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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동북아 정세와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

중국이 공세적인 ‘창’이라면 미국은 ‘방패’로 대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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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왼쪽부터)이 2014년 중국 베이징 옌치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장에서 함께 만났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김영삼 정부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민주주의 제도화 경험도 이미 성년이 지났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구조는 여전히 깨뜨려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최근 남북관계는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광복 70년의 역사적 계기를 맞아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기를 기대했으나, 그 기대가 현실화되기는 제반 여건이 녹록하지 않다.

110년 전 대한제국은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겼으며, 105년 전에는 치욕적 국가 병탄을 경험했다. 19세기 말 세계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미국은 동아시아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부 아시아 진출을 확장한 제정 러시아는 극동지역으로 팽창을 의도했으나,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그 위상에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 대한제국은 이들 열강의 패권 경쟁 틈바구니에서 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2015년의 대한민국은 110년 전 조선처럼 약소국이 아니다. 세계 13~14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국 중에서 제 위상을 바로 세운 유일한 국가다. G20의 일원이자 당당한 중견국의 위치에 올라 있다. 그러나 한국이 위치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는 변함이 없으며, 110년 전 한반도를 두고 각축을 벌였던 주변국들의 위상 또한 역학관계의 변화가 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냉전체제 종식 이후 15년 남짓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은 상대적 쇠퇴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패권국가다. 중국은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토대로 과거 누렸던 중화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는 패권 도전국가다. 일본은 지난 20년의 침체를 벗어나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배경으로 중국의 패권국 부상을 견제하려 한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만큼은 아니지만 패권국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들 국가가 다시 한 번 동아시아에서 합종연횡하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 가운데 위치한 한반도는 110년 전과는 달리 분단되어 있다. 더욱이 북한은 경제력과 국가 경영에서 극히 취약한 실패국가로서 평가받고 있으나 핵무기를 ‘보유’한 위험국가다. 이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어떤 나라도 의심하지 못하며 북한 독재자의 핵보유 의지를 포기시키는 일은 더욱 힘들게 되었다. 분단구조를 깨뜨리기 위한 한국의 대북·통일정책은 북핵에 의해 일종의 인질로 포위되었다.

국제질서의 새 규칙 제정자가 되려 하는 중국

동북아 지역질서 형성의 1차적 행위자는 미국과 중국이다. 중국은 대국굴기(大國起) 전략으로 공세적이며 팽창적인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패권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면서도 중국의 패권국 부상을 사전에 대처하려는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적극적 관여를 표명하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내지는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이다.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미국 주도의 지역질서를 재구성하기 위한 창을 들었다면, 미국은 중국의 주요 행위자로의 등장을 수용하면서도 기존 질서의 본질을 유지하고자 하는 방패를 들었다. 중국은 미국의 방패를 중국에 대한 봉쇄전략으로 본다.

21세기의 동아시아는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다. 한국, 중국, 일본 3개국 국내총생산(GDP)의 합은 세계의 5분의 1 이상이다. 인구, 국민 통합, 체제, 연구개발(R&D), 군사력, 경제력 등 국력의 기본요소 차원에서 미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세계질서를 형성하는 전략적 경쟁이 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다.

패권국가 미국의 쇠퇴와 패권 도전국가 중국의 등장은 양자관계의 재조정과 동시에 이 지역에서의 세력전 현상을 초래한다. 한국이 한미동맹을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면서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를 추진하는 이유이며, 대북·통일정책 추진 과정에서 이들 국가를 핵심 주변국가로 간주하는 이유다.

중국은 대국굴기가 국제사회와의 조화와 평화적 질서 형성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내세운다. 그러나 중국이 실제적으로 펼치고 있는 구상들은 첨단 군사력의 확장 및 현대화, 동·남중국해 등지에서의 영토 팽창, 대규모 경제 지원 및 투자를 수단으로 한 국제정치적 영향력의 확대 등이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수용자를 넘어 국제질서의 새로운 규칙 제정자(Rule-maker) 역할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의 미국에 대한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정립 제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형대국관계는 과거 누렸던 ‘중화(中華)의 힘’을 21세기 ‘중국의 꿈(中華夢)’으로 실현하려는 시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하면서 “국제 지위에 걸맞고 국가 안보와 이익에 부응하는 강한 군대를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임무”라며 ‘강한 중국’을 선언했다.

미국의 국방비가 제약을 받는 반면 중국의 국방 투자 규모는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중국의 꿈 실현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며 적어도 아시아의 패권국 지위 확보를 위해 ‘적극 방어 군사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전략은 중국 본토와 그 인접해역에 대한 외부 세력의 접근을 거부하는 ‘접근 차단 /지역 거부(Anti-Access / Area-Denial ; A2/AD)’ 전략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이는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대륙붕 구역,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도서에 대한 영유권 주장의 기반이다.

중국의 이러한 전략은 해양 영토의 팽창을 의도하는 것으로 미국의 지역 패권에 대한 도전이자 인접 국가들과의 충돌 원인이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침투하는 새로운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언함으로써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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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국은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어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25일 러시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중국 인민해방군 의장대.

중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교류 및 신뢰 구축 회의(CICA)’를 아시아지역 다자안보협력체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창립에 성공했다. 미국은 AIIB의 출범을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한 도전으로 보아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으나 막지 못했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안보협력 강화를 통해서도 미국을 견제하고 있으며, 주변국과의 외교정책을 강화함으로써 영향력을 계속 신장시키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를 수용하지는 않았으나 중국과 새로운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필요성은 인정한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자국의 패권 지위의 변화에 대비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향후 10년간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미국의 리더십과 이익, 가치를 신장시키는 국가 경영의 전략적 투자처로 중시한다. 따라서 중국의 영향력 신장을 일면 수용하는 전략적 협력을 발전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며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 중시 정책의 핵심 요소는 세 가지다. 첫째,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태국 등 아·태지역 동맹국들과 안보동맹을 강화하고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과 협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자국의 국방비 축소를 감안해 동맹국들의 역할 분담을 강조한다. 일본 아베 정권의 헌법 재해석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이유다.

둘째, 동아시아정상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의 관계 강화 등 아·태지역에서 정치, 안보 및 경제적 다자 구상에 미국의 관여를 굳건하게 뿌리내리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양자관계 중심의 전략을 전개했으나, 변화하는 아·태지역 정세에 미국도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중국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여 적극적이며 안정된 미·중관계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지구적 차원의 문제들에 대한 양자 협력을 발전시키고 안보와 경제 차원의 경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한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을 중국은 자국을 포위·봉쇄하려는 냉전적 구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중 이해관계 얽히면 한국 대북정책 어려워질 수도

미·중의 전략 경쟁 이외에도 동아시아지역에는 미·러 간 갈등의 파급 영향, 중·일 갈등과 한·일 갈등, 중·러 접근, 북·중관계 약화, 북·러 접근 등 양자 및 다자관계의 복합적이며 복잡한 현상들이 중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핵심적인 전략적 요인은 미·중관계다.

중국의 영향력 팽창 정책과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조화롭게 상호 수용되고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조정될 것인가, 아니면 일부 현실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권력전이의 과정에서 충돌할 것인가. 만약 갈등의 분출로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은 동아시아일 것이며, 분단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우리의 대북·통일정책 추진 환경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북핵 문제의 해결 방안과 북한 체제의 안정적 관리와 변화 견인 등의 복합적 목표를 둘러싼 미·중 간 이해관계 충돌은 한국의 의지와는 무관한 정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는 한국의 대북정책 추진 과정을 매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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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난 6월 29일 참가국대표들이 협정문에 서명을 마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역시 미국에 중국의 영향력 확산에 대한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과 중국은 상호 전략의 충돌보다는 전략의 협력적 적응과 수용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6월에 열린 제7차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서로 알고 적응해나가는 쌍방 통로’로서의 중요성이 확인되었다. 또 군사적 신뢰 구축의 진전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 전략에 난관이 발생하고 미국의 경제 회복과 주도적인 국제에너지 정치의 구사에 따라서 중국의 ‘팽창적 공세’가 다소 조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책임 있고 투명성이 있으며 합리적인 규범 제안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국’으로서의 행보에는 여전히 크게 부족하다. 미국은 전통적인 규범 제정자로서 패권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데는 익숙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국가 간 힘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는 미흡한 모습이다. 미·중 간 힘의 관계 변화는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더라도 이익의 충돌이 아니라 이익의 상호 균형적 조정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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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미국 신시내티대 정치학 박사. 한국세계지역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통일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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