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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꿈꾸다 | 좌충우돌 남한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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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에서 ‘대중’의 의미는 ‘대부분 남들 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교통 수단일 뿐이지만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배우고 터득해야 할 커다란 관문 중 하나이다.


A씨는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근처 지리를 익히기 위해 버스를 타고 미리 정해놓은 목적지에 다녀오기로 했다. 남들이 하는 대로 교통카드를 이용해 탑승했고 버스 안에 부착된 노선표를 확인한 후 자리에 앉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려고 하차 문 앞에 서 있었는데 버스기사 아저씨가 차를 세우지도 않고 지나쳐버린 것이다. A씨는 “저 내려야 돼요. 세워주세요.”라고 아저씨에게 말한 뒤 다음정거장에 가서야 내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버스기사는 A씨를 내려주지 않았을까? 그렇다. A씨가 하차벨을 누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대중교통에 얽인 일화들은 많다. B씨는 하나원을 수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버스를 타는데 카드단말기에 지갑을 대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어디에 지갑을 대야 할 지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삑’하고 승인음이 들려야 하는데 단말기는 ‘카드를 다시 대 주십시오’라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일단 뒷자리로 비켜서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니 카드를 대는 위치가 자신과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탈북자 부부는 버스를 탈 때 다인승 기능을 이용하려 했다. 남편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2인분이요!’ 다행히 농담으로 알아들었던 버스기사 아저씨는 ‘전 삼겹살이 아닙니다.’라고 대꾸 했다고.
카드 없이 현금을 이용할 때도 실수는 있게 마련. 화폐 사용이 익숙지 않아 만 원짜리를 내밀고 거스름돈을 받아가려고 했다가 눈총을 받았던 일, 지폐를 요금통에 넣고 자리에 앉았다가 ‘거스름돈 가져 가세요’라는 말을 듣고 다시 앞자리로 불려갔을 때 매우 창피해 했다는 경험담들이 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환승절차를 잘 몰라 헤매는 경우가 있다. 환승로를 이용하면 밖으로 다시 나갔다오지 않아도 되는데, 환승할 때마다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표를 끊고 들어와 교통요금을 배로 물어야 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하철을 갈아탈 때 ‘환승입니다’는 소리를 ‘8층 입니다’로 듣고 8층에 있는 지하철을 찾기 위해 헤맸던 이도 있다고 한다. 또 남한 사람들이 지갑을 카드단말기에 대고 지하철 입구를 통과하는 것을 보고 똑같이 지갑을 대봤지만 요금이 결제되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이도 있다. 카드를 이용한다는 걸 모르고, 지갑에 현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더 찾아온 적도 있다고.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말을 익힐 때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외래어, 특히 영어다. 영어를 지나치게 많이 혼용하는 남한의 언어습관 때문에 무안을 당하는 북한이탈주민들도 많다.


북한에 있을 때만 해도 영어교육을 중시하지 않아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전공했다는 A씨. 무의식적으로 사투리나 북한 말을 쓰지 않기 위해 평소 공부나 연습을 많이 해왔다고 자부했다. 대학교에 진학한 A씨는 남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때만 해도 제가 철이 덜 들어서 남자친구에게 북한에서 왔다는 말은 안했어요. 어느 날 남친이랑 이어폰을 나눠 끼고 스마트폰으로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말소리가 잘 안 들리는 거예요. 제가 원래 실수를 잘 안하는 편인데 그날따라 긴장을 완전히 풀어서 그랬는지 이렇게 말한 거 있죠.”
A씨는 뭐라고 말했을까? “녹음 좀 높여줘.”였다. 남자친구는 웃으면서 그거 어디 사투리냐고 물었다. A씨는 “우리 할아버지가 볼륨이라는 말 대신 녹음이라는 말을 쓴다.”며 얼버무렸다고.


B씨는 하나원을 수료한 다음 지역 하나센터에서 교육을 받던 중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웃음거리가 됐던 경험이 있다. “스트레스 운동을 했더니 몸이 가볍다”고 말했기 때문. ‘스트레칭’과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헷갈린 것이다.
그 외에도 잘 알려진 예는 바로 컴퓨터 크리닝 사건이다. C씨는 컴퓨터 교육을 받고 집에서 인터넷을 하던 중 컴퓨터가 악성코드에 감염된 것을 알았다. 컴퓨터를 수리하기 위해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주변 상가에서 ‘컴퓨터 크리닝’이라고 쓰인 간판을 봤다. 컴퓨터를 청소해주는 곳, 즉 이곳이 컴퓨터 수리점인 것으로 착각해 가게를 방문했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가게에 가득한 것은 바로 옷. “컴퓨터도 고쳐주시나요?”라는 말에 어이없게 쳐다보던 점주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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