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풀뿌리 역할’을 하게 된 각계 자문위원들. 지역대표, 직능대표, 청년, 여성 등 다양한 분야와 계층의 자문위원들로부터 제17기 활동을 새롭게 열어갈 포부와 소감을 들어본다.
제17기 미주지역회의 간사로 임명된 박호성(59) 간사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2004년 28대 뉴욕한인회 청소년 담당 부회장직을 수행하던 중 2005년 7월 출범한 제12기 민주평통 뉴욕협의회 대내외 담당 부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17기까지 민주평통에서 각종 직책을 맡으며 민주평통 뉴욕협의회의 주춧돌 역할을 해오고 있다.
뉴욕에서 뷰티숍을 운영하는 바쁜 와중에도 뉴욕 지역 홀몸노인을 방문해 점심 배달을 하고, 2011년에는 조국 대한민국을 알리는 ‘모국 방문 학생’을 모집하여 조국의 발전상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등 적극적 활동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해왔다.
“2013년 뉴욕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뉴욕 동포사회와 주류사회에 ‘통일 대박’ 지지 기반을 다지고 확산시킨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주제의 교재를 1만여 부 발행해 뉴욕을 비롯해 뉴저지, 코네티컷 등으로 찾아다니면서 세미나를 개최했죠. 특히 자라나는 차세대를 위해 미 동북부 각 지역의 한인학교를 방문해 조국의 실상을 알리고 통일 강의를 했는데, 지역사회의 뜨거운 열의가 느껴졌을 뿐 아니라 많은 호평을 받아 정말 보람되었습니다.”
북한어린이돕기재단 이사이기도 한 박 간사는 북한에 빵 공장을 건립하는 사업을 돕기 위해 제12기 때 민주평통 뉴욕협의회 골프대회 준비위원장을 맡아 2만여 달러를 모금해 북한어린이돕기재단에 기탁하기도 했다. 당시를 돌아보며 그는 “조국 분단의 아픔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처럼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입니다. 민주평통의 발전을 위해서도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산교육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2007년 제13기에도 한국에 홍수가 나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수재민 돕기 거리 모금운동’을 펼쳐 상당 금액을 한국으로 송금하는 등 뉴욕협의회의 봉사활동은 남북한 동포를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다고. 이렇게 활발한 사업을 펼쳐온 뉴욕협의회의 수석부회장 직책 외에도 전체 미주지역 간사를 겸임하게 되어 더욱 어깨가 무거워진 박호성 간사는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이렇게 펼친다.
“그간 수석부회장으로서 사회복지 분야에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앞으로도 동포사회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 한인 피해자들, 특히 무연고자들의 긴급구호에 중점을 두고 활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또한 각 협의회 간의 소통을 통해 화합과 단결로 사업을 서로 공유하면서 특정 지역이 아닌 모든 미주지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활동이 활성화되도록 이바지하겠습니다.”
고려대 북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북한 전문가 이근영(39) 자문위원은 학과 지도교수인 유호열 교수의 추천을 통해 제16기 청년 자문위원으로 민주평통에 발을 딛게 되었다. 현재 중앙대 동북아학과에서 ‘북한연구방법론’을 강의하는 그는 거주지인 수원시협의회 홍보분과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가 통일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중국 연수 중 KAIST베이징센터(현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에 현지 채용되어 사회주의 국가를 경험하면서부터. 당시 근무처가 칭화대 안에 있어 북한 출신 유학생을 접하면서 ‘북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북한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북한 전문가로서 그가 바라보는 통일 전망은 과연 어떨까. 그는 “통일 전망을 핑크빛으로만 낙관할 수는 없으나 현재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그리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단순히 관계 개선만을 위한 남북 교류협력에 연연하는 대신 좀 더 근본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데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정부의 정책이 지난 정부와 차별화된 게 없다’, ‘5·24 조치로 남북 교류의 길이 막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부가 협상 결과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소강상태를 유지하며 국제사회의 동북아 평화 정착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이끌어내는 데 좀 더 강한 유인을 구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16기에 이어 제17기에도 자문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그는 앞으로의 민주평통 활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서울대 치의학대학원에 다니면서 ‘북한의 보건의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보건의료 정책과 지원을 통한 남북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분야에서 적극 활동할 것을 다짐한다.
그는 덧붙여 제17기 민주평통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제안도 잊지 않았다.
“민주평통이 각 협의회별로 규모와 특징 등에 따라 상이한 역할을 맡기고, 이를 중심으로 지원 역시 선별적이고 탄력적으로 이뤄졌으면 합니다. 그래야 협의회마다 같은 활동이나 행사가 중복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피하고, 정부 정책의 전략적 방향에 대해 지역협의회가 더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 때부터 헌법을 공부하면서부터 이미 헌법상 기관인 민주평통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사회인이 되면 꼭 가입하고 싶은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 후 지역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하다 알게 된 지인의 추천으로 제14기 때 처음 민주평통에 가입하게 되었고요. 가입 후 일반회원과 민주평통 산하 제주평화포럼 회원으로 활동하며 통일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준비된 통일 일꾼’ 이경용(48) 협의회장.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으로서 환경도시위원회 부위원장과 제2기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예산결산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법무사로서 무료 법률상담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서귀포시법원 민사조정위원과 자치경찰 주민봉사대장과 자비봉사회 임원으로서도 봉사 중이다.
이 협의회장이 속한 제주는 국내 여느 지역과는 남다른 특성을 많이 갖고 있는데, 행정조직마다 학교가 많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제주 지역에서는 청소년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고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청소년 통일 어젠다 10’, ‘청소년 통일대토론회’ 같은 특화된 행사를 벌여왔다는 게 이 협의회장의 설명.
“제17기에도 일부 조직이나 특정 계층의 사람들을 뛰어넘어 모든 지역주민들의 생활 저변에 통일에 대한 생각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청소년단체, 청년단체, 부녀회, 노인회 등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통일 관련 행사를 추진해나가겠습니다. 특히 여성의 사회 참여와 영향력이 늘어가는 사회적 추세에 부응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통일 관련 행사를 적극적으로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그는 또 민주평통 조직이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관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는 만큼 자칫 내부적 갈등을 야기하기 쉽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해 모든 민주평통 회원 간에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지역에 뿌리내리고 활동하는 협의회장으로서 민주평통 중앙조직에 요청하거나 지원하고자 하는 바는 혹시 없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중앙에 먼저 무엇인가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보다는 지역에서 특징적이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해 추진하고 그 사업에 부족한 인적 및 물적 부분을 보충해달라는 요청을 하고자 합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중앙에서 충분한 지원을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2013년과 2014년 대전지역 통일동아리연합회장으로 활약한 김기영(27) 자문위원. 현재 충남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민주평통이 2030 청년자문위원을 뽑을 때 선발되어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대학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터에 통일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대전지역 통일동아리연합회 2대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1대 회장을 맡았던 선배의 권유로 민주평통 일도 시작하게 되었고요.”
하지만 처음에는 민주평통이라는 조직이 생소하기만 했다. ‘통일을 준비하는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 외에 아는 바가 없어 대전지역 대학생들에게 민주평통 행사를 홍보하거나 인원을 모집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 화두를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통일이라는 단어는 젊은이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것일까’, ‘민주평통 활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도 민주평통의 목표와 이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일반인들을 상대로 이를 설명하고 함께 일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이었다.
“그래서 어떤 행사를 기획할 때도 우선 워크숍을 통해 이 행사의 취지와 목적을 이해시키는 순서를 가진 다음, 민주평통 활동을 하면서 배운 것을 개인의 능력과 재능에 결합하는 문화 행사를 진행하는 순서로 일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발로 뛴 2년. 어려움은 적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난 대학생들의 무관심도 그랬지만, 나이 든 어른들 중에도 발 벗고 나서서 젊은 통일 일꾼들의 손을 잡아준 이가 적었다. 민주평통이란 이름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유사한 단체들과 오해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많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영 자문위원이 통일 활동을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데는 ‘평화’라는 가치에 대한 그의 열정이 힘이 되어주었다.
“저는 통일의 더 큰 의미인 평화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들끼리 이해관계나 이념 때문에 서로 싸우고 죽이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마당에, 한 나라 한 민족이 언제 전쟁이 다시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불신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화’를 생각해서 통일 관련 문화사업에 뛰어든 것이고요.”
앞으로 제17기에서도 그는 통일 동아리 활동을 해본 ‘선배’로서 후배 젊은이들을 이끄는 데 힘쓰겠다고 말한다.
“대학 때 통일 활동을 했던 학생들도 사회 진출을 하는 시점에서 통일사업과 연결이 끊어지기 쉬운데, 이런 점을 해결해보고 싶습니다. 또 새롭게 대학생이 되는 청소년들과 기존에 통일 동아리 활동을 해본 대학생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도 하고 싶고요. 더욱 분발하는 청년 자문위원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