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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내연산 청하골과 하옥계곡

다양한 폭포와 기암괴석…
깊고도 포근한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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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일대, 신선대, 관음대, 월영대 등의 깎아지른 암벽에 둘러싸인 관음폭포.

‘포항’ 하면 흔히들 ‘포항제철(POSCO)’이나 호미곶, 아니면 해병대훈련소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곳의 자연풍광을 대표하는 이미지도 탁 트인 동해, 장엄한 일출 등이 맨 먼저 꼽힌다. 하지만 강원도의 어느 심산유곡 못지않게 깊은 계곡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내연산 청하골과 하옥계곡이 그곳이다.

양영훈 여행작가

포항시 송라면과 죽장면의 경계에는 내연산(930m)이 우뚝하다. 최고봉인 향로봉을 가운데에 두고 매봉(835m), 삼지봉(710m) 등으로 이어지는 내연산 능선의 동쪽에는 보경사계곡, 서쪽에는 하옥계곡이 위치한다. 두 곳 모두가 ‘제철공업도시’ 포항의 계곡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험준한 산자락에 자리 잡았다. 특히 ‘청하골’, 또는 ‘내연산계곡’으로도 불리는 보경사계곡은 크고 작은 폭포가 유달리 많다. 이곳처럼 다양한 폭포를 볼 수 있는 계곡도 흔치 않다.

보경사계곡은 602년(신라 진평왕 25년)에 창건됐다는 보경사에서부터 시작된다. 보경사 경내에는 고려 고종 때의 고승인 원진국사의 비석(보물 제252호)과 부도(보물 제430호)가 남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들은 근래 지어진 탓에 고풍스러운 멋을 느끼기 어렵다.

보경사에서 내연산 향로봉까지 거리는 편도 10㎞쯤 된다. 왕복 6시간 30분이 소요될 정도로 만만치 않은 등산로다. 노송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한 폭의 진경산수(眞景山水) 같은 청하골 절경은 연산폭포까지 왕복 5.4km에 이르는 계곡 트레킹만으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일찍이 ‘진경산수’라는 화풍을 일으킨 겸재 정선도 청하현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이곳을 다녀간 뒤 내연삼룡추도(內延三龍秋圖), 내연산폭포도(內延山瀑布圖), 고사의송관란도(高士倚松觀瀾圖) 등의 걸작을 남겼다.

보경사를 지나서 맨 처음으로 만나는 것은 쌍생폭포다. 웅장한 멋은 없지만, 두 줄기 폭포수의 단아한 자태가 보기 좋다. 쌍생폭포를 지나면 보현폭포, 삼보폭포, 잠룡폭포, 무봉폭포가 잇따라 나타난다. 보경사계곡의 열두 폭포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관음폭포와 연산폭포도 지척이다.

때묻지 않고 계곡 길어 캠핑지로 적격인 하옥계곡

물줄기가 두 갈래로 쏟아지는 관음폭포 주변에는 선일대, 신선대, 관음대, 월영대 등의 깎아지른 절벽이 철옹성처럼 둘러쳐져 있다. 또한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암벽 아래쪽에는 커다란 관음굴이 뚫려 있다. 이 굴속으로 들어가면 입구를 반쯤 가린 채로 떨어지는 폭포수를 볼 수 있다. 관음폭포 바로 위쪽에는 높이 30m, 길이 40m 규모의 연산폭포가 있다. ‘학소대’라는 웅장한 절벽 아래로 연산폭포의 굵고 거센 물줄기가 쉼 없이 쏟아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폭포수의 냉기와 위용에 온몸이 서늘해진다.

관음폭포와 연산폭포 주변 바위와 암벽에는 옛 벼슬아치와 시인묵객들이 남긴 이름들이 군데군데 새겨져 있다. 그 수가 무려 4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 이름도 있고, ‘慶妓達蟾(경기달섬 : 경주 기생 달섬)’이라는 각자도 있다. 달섬은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내연산계곡의 바위에 이름을 남겼다.

보경사계곡은 눈이 즐거운 계곡이다. 잠시 물가에 앉아 탁족을 즐기거나 쉬어갈 수는 있지만, 하루 이틀쯤 푹 눌러앉아서 휴식할 수는 없다. 온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피서를 즐기려면 내연산 서쪽의 하옥계곡이 제격이다. 보경사계곡에서 하옥계곡으로 곧장 넘어가는 길은 등산로뿐이다. 자동차를 이용할 때는 보경사 입구에서 청하면 소재지를 경유해 죽장면 상옥리까지 약 70리 길을 돌아가야 한다.

하옥계곡은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와 하옥리에 걸쳐 있는 계곡이다. 내연산, 향로봉, 매봉, 삿갓봉 등 서쪽 기슭을 타고 내려온 물줄기들은 모두 이 계곡으로 흘러든다. 하옥계곡의 가장 큰 매력은 때 묻지 않은 자연미다. 계곡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의 풍광은 순수하고도 아름답다. 피서철 아니면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인적이 뜸한 덕택이다. 찾아가기는 의외로 수월한 편이다. 약 12㎞의 69번 지방도(비포장도로) 구간이 하옥계곡의 물길과 나란히 이어지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해 쉽게 드나들 수 있다.

하옥계곡은 최적의 캠핑 여행지이다. 계곡 어디든 텐트 칠 공간만 있으면 캠핑이 가능하다. 워낙 계곡이 길다 보니 다른 사람들 때문에 마음 쓸 일도, 마음 상할 일도 없다. 대자연의 넉넉한 품 안에서 가족들과 오붓한, 또는 연인과 달콤한 여름밤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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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관음폭포 아래의 바위에 또렷이 새겨진 '慶妓達蟾(경기달섬)'
(왼) 형산강 하구와 동빈내항 간의 포항운하를 운항하는 크루즈 유람선
(오) 넓은 정원이 인상적인 영일대호텔.

한·미해병충혼탑도 들러봐야 할 추모비

보경사계곡과 하옥계곡을 오가는 길에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한·미해병충혼탑, 기청산식물원, 경북수목원 등도 들러보는 게 좋다. 그중 한·미해병충혼탑은 송라면 방석리의 7번 국도변에 건립된 추모탑이다. 지난 1984년 한·미 연합 팀스피리트훈련에 참여했다가 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해병대원 29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건립됐다. 충혼탑 부지 내에는 2013년에 세워진 ‘해군육전대전적비’도 있다. 해군육전대는 6·25전쟁 당시에 해군 부대로서는 처음으로 포항, 영덕 지역의 육상전투에 참전해 큰 전과를 올렸다.

포항까지 간 김에 죽도시장과 포항운하를 빼놓을 수가 없다.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의 전통 어시장이다. 이 시장에는 어디나 흔한 고등어, 전복, 문어 등뿐만 아니라 개복치, 고래고기와 같이 쉽게 맛볼 수 없는 생선도 있다. 죽도시장 앞 포항운하에는 크루즈 유람선(054-253-4001)이 운항한다. 지난해 3월에 개통된 포항운하는 형산강 하구와 동빈내항 사이의 1.3km가량 되는 물길이다. 1970년대 초에 포항제철 준공과 함께 끊겼다가 40여 년 만에 복원됐다. 유람선은 바다 같은 강, 강 같은 바다를 두둥실 떠간다.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포항의 풍경이 의외로 편안하다. 공업도시 특유의 삭막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고향처럼 푸근하다.

여행 정보

▶ 숙박

포항시 남구 포스텍(포항공대) 부근에 위치한 영일대(054-221-9452)는 아주 내력 깊은 호텔이다. 1970년대 초 포항제철 건설공사가 시작될 무렵에 국내외 귀빈들을 위한 숙소로 지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묵었던 객실도 남아 있고, 기념식수한 나무도 있다. 무엇보다 면적이 넓고, 꽃과 나무가 빼곡한 호텔 정원이 일품이다. 영일대해수욕장(옛 북부해수욕장) 주변에 위치한 베스트웨스턴포항호텔(054-230-7000)은 바다 전망이 일품이다. 보경사 입구에는 연산온천파크(054-262-5200), 산들바람펜션(***) 등이 있다. 하옥계곡에는 하옥히든밸리캠핑장(***), 자연발생유원지캠핑장(054-243-3002) 등이 있다.

▶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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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사 입구의 보경식당(054-262-3664)은 손칼국수, 춘원식당(054-262-1170)은 산채비빔밥을 잘한다. 포항운하 부근의 명천회식당(054-253-8585)은 신선한 생선회를 채소, 해초 등과 함께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회 무침이 별미다. 포항시내의 고깃집으로는 한우갈비 전문점인 만포갈비(054-272-9366), 포항의 별미로 첫손에 꼽히는 물회는 죽도시장의 수향회식당(054-241-1589)이 권할 만하다.

▶ 교통

• KTX 올해 4월에 동대구↔포항 간 KTX 노선이 개통됨에 따라 포항을 오가기가 훨씬 편하고 빨라졌다. 수도권에서 포항까지 약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한다. 하지만 워낙 이용자가 많아서 주말, 휴일에는 서둘러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다.
•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도동JC→익산포항고속도로 포항IC(7번 국도)→송라면 소재지(보경사 방면)→보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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