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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말하다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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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2008년 2월 25일에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남북통일은 7,000만 국민의 염원”이라며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또한 2008년 7월 11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과 공영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북한의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08년 3월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 대통령에게 보고된 이후 7월 말 새 정부 대북정책의 공식명칭이 ‘상생과 공영’으로 확정되었고 이것을 기본으로 향후 5년간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게 되었다.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은 남북관계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북한을 안심시키며 불안요인을 해소하고 체제발전의 돌파구를 찾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고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실현하며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한편, 남북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남북 7,000만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체회의와 상임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거나 주요 현안과 관련하여 부정기적으로 이루어지던 자문건의활동은 2008년 들어 의장에 대한 보고를 연 4회로 정례화했으며, 의장이 직접 보고를 받고 재가를 하는 방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의장에 대한 보고서는 국내 230개 지역협의회의 정기회의를 통한 여론수렴 결과와 국민여론조사 결과 등을 종합 정리하고, 이와 관련하여 10개 분과위원회에서 논의된 결과를 집대성하여 작성되었다.



정책건의서 작성을 위해서는 먼저, 매 분기 초에 기획조정법제위원회를 열어 남북관계 및 통일환경에 대한 정세 분석을 바탕으로 자문건의 방향과 주제를 논의하였다. 기획조정법제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은 각 분과위원회 소위원회에 넘겨지게 되며, 소위원회는 분과별 심의 의제와 보고서 초고 집필자 등을 결정했다. 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작성된 의제는 분과위원회에서 최종 심의하며 이렇게 9개 분과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보고서는 기획조정법제위원회에 다시 넘겨져 종합·조정작업을 마친 후 최종결과를 의장께 보고하게 되었다.


2000년대는 북한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고,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었다. 특히, 후반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북한은 우리 정부를 비롯해 국제사회 전체의 일관된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로켓과 각종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2차 핵실험까지 단행하였다. 또한,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금강산 관광 중단에 이어 개성관광도 중단하는 등 남북관계를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자문회의는 제14기 출범을 통해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국민운동 중심체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는 제2의 창설에 나섰다.

제14기 통일자문회의 4대 중점 활동은 첫째, 실용적 정책건의 추진으로 남북 상생·공영에 기여하는 것이다. 둘째는, 통일무지개운동의 전개로 국민통합을 선도하고 통일시대를 준비해 나가는 것이다. 셋째는 ‘한민족 글로벌네트워크’구축으로 세계 속의 통일한국 실현과 그 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통한 국민 속의 통일자문 회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된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는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우리나라도 여느 국가들처럼 글로벌 금융·경제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 온 우리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앞에서 다시 한 번 그 취약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통일자문회의는 과거 외환위기 때에도 경제회생운동을 앞장서 확산시키며 국가 부도 위기를 극복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 바 있었다. 글로벌 경제위기 역시 당시의 경험을 반추하여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경제 위기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서도 연구하여 경제, 외교적 정책 수립에 이바지했다.
통일자문회의는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해 국민 대통합을 이룩하기 위해 통일무지개운동을 2009년 중점사업으로 설정해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전 국민이 통일운동에 나서서 참여하고 국민 속에서, 국민과 함께 통일운동을 전개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추진된 통일무지개운동은 자문위원 1명이 6명의 지역주민을 통일운동에 참여시켜 국민 참여형 통일운동을 전개해 나가자는 것이다. 또한, 소통과 참여의 열린 통일문화를 만들어 통일시
대를 준비하고, 화합과 신뢰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어 나가자는 운동이었다.


천안함 폭침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고귀한 생명을 빼앗아 간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안보의식과 국가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통일자문회의는 우리의 안보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와 정부의 대응조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국민한마음잇기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국민한마음잇기운동’은 국내 232개 협의회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되었으며, ‘한마음’을 의미하는 배지와 팔찌, 반지, 열쇠고리 등 상징물을 만들어 범국민적으로 패용할 수 있도록 보급시켜 나갔다.

“통일은 반드시 옵니다. 그날을 대비해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을 준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8월 15일 광복 65주년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세 논의를 제안하며 사회 각계의 관심과 폭넓은 논의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세 논의는 그동안 추상적으로 거론되어 온 한반도 통일논의를 보다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통일세의 성격, 내용, 방향 등에 대하여 다양한 논의와 추측이 제기되는 등 통일을 현실적인 차원에서 준비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당위성이 적극 거론되기도 하였다.

통일자문회의는 통일세에 관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그 논의를 활발히 펼쳐나갔다. 통일자문회의는 정책건의에서는 통일비전과 통일편익에 대해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적인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차단해 나가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광복 65주년 기념 8.15경축사에서 ‘평화공동체→경제공동체→민족공동체’의 단계적 통일구상을 밝혔다. 이 3대 공동체 통일구상의 핵심적 내용인 3대 공동체는 평화통일로 가는 과정의 구체적인 구상으로 기존의 통일방안이나 대북정책과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동일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3대 공동체 통일구상은 1980년대 말 발표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보완하여 탄생된 것으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과제를 구체화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통일자문회의는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하면서, 세계와 적극 소통하고 협력하는 ‘공동체적 시민’ 중심의 자유롭고 공정한 민주복지국가 구상을 위하여 정부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펼쳐 자문기구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인기 TV프로그램인 ‘도전! 골든벨’ 형식을 인용하여 기획한 통일골든벨은 학생들의 높은 참여도를 이끌고 통일자문회의의 인지도 제고 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단 청소년의 통일교육 활동 면에 있어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 할 수 있었다. 통일문제에 대한 청소년들의 자연스러운 참여를 확보했고, 이를 통해 자기주도 학습까지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통일운동의 중심체로서 방대한 조직을 가진 통일자문회의의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가 50%를 밑돌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골든벨사업은 통일운동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다. 통일골든벨을 12개 지역 및 권역별로 실시하여 지역언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KBS 1TV와 공동으로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골든벨을 진행해 청소년 통일교육 사업에 대한 통일자문회의의 활약상을 전 국민에게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위기를 넘어 다함께 성장’이라는 주제로 G20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서울 G20정상회의는 우리나라에서 치른 사상 최대의 국제적 외교행사였으며, 우리나라가 아시아와 신흥국 중 처음으로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 행사였다. 또한 주요 20개국에서 각국의 정상을 비롯해 스페인, 베트남 등 5개 비회원국 정상과 반기문 UN 사무총장, 국제통화기금(IMF) 7개 국제기구 대표 등 모두 33명의 국가 원수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환율 갈등과 무역불균형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기구 개혁, 글로벌 금융안
전망, 개도국 개발격차해소 방안 등 국제사회의 굵직굵직한 주요 이슈를 의제로 다뤄 ‘G20 서울선언’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이끄는 데도 성공했다.

G20정상회의의 서울 개최는 통일자문회의의 건의가 반영돼 더욱 의미가 있었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G20정상회의 서울 개최 의미를 분석하고 성과를 전망하는 세미나와 토론회가 활발하게 개최되었고, 추진방향과 참여방안 등에 관한 논의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2011년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창설된 지 30년이 되는 해였으며 제15기 출범의 해이기도 하다. 제15기 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은 모두 1만 9,950명이 위촉됐다. 당시 처음으로 국회의원 추천에 의해 1,316명의 자문위원이 위촉돼 국민대표성을 크게 강화시켰다. 또한 청년 및 여성위원의 확충으로 조직의 역동성을 증가시켰으며 중국 상하이를 비롯하여 7개 해외 지역협의회를 신설했다.
제15기 통일자문회의는 국민과 함께 통일을 대비하고 준비하기 위한 역량을 강화해 나가는 것을 활동목표로 설정하고, 자문건의 활성화와 실효성을 제공하기 위해 상시적인 건의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법정회의를 활성화하며 유관분야의 정책네트워크를 확대해 나갔다. 또한 다양한 세대·계층·직능의 여론을 수렴하여 정책건의에 반영해 나갔으며 이와 병행하여 대북정책에 대한 대국민 공감을 확산시키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업들을 추진해 나갔다. 아울러 국민 공감형 통일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국민과 함께하는 통일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유관기관 및 단체와 공동사업을 활성화하고 지역축제와 연계해서 통일문화 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또한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통일공감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서 통일공감사업을 상설, 자율, 참여, 체험형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운영하는 한편 지역별 청년 통일리더를 발굴해 육성해 나가는 데 앞장섰다.
지난 2013년 7월 1일 ‘7천 500만이 행복한 통일’을 기치로 내걸고 정파와 이념, 지역, 계층, 세대를 초월한 국민대통합 통일추진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16기가 출범했다. 제16기 자문위원은 법령에 규정된 기관의 추천을 받아 국민의 통일 의지를 성실히 대변하여 자문건의하고 국민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국내외 각계 각층 인사 19,937명으로 구성됐다. 민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정책수립 및 추진에 관한 대통령 건의 및 자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 각 대학과 전문연구기관, 연구소 등의 전문가 150여명을 상임위원으로 위촉했으며, 국민 대표성 강화와 청년층의 통일문제 관심 유도를 위해 각계 직역(職域)을 대표하는 직능위원의 성별·세대별·계층별·지역별 대표성을 강화했다. 또한, 탈북민,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및 다문화 계층을 배려하고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6.25 국군포로를 비롯해 북한이탈주민, 귀화인 등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아울러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및 통일외교 확산을 위해 해외 조직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통일자문회의법 개정으로 여성부의장, 세종부의장, 중국부의장, 아세안부의장, 유럽부의장 등 5명의 부의장직이 신설되었다. 새로 위촉된 16기 자문위원들의 힘찬 출발을 기대해 본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