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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협의회 주관 북한이탈주민 합동결혼식

세계 언론도 주목한
탈북민 100쌍의 대규모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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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울 송파구협의회가 구상해 주관한 북한이탈주민 100쌍 합동결혼식에서 신랑·신부들이 맞절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송파구협의회가 주관한 ‘광복 70주년 기념 북한이탈주민 합동결혼식’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렸다. 자유의 땅을 찾아 사선을 넘어와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여건상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아온 북한이탈주민 등 100쌍이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는 경사스러운 현장이었다.

결혼식 행사가 열리는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은 이미 오전 10시 무렵부터 북적였다. 100쌍의 신랑·신부가 대기실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하랴, 사진 촬영을 하랴 분주하기 짝이 없었다.

커플의 면모는 다양했다. 젊은 부부, 나이 차가 사뭇 나는 커플, 이미 중년에 접어든 지 오래된 듯한 중년들, 그리고 만삭의 몸을 한 신부까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 있었다. 한결같이 더 할 수 없이 밝은 표정이었다는 점이다.

목숨을 걸고, 가족의 희생을 뒤로하고 찾아온 대한민국의 땅. 이곳에서 비슷한 사연을 가진 이들끼리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경제적 형편 때문에, 혹은 북에 두고 온 가족 친지들을 대한민국으로 불러온 뒤 식을 치르자며 차일피일 미뤄온 결혼식이었다. 더 이상 미루다가는 평생 면사포도 써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던 차에, 민주평통 송파구협의회에서 무료로 북한이탈주민 100쌍의 합동결혼식을 치러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혼 예복을 입은 그들이니 표정이 남달리 밝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식에 참여한 서민자(여·가명)·이명훈(남·가명) 씨 부부도 그랬다. 형제들을 북에 두고 온 처지라 이름과 얼굴을 밝히는 것은 사절한 민자 씨는 2010년 한국 땅에 들어와 2년 전 남편을 만났다. 남편 명훈 씨는 2011년 북에서 농장 일을 하다 한국에 온 처지였다.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 돌 된 아이가 있답니다. 남편은 지금 한국에서 회사 일을 하고 있지만 저는 아이를 키우느라 맞벌이도 못 하는 형편이라 경제적으로 넉넉한 살림이 아니죠. 그래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도 준비를 못 하던 참에 이런 기회가 주어져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랑·신부 모두 북한이탈주민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조선족 동포나 중국인과 결혼한 북한이탈주민 커플도 있었다. 한 커플은 신랑이 합동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범죄를 저질러 구속되는 바람에 결혼식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는데, 신부가 결혼식 추진위 측에 울면서 도움을 청해왔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면사포 쓸 기회를 얻지 못할지 모르니, 남편을 잠시라도 풀어주어 결혼식을 올리게 해달라”는 하소연이었다. 결국 추진위 측이 백방으로 힘을 써 결혼 당일에는 형 일시정지로 외출 허락을 받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이번 행사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위원장 신용한)와 재단법인 행복세상(이사장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이 주최하고 민주평통 송파구협의회와 북한이탈주민 100쌍 합동결혼식 추진위원회가 주관한 것.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우체국금융개발원, 남북하나재단이 후원했다.

100쌍 입장하는 데만 15분 걸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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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유례가 없는 대규모 북한이탈주민 합동 결혼식에 해외 방송사 취재진까지 취재를 왔다.

100쌍 합동결혼식을 구상하게 된 것은 2014년 4월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2010년 송파구협의회 차원에서 북한이탈주민 10쌍의 합동결혼식을 치러낸 바 있는 16기 민주평통 송파구협의회 윤오현 전 협의회장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좀 더 규모가 큰 합동결혼식을 진행해보겠노라 꿈을 품은 것.

윤 전 협의회장은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전성환 석좌교수의 도움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3억 원을 기부받아 1년에 걸친 준비 끝에 결혼식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소규모로 북한이탈주민이 합동결혼식을 치른 적은 있으나 이렇게 대규모로 합동결혼식을 올린 경우는 유례가 없다 보니 언론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을 터. 합동결혼식 현장에는 국내 언론사는 물론 영국 공영방송 BBC, 세계적 통신사 로이터와 AP 등도 취재를 나와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오후 3시부터 결혼식이 시작됐다. 100쌍의 부부가 입장하는 데 걸린 시간만 꼬박 15분. 커플 입장에 이어 전성환 합동결혼식 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도전을 겪어낸 여러분이니 앞으로도 그만큼의 용기를 갖고 행복하게 살라”는 내용의 주례사를 했다.

신랑·신부 맞절과 예물 교환, 성혼 선언에 이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축사와 김성호 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의 축사가 있었고, 청년위원회 합창단과 북한이탈주민 합창단인 ‘고향의 봄’ 실버합창단의 축가가 핸드볼경기장을 울렸다.

하객석도 감회가 새로운 표정. 진한 북한 사투리를 쓰는 중년의 한 하객은 “내가 한국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런 장면을 어떻게 볼 수 있었겠나… 정말 내가 한국으로 오길 잘했지. 좋은 세상이 왔구나”라고 연신 감탄하기도 했다.

예식이 끝난 후 100쌍의 부부는 숙소인 호텔 리베라로 이동해 식후 행사를 가졌고, 다음 날인 7월 1일에는 민주평통 17기 출범식에 참여해 민주평통 의장인 박근혜 대통령과 17기 민주평통 자문위원 모두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이미 부부로서 행복하게 살아왔지만 정식 혼례를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한 이들 커플에게 1만 3000명의 민주평통 일꾼들이 축복을 해줄 수 있었던 17기 출범식은 더욱 의미 있고 감동스러운 자리가 되었다.

Interview 윤오현 전 송파구협의회장

“먼저 온 통일 일꾼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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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의 견인차 역할을 한 윤오현 전 송파구협의회장. 아쉽게도 16기 임기를 끝으로 협의회장직을 내려놓게 되었지만 임기 마지막 날인 6월 30일에 크고 의미 있는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냄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워낙 큰 행사를 준비하다 보니 어려움도 적잖고 일정도 여러 번 미뤄졌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 속에 무사히 행사를 치러낼 수 있었습니다.”

2014년 봄부터 구상했던 기획이 성사되기까지 오랜 시일이 필요했던 것은 주최기관과 후원단체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100쌍이나 되는 신랑·신부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

애초 윤 전 협의회장의 구상은 서울시의 25개 협의회로부터 각 두 쌍, 경기도 31개 협의회와 인천시 10개 협의회로부터 한 쌍씩 결혼식 희망 부부를 추천받고, 북한이탈주민이 특히 많이 거주하는 노원, 양천, 강서, 송파구협의회에서 두 쌍씩 추가로 추천받아 100쌍을 채우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각 지역별로 고루 추천을 받으려 했던 것은 단지 결혼식만 올려주고 끝내는 게 아니라 각 지역협의회의 자문위원들과 결연을 하도록 도와 앞으로도 지속적인 멘토링을 해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일이 지연되고 일찌감치 등록한 커플 중에서도 사정상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협의회를 통해 100쌍을 채우는 게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다행히 송파경찰서의 도움으로 전국 경찰망을 통해 탈북 부부의 신청을 받고 통일미래연대의 추천도 이어져 100쌍이라는 상징적 숫자를 채울 수 있었다고.

“행사는 성공적으로 치렀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처음 목표한 대로 서울의 각 협의회당 두 쌍씩 멘토·멘티 관계가 이뤄졌다면 하는 것입니다. 먼저 온 통일 일꾼들이 행복하게 대한민국에 정착한다면 통일을 앞당기는 데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되겠죠?”

Interview 눈길 끈 부부 2쌍

‘모녀 합동 결혼’ 기록 세운 한정혜·김현수 씨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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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혜(28·가명)·김현수(37·가명) 씨 커플은 2010년 하나원에서 함께 교육받은 동기 사이. 같은 인천 지역으로 거주지를 배치받은 이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처음에는 친오빠와 동생처럼 지내다 어느새 연인으로 발전해 부부가 되었다.

“저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정착한 친정어머니는 내심 제가 한국 남자와 결혼하길 바라셨어요. 한국 땅에 친척이 없어 외로우니 남편 가족들이라도 많았으면 해서요. 하지만 제 남편은 다른 무뚝뚝한 북한 남자들과 달리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제가 결혼을 결심하게 됐죠.”(한정혜)

현수 씨는 북한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엘리트. 하지만 한국에 정착해서는 일용직 노동자로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다. 지금도 학업을 계속하고 싶어 하지만 여의치 않다. 한국에서 폐결핵을 앓으며 몸이 쇠약해진 데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겨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정혜 씨로서는 남편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란다.

정혜 씨 부부의 혼인식이 더욱 의미 있었던 것은 정혜 씨의 친정어머니도 이번 합동결혼식에서 함께 혼례를 올렸기 때문.

“몸이 약한 저를 위해 식당 일을 하면서도 저를 뒷바라지해주신 어머니 역시 중국 분인 새아버지와 혼인식을 올리지 못한 채 살고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설득에 나서 이번 기회에 어머니와 함께 합동결혼식을 올리게 된 거죠.”

정혜 씨 커플이 여느 부부보다 두 배로 행복한 표정을 지은 이유가 거기 있었다.

만삭의 몸으로 웨딩드레스 입은 김선옥·박명남 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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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부부 중에도 유독 눈길을 끈 신부 김선옥(30·가명) 씨. 다름 아니라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만삭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에 탈북한 선옥 씨는 자신보다 1년 먼저 한국에 온 연하의 남편 박명남(29) 씨를 통일미래연대 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다.

“북에 있는 가족들 생각과 넉넉지 못한 경제적 형편 때문에 식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와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합동결혼식 희망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신청했어요.”

다만 명남 씨로서는 자기 힘으로 사랑하는 여자에게 결혼식을 올려주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해 미안해했다고. 사실 북한이탈주민 중에서도 남자들이 좀 더 한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편이라고 한다.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북한에서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생소한 직종의 일을 하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운 도장 일을 하고 있는 명남 씨에게도 한국 정착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래도 가정이 꾸려지고 아이도 생기면서 남편의 마음가짐이나 각오가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지금 남편은 어느 누구보다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김선옥) 이들 부부는 합동결혼식을 치러준 데다 요긴한 혼수까지 마련해준 주최 측에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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