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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통일 느낌 있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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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비 오는 혹은 눈 오는 제주특별자치도 그 겨울, 제주는 추웠다. 섬 한쪽에서는 포슬포슬 눈꽃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하루 종일 빗방울이 귀찮을 만큼 발뒤꿈치를 따라다녔다. 일찌감치 ‘따뜻한 남쪽나라’에 대한 기대를 비워내자 발걸음이 정처 없어진다. 여행 전 세웠던 거창한 계획들을 하나, 둘 지워가며 도리어 시간과 마음에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욕심을 덜어낸 딱 그만큼 정말 꼭 하고 싶었던 일들만 남겨졌다. 마치, 새해 첫날의 거창한 다짐들이 시나브로 사그라지면 비로소 가장 간절히 원하던 단 한가지의 바람만 남듯이. 새로운 출발과 함께 스스로에게 묻는다. 가장 간절히 바라는 단 한 가지의 소원이 무엇인지. 부슬부슬 비 내리는 제주에서의 2016년 첫 걸음 이야기다.

동백, 붉은 꽃비 되어 내리다, ‘카멜리아 힐’

게으른 여행자의 등을 떠밀기에는 궂은 날씨만한 것이 없다. 변덕스럽게 울고 웃는 제주 날씨를 곁눈질하며, 붉은 숲길로 향한다. 한 사람을 향한 온건한 애정을 꽃말로 지닌 선명한 붉음이 천연덕스러운 바람의 끈질긴 구애에 비가 되어 흩어진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붉은 꽃송이들이 젖어든 바닥 위 고운 꽃길을 이루고, 그 꽃길을 따라가면 다시 꽃 숲에 이른다.

카멜리아 힐여름이면 수국이, 겨울이면 동백이 해사하게 만개하는 이곳은 볼 것 많고, 갈 곳 많은 제주에서도 제법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카멜리아 힐이다. 본래는 허허벌판이었던 황무지에 하나, 둘 꽃과 나무가 옮겨 심어져 지금의 꽃 숲을 이루기까지는 3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정성껏 보살핌을 받은 대지에는 어느덧 반쯤 벌어진 붉은 입술이 매혹적인 붉은 동백을 포함해 500여 개 품종의 동백, 6000여 그루가 올망졸망 모여 숲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사람 손이 많이 간 숲엔 청명한 자연의 싱그러움과 다정한 온기가 가득하다.

간간히 흩뿌려지는 빗줄기를 피해 이리저리 헤매다보면 어렵지 않게 연못가 정자나 아담한 흙집을 만날 수 있고, 막다른 길에 다다를 쯤 한껏 고개를 젖히면 따뜻하고 정감어린 문구로 채워진 가랜드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동백꽃에는 향이 없다 생각하기 쉬운데 미약해서 그렇지 은은한 향을 품고 있다. 더욱이 이곳에는 향이 짙은 동백 품종도 여럿이라 살랑살랑 꽃향기에 취해 발길을 멈추는 일도 예사다. 비슷비슷한 길, 하지만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길을 젖은 동백꽃 향기에 취해 거닐다보면 어느새 나른한 기분마저 든다. 그렇게 한없이 조용한 숲 속 한가운데, 붉음보다 더 화려한 순백의 동백꽃과 마주하고 있자 새삼 이곳이 제주임을 조금 느리게 깨닫는다.

사진촬영 명소로 알려진 곳답게 매표소 안쪽에서는 촬영용 소품을 대여해주고, 숲 속 곳곳에 사진 포인트와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여럿이라 한껏 게으름을 피우기에도 좋다.

제주 풍경

더도 덜도 말고 딱 제주답게, ‘협재해변’과 ‘한림공원’

어느 계절에 오던, 어떤 날씨에 오던 제주에 왔다면 그리고 제주를 가장 제주답게 만끽하고 싶다는 오름을 오르거나 바다로 향해야 한다. 한 겨울 단 한 줌의 햇살에도 황홀하게 반짝이는 제주의 바다에는 달큰한 맛이 있다. 그래서 무방비하게 정신을 팔다가는 금세 귓불이 발갛게 달아오르기 십상이지만 쉬이 눈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제주 역시 덩치는 커도 섬은 섬인지라 섬 주변을 빙 둘러 일일이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해변들이 구석구석 숨어있다. 그 중 해안 도로를 따라 섬의 북서쪽으로 향하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협재해변은 제주의 해변 중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손끝을 담그면 옮겨 묻을 것 같은 선명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새하얀 모래를 따라 일렁이고 그 앞으로 화산폭발로 인해 생겨난 비양도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간혹 제주의 바다를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다른 나라의 바다에 비교하는 이들도 있지만, 제주의 바다는 그저 더도 덜도 말고 딱 제주의 바당(‘바다’의 제주방언)이다.

겨울바다를 볼 때면 으레 그렇듯 짧은 감탄과 긴 상념을 오가는 동안 꼭꼭 여민 코트 자락 사이로 겨울이 파고든다. 떠날 시간, 그 사이 제주바다에 몽롱이 취해 무거워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무뎌진 발걸음을 옮긴다.

협재해변과 한림공원

협재해변 바로 반대편, 바다를 등지고 바라보면 키 큰 야자나무와 침엽수가 우거져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한림공원이다. 10만여 평의 부지에 테마별로 꾸며진 공원의 매력은 한적함이다. 사계절 내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제주에서 그나마 인적이 적은 편인데다 만개한 동백도 볼 수 있다. 또, 운이 좋다면 한껏 날개를 펼친 눈처럼 새하얀 공작새도 만날 수 있다.

욕심은 씻겨 물 길 따라 바다로 향한다, ‘천제연 폭포’ 와 ‘대포주상절리대’

천제연 폭포욕심을 비워낸 여행은 한가롭다. 유유자적 놀멍 쉬멍, 떠도는 동안 어느새 겨울 짧은 해가 작별 인사를 시작한다. 그래도 예까지 왔으니 제주의 자랑이라는 폭포 하나쯤은 봐둬야 할 듯싶어 천제연 폭포를 찾았다. 옥황상제를 모시는 칠 선녀가 한밤중에 내려와 맑은 물에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깃든 폭포는 이 계절에도 짙푸른 산림사이 오도카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기할 만큼 선명한 물색을 바라보는 동안 소란스러운 일상은 저 멀리 밀려난다. 그리고 그렇게 밀려난 생각들은 제주의 크고 작은 바위를 지나 먼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그 바다 한쪽에는 바람과 파도 그리고 시간이 공들여 조각한 해안절경들도 즐비하다. 정교하게 조각해 겹겹이 쌓아올린 검붉은 돌기둥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서귀포시 중문동의 대포주상절리대도 그중 하나. 새파란 바다가 몸을 뒤척일 때면 높게는 20m이상 용솟음치는 파도는 두고두고 떠올릴 만큼 장관이다.

대포주상절리대

노곤한 온기를 찾아, ‘멘도롱 또똣’ 와 ‘제주도립미술관’

예로부터 돌과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불렸던 섬. 여전히 그 섬엔 바람이 참 많이 머문다. 다행이도 찬바람에 손끝이 얼얼해지기 시작할 쯤 주변을 둘러보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만한 곳은 적지 않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기분 좋을 만큼의 따뜻한 온기를 찾고자 드라마 ‘멘도롱 또똣’의 촬영지로 향했다. 보기에도 아슬아슬할 만큼 바다 바로 곁에 세워진 키 낮은 건물은 노랗고 파란 선명한 원색을 품고 있어 까만 밤 등댓불처럼 쉽게 찾을 수 있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품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제주의 하루는 자연의 순리 그대로를 따른다. 애써 늦은 밤을 밝히려는 불빛을 세우지도 않고, 이른 아침 첫 햇살을 막기 위한 암막커튼도 없다. 당연히 아침과 밤 모두 이르게 찾아온다. 그래도 혹여 제주의 깊은 밤, 쉬이 잠들기 어렵다면 제주도립미술관을 추천한다. 물론 관람시간 이후라 미술품 관람은 어렵지만, 대신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기엔 색다른 밤 풍경을 자랑한다.

‘멘도롱 또똣’ 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에서 행복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 ‘제주해산물’

뷔페식 백반온난한 날씨와 섬이란 지리적 위치 덕분에 제주에 는 뭍에서 만나기 어려운 특색 있는 먹거리가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해녀가 직접 따온 통통하게 살 오른 전복이나 은빛으로 반짝이는 갈치, 옥돔, 문어, 고등어 등의 제주도 앞바다에서 건저올린 해산물로 차려낸 푸짐한 밥상은 제주 여행의 백미다. 후식으로 전구처럼 반짝이는 주홍빛 제주 귤 한 알을 손에 꼭 쥐고 있자면, 아이마냥 절로 웃음꽃이 터진다.

<글/사진. 권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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