아버지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걸어 오셨습니다. 저는 재빨리 할아버지를 에어컨이 있는 ‘고객휴게실’로 모시고 가서 땀 좀 식히고 가시라며 차가운 음료수 한 캔을 자판기에서 뽑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나같은 누추한 사람이 이렇게 깨끗하게 닦아놓은 자리에 앉아도 되나? 그냥 서서 마실께요. 고마워요. 젊은이” 하시는 바람에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할아버지는 더위에 갈증이 심하게 나셨던지 음료수를 급히 비우시고는 “이제야 땀이 좀 식네. 정말 고마워요. 젊은이”라며 거듭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수건으로 다시 한번 얼굴의 땀을 닦아내셨습니다. 땀을 닦아내는 할아버지의 뺨에 아기주먹 만한 크기의 상처 흔적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 부상의 후유증이 할아버지의 인생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땀을 닦는할아버지의 수건을 보니 많이 낡고 땀에 푹 젖어 있었습니다. 그 무렵, 여름 행사로 손님들에게 손수건을 무료로 나눠드리고 있었기에 저는 매장으로 달려가서 판촉용 손수건 한 장을 가져다 할아버지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이 손수건 쓰세요. 손님들께 무료로 드리는 것이니까 받으셔도 돼요”, “허허...참!... 그래도 나는 손님이 아닌데... 이걸 염치없이 어떻게 받아요”하시면서, 극구 사양을 하시더군요.
결국 일 때문에 제가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며 받으시라고 하자 그제서야 수건을 받으신 할아버지께서는 “어휴,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나 같은 사람한테... 젊은이 정말 고마워요. 내가 이 손수건 잘 쓸게요.”라고 고마움을 표하셨어요. 자동문 밖으로 그렇게 몇 번이고 저를 향해 인사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나네요.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고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사는 전쟁 참전 용사들을 우리 사회가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풍토였다면 그 할아버지께서 그토록 자신의 흉터를 부끄러워했을리 없을 테니까요. 다행히도 지금은 우리나라도 보훈제도가 잘 갖추어져가고 있지만 국민들 마음으로부터의 보훈의식은 그만큼 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나라를 위한 큰 희생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한 채 경의와 존중의 마음으로 머리 숙여 감사해야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라면 과연 이런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가 나서 기꺼운 마음으로 희생을 할 수 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라도 더 가르치는 것에만 급급했지나라사랑의 참 뜻과 나라와 겨레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 학교에서도,가정에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은 저를 포함한 모든 부모들의 공통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지금의 자신이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어떤 분들의 고귀한 희생위에 서있는지에 대한 바른 가르침은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보다도 더 값진 삶의 큰 가르침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지난 주말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고 동작동의 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저 역시도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참배를 한 후로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찾은 현충원이였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에게 요즘은 학교에서 현충원에 참배를 하지 않는지 물었더니 오히려 참배를 하는 학교도 있느냐고 저에게 반문을 하더군요. 오랜만에 찾은 현충원은 3월이라 아직 쌀쌀한 날씨 였지만 그래도 가족 단위의 추모객이 적지 않았습니다. 현충원이라고 하면 참배만을 생각했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참배도 하고 나들이도 할 수 있는 곳으로 정성스럽게 조성되어있었습니다.

조금 더 안으로 발을 옮기니 한 눈에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많은 비석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에 잠드신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알아?” “알아.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이야” “그 나라가 어느 나란데?” “우리나라” “그럼 우리는 이분들한테 어떤 마음을 가져야할까?” “음... 고맙습니다!” 그러더니 꾸벅 머리를 숙여 순국선열들에게 인사를 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우습기도 했지만 기특했습니다. 현충탑에 참배를 하고 현충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현충탑을 나와서 조금 더 올라가니 베트남전 파병전사자들의 묘역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아들 녀석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너 한강의 기적이라고 들어봤지?”
“네. 후진국이던 우리나라가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게된 걸 비유하는
말이잖아요” “그래. 바로 그 한강의 기적에는 여기 잠드신 분들의
희생이 가장 큰 밑거름이 된 거라는 것도 아니?”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을 하려고 해도 돈이 없었어. 그런데
이분들이 섭씨 40도가 넘는 찌는 듯한 더위와 정글의 독충, 독사,
무엇보다도 신출귀몰한 베트콩들과 싸워가며 피와 땀으로 바꾼 달러로
공장도 짓고 길도 닦아서 한강기적의 터전을 마련한거야” “그랬구나”
겨우 한나절 동안의 현충원 방문으로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크고 작은 희생을 한 유공자들에 대하여
깊이 있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우리 아이들에게 그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알려주는 노력을 한다면 아이들도
보훈의 소중한 의미, 더 나아가 나라사랑의 참된 가치를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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