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패딩점퍼에 겹겹이 옷을 껴입은 경수는 “겨우 이런 날씨에도 추위를 타는 거 보니 남한에 적응이 다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땐 패딩 안에 러닝만 입고 다녔어요. 북한은 진짜 춥잖아요. 입김을 불면 곧바로 서리가 확 끼거든요. 여기 겨울은 겨울 같지도 않았어요.”
지금 이맘때 북한에선 뭘 하냐고 물었더니 아마 ‘김치(김
장)’한다고 난리일 것 같단다. 큰 밥상을 내 와서 절인 배추를 올려놓고 양념을 발라 김장을 한 뒤에 집집마다 어떤 집 양념이 제일 맛있는지 비교를 하기도 했다고.
“우리 엄마는 김치를 소홀히 안 했어요. 김장할 때마다 배추 꼬개기(고갱이의 북한말, 배추의 연한 속)에 양념 묻혀서 먹어보라고 하셨는데, ‘왜 형만 주고 나는 안주냐’ 투정을 부리면 저에게 더 샛노란 꼬개기에 양념을 발라주시곤 했어요.”
그래도 북한에서는 겨울철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고, 수도관이 얼면 밥 해먹을 샘물을 기르러 다녀야 했는데, 그래도 여기는 24시간 따뜻한 물을 쓸 수 있어서 좋단다. 엄마와 가끔 중국을 넘나들었다는 경수에게 왜 진작 남한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묻자 남한은 ‘적대국’이라서 가면 당연히 총살을 당할 거란 생각도 있었던 데다 남한은 ‘헐벗고 굶주리는 곳’이란 생각에 오히려 측은하게 여겨왔다고 한다. 경수가 한국에 대해 안 것은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부터였다.
“신기했어요. 거짓말을 했구나. 북한이 최고라고 교육받았거든요. 그런데 진리로 알고 있었던 게 허물어지니까 회의감이 들었어요.”
중국에 와서 한국 매체들을 접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건 한국 광고였다. 경수는 피자 광고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한국 광고가 짱이잖아요. 광고 보면 진짜 군침이 꿀떡꿀떡 넘어가요. 쭉쭉 늘어나는 피자치즈 볼 때마다 진짜 먹고 싶었거든요. 한국가면 제가 저거 꼭 사 먹는다고 생각했죠.”
경수는 남한 사회에 나오자마자 피자를 샀다. 그리고 덥석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이게 웬일? 너무 맛이 없는 게 아닌가. 한 조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음식 쓰레기통에 넣었다는 경수. 북한이탈주민들은 유제품을 접한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처음엔 치즈를 잘 먹지 못한다.
“온갖 상상 속에 꿀 맛 같고 달콤할 것 같았는데 완전히 상상을 깨버리더라고요.”
북한에서는 식품 광고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TV에서 대홍단 감자광고를 했다고 한다. ‘감자 감자 감자 대홍단 감자~’로 시작하는 CM송을 직접 불러주며, 북한에서는 식량난 때문에 대홍단에서 나는 감자를 많이 사 먹을 수 있도록 권장했다고 말했다.
“감자를 식량으로 많이 보태서 쓰라는 거죠. 쌀 조금 넣고 감자 많이 넣어서 감자밥도 자주 해먹었어요. 감자채, 감자떡, 감자오그랑죽 이런 것도요.”
경수는 연말에 남한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듣기 좋고, 트리가 야간에 반짝거리는 것도 아름답다고 했다.
“처음 남한에 왔을 때 나무를 직접 갖다 트리로 만든 걸 봤는데 나무에서 어떻게 불이 나오나 정말 신기했어요. 밤에 가서 막 만져보고.”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신년이 되니까 좀 슬펐다고 했다. 북한에서 명절에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명절 이틀 전에는 엄마가 새 옷을 마련해놓고 떡가루도 내와서 떡을 해주시잖아요. 남한에 오고 2년간은 가족이 그리워서 설을 맞이하는 게 싫었어요.”
엄마는 경수와 중국을 왕래하다 붙잡혀서 감옥에 수감돼 있던 중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래도 형은 어딘가에 살아있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형도 죽었다’고만 짤막하게 답했다. 경수는 지금 남한에서 명절 때면 고향친구들끼리 모여서 같이 만두도 해먹고 해돋이도 보곤 한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일출 보러 바다에 가는지 물었더니 ‘북한에서는 일출 볼 일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집 근처가 청진 바닷가였기 때문. 경수는 새벽에 고기잡이도 하고 오징어 철마다 해변으로 몰려드는 멸치를 가득 건져 올리곤 했다.
“멸치들이 낙지(오징어의 북한말)들을 피해 바다 기슭으로 나오는데 그물로 건지면 이만한 독에 두 개씩 잡아와요. 절여서 멸치젓을 만들어 먹곤 했어요.”
청진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수영을 했던 기억도 있다. 북한에서는 아이들이 깊은 물에 들어가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노는 걸 단속하지 않아요. 깊은 바다에서 논다는 건 그만한 담대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남한에선 사고 나는 것에 대해 엄청 무섭게 생각하잖아요. 북한은 막 떼(뛰어)들어가서 놀다가 죽으면 자기 잘못으로 생각해요.”
예전에 남한에선 대나무 같은 걸 베어다 낚싯대로 쓰곤 했는데, 북한에선 어떤 방법으로 낚시를 하는지 궁금했다. 경수는 가게에서 파는 낚싯대는 비싸기 때문에 살 수 없었고 대신 아카시나무를 꺾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미끼는 지렁이를 잡아다 썼고 바늘은 쇠줄을 자른 뒤 홈을 파서 썼다. 다만 그렇게 만든 코바늘은 든든하지 못하니까 많이 만들어서 한두 마리 낚고는 다른 걸로 갈아 끼우곤 했단다.
“바다에서는 청어 임연수, 망둥이가 잡히고 두만강에서도 임연수가 잡혀요. 점이 있는 모세라는 민물고기도 있고 뱀장어도 나오고요.”
조개로는 섭과 홍합, 꽃조개 같은 것을 잡곤 했는데, 특히 두만강가나 모래사장을 발로 뒤지면 발바닥에 꽃조개들이 꽤 많이 걸려 나왔다고 했다.
친구들과 낚시에 빠져서 학교에 안 가고 ‘땡땡이’를 쳤다가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난 적도 있다. 아침에는 엄마에게 학교 간다고 말하고 3일간 학교를 안 갔더니 학급반장이 집에 찾아온 것.
“밖에서 반장이 불렀어요. ‘경수가 학교에 안 나왔는데 선생님이 내일은 꼭 나오라고 합니다’라고요. 그날 구서바기(모서리)에서 엄마한테 엄청 맞았어요. 딱 막혀서 어디 뛸 데 없는 곳 있잖아요.”
경수는 언젠가 엄마 돈을 한 번 훔쳤다가 절구공이로 맞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우리 엄마 되게 무서워요’라고 말하지만, 경수 기억 속에 엄마는 김치(김장)를 잘하는 엄마,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강인한 여성으로 남아 있었다. ‘이젠 그렇게까지 많이 그립지는 않다’면서도 목이 메는 경수를 차에 태워서 집 근처에 내려다 주고 돌아서는 길, 유독 바람이 차갑고 사위가 어둡게 느껴졌다. 경수에게 앞으로 더 많은 고향친구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더 많은 남한 이웃사촌들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기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